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왕의 남자’는 절대권력을 가진 연산군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다. 영화 속 연산군은 불편한 말을 하는 대신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자신을 웃게 하고 위로하는 광대에게 마음을 기댄다. 권력이 듣고 싶은 말에 익숙해질수록 진실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최근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에서 권력과 언론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현재 지역에서는 단체장의 일방적인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정책을 추진하며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이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체장에게는 주민을 위해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을 이끌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한이 있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일방적이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지방자치는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의회와 공직자, 시민사회와 언론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질문하고 견제하며 때로는 협력해야 한다. 나는 4년간 지방의정의 현장에서 행정의 결정 하나, 언론의 보도 한 줄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가까이서 보았다. 언론의 문제 제기가 행정의 변화를 이끌기도 했고,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혼란을 주기도 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시민의 자리에서 지역언론을 바라본다. 행정기관의 자료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다른 선택은 없었는지, 시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고 확인해야 한다.
특히 행정광고와 언론의 관계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책 홍보를 위한 광고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 언론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불편한 보도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행정광고는 단체장의 개인적인 정치자산이 아니다. 주민이 낸 세금으로 집행되는 공적 예산이다. 따라서 집행 대상과 기준은 명확하고 투명해야 하며 시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이 행정을 비판한다고 해서 행정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언론이 존재할 때 행정은 더 꼼꼼해질 수 있다. 반대로 광고나 관계를 의식해 질문을 피한다면 감시자로서의 역할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에서 행정권력과 언론이 서로의 힘을 확인하는 기싸움을 벌이는 동안 정작 시민의 시선이 본질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새로운 논쟁을 따라가느라 시민이 처음 던졌던 질문을 놓치게 된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시민의 관심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지역언론은 정치권과 행정기관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이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까지 생각하게 해야 한다. 큰 목소리뿐 아니라 쉽게 묻히는 시민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도 지역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의정의 현장을 떠났다.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니 결국 질문은 단순해진다.
누구의 편인가보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단체장에게는 추진력이 필요하고, 의회에는 견제가 필요하다. 언론에는 감시와 검증이 필요하고, 시민에게는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권력은 일방적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주민의 세금이 사용되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 속 연산군에게 필요한 것은 불편하더라도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늘의 지방행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듣기 좋은 말보다 불편한 질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권력. 광고보다 시민의 알 권리를 우선하는 언론.
권력과 언론이 서로를 의식하는 순간에도 가장 먼저 의식해야 할 대상은 시민이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사회에서 행정과 언론이 지켜야 할 거리이며, 시민이 지역의 주인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소영 전 남구의원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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