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3일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 계속운전 허가를 승인했다. 이에 가동이 중지됐던 고리원전 2호기는 2033년 4월8일까지 다시 운전이 가능해졌다. 이날 오후 부산 기장군의 한 마을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2호기(오른쪽)와 영구 정지 8년 만인 지난해 6월 해체가 결정된 고리원전 1호기(왼쪽) 모습. (출처: 뉴시스)
인공지능(AI) 혁명과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대한민국 산업 전반을 덮치고 있다. 24시간 중단 없는 대규모 전력이 필수적인 시대에 ‘전력 안보’는 이제 국가 생존의 문제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우리 에너지 정책의 현주소는 ‘산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정치의 정체’였다. 미래 산업은 빛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인프라는 낡은 규제와 정쟁의 늪에 빠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인프라의 동맥경화다. 탄소중립 시대에 무탄소 기저 전원으로서 원전의 필요성은 산·학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망과 저장시설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와 지역 갈등 속에서 지연되고 있다.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표심을 계산하며 침묵하고 그 사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핵심 사업들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발전소를 다 지어놓고도 송전선로가 없어 가동을 제한하는 제약 발전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국가적 낭비의 전형이다. 정부가 갈등 해결의 책임을 지자체나 특정 지역에만 미뤄두는 사이 우리 산업의 혈맥인 ‘에너지 고속도로’는 곳곳이 끊긴 채 방치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지표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 그리 많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전력망 확충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국가 핵심 프로젝트도 전력 수급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가져온 ‘사람’의 위기도 심각하다. 원전 생태계의 복원은 단순히 설비를 짓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수만개의 부품과 설비를 몸으로 익힌 숙련 인력이 유지돼야 안전도, 산업적 도약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권마다 냉·온탕을 오가는 정책 기조 속에서 현장은 자부심 대신 무력감을, 인재들은 도전 대신 이탈을 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고용 문제를 넘어 수십년간 쌓아온 대한민국의 원자력 기술 경쟁력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위험 신호다.
기획 다음회차에 소개될 강창호 한국수력원자력 노조위원장이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지면 현장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현장의 헌신만으로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이 지표들이 말해주는 진실이다. 현장의 우려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사이 대한민국 원전 산업은 세계 무대에서의 우위를 잃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을 아직도 과거의 이념적 프레임으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현장의 하소연을 방관할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인프라 확충과 파격적인 규제 혁파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입법부 역시 민생과 직결된 에너지 현안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낡은 정쟁의 틀을 깨고 에너지 고속도로를 바로잡는 결단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국가적 대의를 위한 정치권의 실질적인 응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골든타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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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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