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기술특례상장 '밀도·효율' 모두 앞서며 자본시장 중심축 부상
R&D 축적 넘어 '기술-금융 전환 구조'로 성과 창출···지역 경쟁력 입증
번역·매개·축적 이어지는 대전형 메커니즘, 상장 성공률로 이어져
제도 변화·인적 네트워크 결합, 비수도권 유일 '수도권형 성장 모델' 구현
자본시장 혁신 지도의 중심, 대덕연구개발특구 전경. 전국에서 가장 높은 기술특례상장 입지계수(1.98)를 기록한 대전은 대덕특구의 밀집된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서울을 앞지르는 '혁신 밀도'를 증명하고 있다. [사진=대덕넷DB]
자본시장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이 압도적인 인구와 자본으로 자본시장을 독식해 왔다면, 이제는 대전이 '질적 효율성'으로 자본시장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 145만의 도시 대전이 보여준 기술 상장 밀도와 특화도는 서울을 넘어섰다. 혁신 지도 무게중심이 옮겨오고 있다는 평가다.
한종탁 대전시 체육건강국장(전 기업지원정책과장, 현 행안부 파견)이 발표한 '기술특례상장 성과의 지역 격차와 기술-금융 전환 구조: RFCM을 통한 실증 분석'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기업 전수를 분석한 결과 대전의 성과는 제한된 자원을 압축적으로 활용해 독보적인 효율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은 비수도권 지역이 가진 혁신 잠재력이 어떻게 자본시장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인구 대비 혁신, 서울을 앞지르다
대전의 저력은 수치부터 남다르다. 분석 기간(2014~2025년) 중 대전은 21개의 기술특례상장 기업을 배출했는데, 이를 인구(약 145만 명)와 대비하면 약 6만9000명당 1개꼴이다. 반면 95개의 상장사를 배출한 서울은 인구(약 940만 명) 대비 약 9만9000명당 1개를 기록했다. 대전의 '혁신 밀도'가 서울보다 1.4배 더 촘촘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국 17개 시도별 순위에서도 대전은 비수도권 중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며 사실상 '기술 금융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의 기술특례상장 입지계수는 1.98로, 전국 평균을 두 배 이상 상회한다. 서울(1.08)과 경기(1.04)가 전국 평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이, 대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술 중심적인 상장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대전이 연구 인력이 많은 도시를 넘어 연구 성과를 시장 가치로 바꿔내는 효율성이 큰 도시라는 의미다.
한종탁 국장은 "기술이 자산이 되고 자본으로 전환되는 이 복잡한 과정에는 대전만의 독특한 문법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대전은 지난 20년간 누적된 연구개발(R&D) 자산을 금융이라는 언어로 번역해내는 데 성공하며 대한민국 혁신 지도의 중심을 서울에서 대전으로 조금씩 옮겨오고 있다"고 말했다.
◇ '운 아닌 구조'··· 대전식 상장 공식
지역별 누적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특례상장 성과의 관계. 지역별 누적 연구개발 투자 규모와 기술특례상장 성과 간의 관계를 산점도로 보여준다. 그림에서 확인되듯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반드시 상장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림=한종탁 국장]
현장에서 대전의 기업 지원 정책을 진두지휘해온 한 국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대전의 성과가 결코 '운'이나 '우연'이 아님을 밝혀냈다.
변이할당분석(SSA)을 통해 대전 상장 성과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67.4%가 오직 대전만이 가진 독특한 경쟁력인 '지역 할당 효과(RS)'에서 나왔다. 국가 전체의 성장이나 특정 산업의 유행 같은 외부 요인보다 대전이라는 공간이 가진 고유의 시스템이 성과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대전의 '지역 할당 효과 지수'는 +1.07로 도출되었는데, 이는 동일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대전에서 사업을 할 때 상장에 성공할 확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결과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자본이 몰리는 서울(0.42)과 경기(0.15)도 양(+)의 값을 보였지만 대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부산(-0.85), 대구(-0.42), 광주(-0.61)를 비롯해 인천, 울산 등 주요 산업 도시들이 모두 음(-)의 값을 기록하며 뒷걸음질 치는 동안, 오직 대전만이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지역의 힘'을 발휘했다.
특히 논문의 회귀분석 결과는 대전 모델의 우수성을 뒷받침한다. 수도권이 기술 투입과 상장 성과가 정비례하는 선형 모델을 따르는 반면, 비수도권 대다수 지역은 기술 투입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단절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대전은 비수도권 중 유례없이 기술 투입이 성과로 바뀌는 수도권형 모델을 만들었다. 특정 지점(임계점) 이후에는 오히려 수도권의 효율을 추월하는 비선형적 성장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국장은 이를 "기술 자산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성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임계점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대전이 연구개발(R&D) 투입액 대비 성과가 뛰어난 '선택적 고효율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대전의 20년 누적 R&D 투입액은 약 134조 원으로, 경기도(667조 원)나 서울(225조 원)에 비해 절대 규모는 작지만, 상장으로 이어지는 효율성은 단연 독보적이다. 충남(55.7조원), 경북(48.2조원), 인천(46.9조원), 경남(45.0조원) 등도 적지 않은 R&D 투자를 했지만, 기술특례상장 실적은 미미하다. 충남 3개, 경북 4개, 인천 10개, 경남 2개에 그쳤다.
이는 기술 축적의 양이 아니라, 그 기술을 자본시장 성과로 바꾸는 '전환 구조'의 유무가 성과를 결정한다는 한 국장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 국장은 "기술 투자를 많이 한다고 상장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며 "대전은 지난 40년간 대덕특구를 통해 쌓은 기술 자산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 대전이 만든 '금융 전환 시스템'
권역별 코스닥 상장 전환 구조 분석. 대전은 코스닥 상장예비심사 통과율(66.7%)과 최종 상장 전환율(90.6%) 모두 수도권과 기타 비수도권을 압도하며 전국 최고 수준의 진입 효율을 보였다. 이는 기술 자산이 자본 성과로 치환되는 '전환 메커니즘'이 대전에 강력하게 구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표=한종탁 국장]
대전의 효율성은 상장사 숫자에서만 높은 게 아니다. 상장으로 가는 길목에서도 높은 실력을 보여줬다. 대전 지역 기업들의 코스닥 상장 심사 통과율은 66.7%에 달한다. 심사 통과가 실제 상장으로 이어지는 '상장 전환율'은 90.6%다. 수도권 평균인 87.2%를 앞지르는 수치다.
한 국장은 2014~2025년 전체 코스닥 상장예비심사 신청 기업을 추적 분석했다. 수도권은 715개가 신청해서 454개가 통과했다(통과율 63.5%). 그중 396개가 최종 상장했다(상장률 87.2%). 반면 대전은 48개 신청에 32개 통과(66.7%), 29개 상장(90.6%)이었다. 기타 비수도권은 224개 신청에 129개 통과(57.6%), 108개 상장(83.7%)으로 나타났다.
대전의 통과율과 상장률이 수도권보다 높았다. 신청 건수 자체는 적지만, 일단 신청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한 국장은 이를 '선택적 고효율 구조'로 이름 붙였다. 반대로 기타 비수도권은 심사 단계에서 탈락이 많았다. 한 국장은 "전환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구조적 병목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한 국장은 "'지역 금융 전환 메커니즘(RFCM)'이 번역(Translation), 매개(Mediation), 축적(Accumulation)이라는 3단계 공정을 통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을 자본으로 바꾸는 3단계 공정. 기술 자산을 금융 평가가 가능한 정보로 바꾸는 '번역(Translation)', 투자 네트워크를 잇는 '매개(Mediation)', 상장 경험과 인적 자원을 쌓는 '축적(Accumulation)'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대전식 금융 전환 메커니즘(RFCM)의 구조도다. [표=한종탁 국장]
첫 번째 공정인 '번역'은 기술의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다. 대전은 전국 최고 수준의 특허 밀도를 자랑하며, 복잡한 기술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주는 전문 과학기술 서비스 기업들이 촘촘하게 집적되어 있다. 덕분에 기술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투자자들의 갈증을 지역 생태계가 내부적으로 시원하게 해소해준다. 연구실에서 잠자던 논문과 특허가 자본시장의 심사를 뚫고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바꾸는 과정이 대전이라는 인프라 안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는 기술과 자본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매개' 공정이다. 대한민국 벤처캐피털(VC)의 90% 이상이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모여 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전은 이 지리적 장벽을 보란 듯이 허물었다. 지역 기반 VC들이 일종의 '보증인'이자 '길잡이' 역할을 자처하며 수도권 투자자들을 대전 현장으로 계속 끌어들였다. 그 결과, 대전 기업들의 진가가 강남 투자 네트워크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금융의 강남 집중화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대전은 사람과 신뢰의 네트워크로 정면 돌파해냈다.
마지막은 성공의 경험을 지역의 근육으로 만드는 '축적' 공정이다. 대전에서 한 번의 상장 성공은 개별 기업의 경사를 넘어 지역 전체의 '무형 자산'으로 남는다. 연구소기업 밀도가 전국 1위인 대전에는 기술 사업화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본 베테랑들이 많다. 상장 준비에 필요한 서류부터 심사위원의 질문 의도까지, 이른바 '상장 족보'가 공식 문서가 아닌 선후배 사이의 소통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수된다. 대덕특구라는 밀집된 공간에 층층이 쌓인 이 살아있는 데이터들은 후배 창업가들이 겪을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러한 축적의 힘 덕분에 대전의 생태계는 어떤 경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복원력을 갖추게 됐다.
◇ 규제 완화, 대전 성장 변곡점
한 국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기술-금융 전환이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공간적 조건성'의 원리를 제시했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자본으로 바꿔줄 구조적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서만 성과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대전은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자본시장의 규제 완화라는 외부적 기회를 내부의 탄탄한 역량으로 완벽하게 낚아챈 지역으로 꼽힌다.
실제로 대전의 상장 성과는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바뀌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기술특례상장은 2005년 3월 처음 도입됐지만, 당시에는 바이오 업종에만 한정되어 활용도가 낮았다. 이후 2006년 2월 복수평가가 의무화되고, 2011년 3월 대상 업종이 확대되는 등 점진적 변화를 거쳤다.
본격적인 전환점은 2013년 4월이었다. 업종 제한이 전격 폐지되고 자기자본 요건이 1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아졌다. 자본잠식 조항도 삭제됐다. 대전의 딥테크 기업들에게 기회가 열린 순간이었다.
특히 2014년 7월 자본잠식률 기준이 10% 미만으로 완화된 시점은 대전 혁신 생태계에 '특이점'을 가져왔다. 기술력은 있지만 당장의 재무 지표가 취약했던 대전의 바이오·소재 기업들이 이 시점을 계기로 자본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2015년 4월에는 대상 기업군이 중소기업으로 확대됐다.
2019년 6월에는 이용 가능 기업이 스케일업 기업까지 확대됐다. AA 이상을 받은 경우 중복심사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도입됐다. 한 국장은 "2019년 심사 체계 고도화 이후 대전의 상장 비중이 더욱 가팔라진 것은 대전의 전환 시스템이 외부 환경 변화를 스스로 활용할 만큼 성숙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2023년 7월부터 2024년에는 제도 개선 14개 과제가 확정되며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핵심은 '초격차 기술 특례' 신설이다. 국가전략기술·국가첨단전략기술 기업 중 일정한 시장 검증을 받은 기업에 대해 단수 기술평가만으로도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제도를 '혁신기술 트랙'과 '사업모델 트랙'으로 체계화한 것도 이 시기다.
이러한 제도적 흐름은 지역 내 연구원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동기를 줬다. 후속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 문턱을 넘으며 대전만의 '성공 DNA'가 만들어졌다. 특정 시점 이후 성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비선형적 성장 모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제도적 기회와 내부 시스템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고리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그 중심에는 KAIST라는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와 이들이 공유하는 '암묵지'가 자리 잡고 있다.
대전 상장사 대표의 상당수는 KAIST 출신으로, 이들은 단순한 대학 동문을 넘어 기술적 이해도와 비즈니스 마인드를 공유하는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에게 대전은 단순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상장 노하우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흡수하고 성공 사례를 복제하는 이 강력한 인적 결합은 대전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창업하기 좋은 도시이자, 실패의 리스크가 가장 적은 혁신 거점으로 만들었다.
◇ "'금융 전환'이 지역 경쟁력 가른다"
물론 대전의 성장이 늘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애써 키운 기술 기업들이 상장 시점에 서울로 떠나버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은 그 아픔을 '기술 생산지'를 넘어 기업이 계속 머물며 가치를 실현하는 '금융 실현지'로 진화해야 한다는 정책적 자각의 기회로 삼았다.
한 국장은 이번 논문을 통해 대한민국 지역 혁신 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R&D 예산을 늘리고 연구소를 짓는 '기술 생산'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기술을 자본시장 성과로 연결하는 '금융 전환 효율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한 국장의 제언은 구체적이다. 우선 정책 평가 지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R&D 투입액 중심의 단편적 평가에서 벗어나 기술가치평가 통과 건수, 벤처투자 유치 규모, 상장 전 투자(Pre-IPO) 기업 수 등 실제 '금융 전환'이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 생산지와 금융 지원지 사이의 '공간적 부정합'을 해소하는 일도 시급하다. 지방에 단순한 제조 시설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VC, 기술평가기관, 증권사 상장 지원팀과 같은 핵심 금융 인프라가 지역에 직접 뿌리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정부의 역할 역시 단순한 자금 지원자를 넘어 기술 기업과 투자자를 정교하게 이어주는 '제도적 중개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국장은 "기술은 축적만으로 자본이 되지 않으며, 자본시장 성과는 지역 금융 전환 메커니즘의 형성과 작동에 의해 결정된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대전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 재현 가능한 구조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는 대전 모델을 우주, AI, 에너지 등 타 산업으로 확산시켜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는 균형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할 때"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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