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구글 나노바나나
대한민국 코스닥 시장을 무대로 '무자본 인수합병(M&A)'을 벌이며 수천억원대의 피해를 양산한 희대의 기업사냥꾼 홍석종의 도피 행각이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주가 조작에 대한 엄벌을 여러차례 천명하고 있지만 홍씨에 대한 처벌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본부장 출신인 그는 2010년 초반부터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 횡령, 배임, 유가증권 위조, 조세범처벌법 위반 등 무려 20여 건에 달하는 중범죄 혐의로 검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상태다.
그가 자본시장에 끼친 악영향은 개별 상장사의 부실을 넘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수사기관은 10년째 그의 신병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수사 의지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도 제기된다.
◇ 자본 없이 상장사 장악…'먹튀' 피해 수천억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홍씨의 범행 수법은 철저히 시장과 선량한 투자자를 기만하는 구조로 파악된다. 자기자본 없이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 등에게 자금을 빌려 상장사 경영권을 확보한 뒤, 이사회를 장악하고 페이퍼컴퍼니 등을 동원해 회사 자산을 빼돌리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우량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과거 삼성전자의 1차 납품업체이자 국내 터치스크린 패널 1위 기업이었던 건실한 상장사 디지텍시스템스는 홍씨 일당의 표적이 된 후 단기간에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고, 2만여 명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이 900억원대의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텍시스템스뿐만 아니라 위지트, 엔티텍, 르네코(현 상지건설) 등 10여 개가 넘는 코스닥 기업이 철저히 망가졌으며, 전체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의 마수는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에까지 뻗어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15년 방시혁 의장이 이끄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의 6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인수한 시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의 실질적 지배주주 역시 홍석종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당시 시그널 측은 수조 원의 가치에 달할 수 있었던 주식 전환권을 돌연 포기하고 원금만 상환받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방시혁 의장의 경영권 방어를 돕는 대가로 넷마블 자회사 등을 통한 300억원 규모의 우회 보상 및 해외 코인 세탁 정황이 존재한다는 혐의로 배임 고발까지 예고된 상태다.
◇도주 중에도 시세조종…시장 교란 '현재진행형'
최근까지도 화장품 상장사 CSA 코스믹 경영권 분쟁에 자금줄 역할을 하며 개입하거나, 캔버스엔, 중앙첨단소재, 성지건설 등 수많은 상장사에 정치 테마주(이재명 테마 등) 및 토큰증권(STO) 재료를 엮어 시세조종을 주도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그의 시장 교란 행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짚어야 할 대목은 이토록 코스닥 상장사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쥐락펴락하며 자본시장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핵심 범죄자가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법망을 비웃듯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씨는 지난 2014년 수사기관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중 "저녁을 먹고 오겠다"며 유유히 빠져나간 뒤 그대로 해외로 밀항한 것으로 파악된다.
도피 직후 성형수술을 통해 신분을 세탁하고 중국 국적의 위조 여권을 발급받은 그는 '황 회장'으로 불리며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이 위조 여권을 이용해 중국, 홍콩, 필리핀 등 아시아는 물론 이탈리아 밀라노, 모나코를 거쳐 최근에는 프랑스 니스와 파리에 머무는 등 전 세계를 제집 드나들듯 자유롭게 오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는 이혼한 전 부인에게 연락책을 통해 꾸준히 양육비와 생활비를 전달하고 있으며, 국내로 입국해 유명 호텔에 버젓이 은밀히 투숙하며 업무를 보고 출국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장기 도피와 해외 원격 경영이 가능한 핵심 배경에는 그를 돕는 대리인들의 조직적인 비호가 자리하고 있다.
국내 자금 관리인들이 이른바 '환치기' 수법으로 지속적인 도피 자금을 조달하고 있으며, 홍씨는 해외에서 대포폰을 이용해 국내 하수인들에게 하루에도 수차례 업무 지시를 내리고 주요 사안은 홍콩 등지로 대리인들을 직접 불러들여 처리하는 이른바 '리모컨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중견 변호사와 전직 대기업 자금담당 임원, 심지어 조직폭력배 출신까지 대리인으로 내세우며 견고한 범죄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 못잡나 안 잡나…10년 공전에 수사 의지 의문
결국 근본적인 의문은 수사기관으로 향한다. 홍씨의 구체적인 동선과 은신처, 가명, 대리인들의 면면과 새로운 범행 모의 정황이 시장 관계자들과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고 있음에도 검경의 신병 확보는 10년 넘게 공전 상태다.
지난 2017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서울남부지검이 전담 체포조를 꾸려 신속한 검거를 지시하고 검경 내부에 홍씨를 비호하는 세력이 존재하는지 여부까지 내사에 착수했으나 실질적인 검거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수사 당국의 단순한 추적 능력 부재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비호 세력이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자본시장 안팎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0년이라는 비정상적으로 긴 도피 기간은 수사기관의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동시에 범죄자들에게 '해외로 도피만 하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홍석종을 잡아야 할 수사관들이 외국에 거주 중인 그를 만나 오히려 대접을 받고 오더라는 말도 있다"며 "단순한 수배 유지를 넘어 인터폴 등과의 전면적이고 강력한 국제 공조를 통해 반드시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만 한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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