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통설이 있다. 도시가 커지면 임금도, 혁신도, 생산성도 그 규모를 초과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도시 스케일링 법칙’이라 부른다. 도시는 인간을 더 똑똑하고, 더 부유하고, 더 창의적으로 만든다. 적어도 평균은 그렇게 말해왔다.
그런데 최근 한 연구 결과는 그 평균에 의문을 던진다. 도시가 클수록 1인당 산출이 늘어난다는 그 익숙한 곡선이, 알고 보면 상위 10%의 소수가 거의 다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도시 규모가 가져다준 효과의 최대 80%까지가 이들에게서 발생한다. 큰 도시가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안의 소수가 압도적으로 잘 굴러가고 있어서다. 평균은 그 풍경을 조용히 가려준다.
다른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독일 등 10개 선진국에서 상위 1%가 챙긴 소득 증가분의 3분의 2를 단 한 도시, 그 나라의 금융 중심지가 만들어냈다.
도시는 인간을 평등하게 끌어올리지 않는다. 큰 도시는 이미 잘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무대를 제공한다.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소수에게는 누적된 이득이, 그러지 못한 다수에게는 높아진 집세와 정체된 임금이 돌아간다.
한국은 세계 어디서도 보기 드문 일극 집중 국가다. 인구의 절반, 경제력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있다. 사람과 돈이 수도권으로 가는 것은 그곳이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위 연구들은 되묻는다. 그 생산성은 누구의 생산성인가.
수도권 평균임금이 비수도권보다 높다는 통계 뒤에는 두 개의 풍경이 겹쳐 있다. 상위 소득군에게 수도권은 자산이 쌓이고, 좋은 일자리와 정보가 모이는 무대다. 같은 수도권에서 평균적인 청년이 마주하는 현실은 천정부지의 집값과 끝나지 않는 통근, 미뤄지는 결혼과 출산이다. 수도권 집중이 만든 풍요는 평균 시민의 풍요가 아니라 상위층의 풍요다. 그러나 그 청구서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저출생, 지방 소멸의 형태로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온다.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도 이 질문 앞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진짜 균형은 분포 안에서도 측정돼야 한다. 비수도권의 평균 소득이 올라가도, 그 안에서 누가 그 상승분을 가져갔는지 묻지 않으면 균형은 또 다른 통계의 착시로 끝난다. 일극을 깨겠다며 비수도권에 ‘제2의 서울’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도시가 커지면 상위층이 가장 많이 가져가는 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극을 둘로 쪼개도, 꼭대기는 여전히 좁다. 그래서 정책의 질문은 도시의 크기에서 도시의 분포로 옮겨가야 한다. 평균을 끌어올리는 정책이 아니라, 그 평균 뒤에 가려진 분포의 모양을 함께 묻는 정책으로.
평균은 친절한 숫자다. 듣기 좋고, 보여주기 편하다. 게다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평균은 때때로 가장 정직한 거짓말이다. 평균값이 오르는 동안 누구의 삶이 진짜 나아지고 있는지, 누구의 삶이 그 평균 뒤에서 가만히 가라앉고 있는지. 이제 그 질문을 던질 때다.
강민규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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