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부산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찾아든 상어 ‘부캉이’는 시민들을 흥분시켰다. 그런데 두 차례에 걸친 ‘구조’라는 이름의 물대포와 그물 추방작전에도 필사적으로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우연이라 하기 어렵다. 부캉이는 갇히거나 사고당한 것이 아니며 구조가 필요치 않다고 스스로 말하는 듯하다. 과학으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인간도 상어의 마음속까지 알지는 못한다.
드넓은 바다를 누비던 상어가 도대체 왜 인간의 도시 안으로 들어왔을까. 3주 넘게 자리 잡고 떠나지 않는 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번 살펴보자.
모든 동물에게는 편히 쉴 안식처가 필요하다. 토끼에게 땅속 굴이, 딱따구리에게 나무 속 보금자리가 필요하듯 대양을 누비는 상어에게 바다 전체가 집일 수는 없다. 어딘가에 몸에 꼭 맞는 ‘상어 굴’이 필요했을 것이다.
건축과 도시 설계에서는 인간의 몸에 맞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이른바 ‘인간 척도’(휴먼 스케일·Human Scale)다. 어른 키의 절반도 안 되는 어린 조카나 손주들을 잘 관찰해보면 책상 밑에 들어가 놀기를 좋아한다. 또 의자를 양쪽에 벌려놓고 담요를 지붕처럼 덮어 그 속에서 놀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꼬맹이 척도’의 공간에서 포근함과 아늑함을 느낀다.
부산항 지도를 살펴보면 폭 50m, 길이 1.5㎞의 친수공원의 긴 수로는 인간에게는 제법 크지만, 상어에게는 광활한 부산항 앞바다에서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아늑한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소라게가 몸이 커지면 더 큰 소라껍데기를 찾아 이사하듯, 부캉이도 자신에게 꼭 맞는 ‘상어 척도’의 공간을 찾아낸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자라난 바닷속 어딘가 ‘나의 살던 고향’ 집과 닮은 곳을 기억해 냈을 수 있다.
상어가 수로에 갇혔다며 ‘구조’에 나서는 것은 인간의 짧은 생각일 수 있다. 굶어 죽을까 걱정하지만 수로에도 얼마든지 먹잇감이 있을 것이고, 정 배고프면 밖으로 나가 큰 물고기를 잡아먹고 올 수도 있다. 겨울 추위에 어쩌나 우려하지만 수온에 민감한 바닷물고기는 스스로 따뜻한 물로 이동할 것이다.
지구 생태계를 교란해온 것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인간의 시각으로 섣불리 개입해 부캉이를 굳이 내쫓을 이유는 없다. 벌써 100만명이 다녀갔단다. 수족관이 아닌 열린 자연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교감하는 명소가 된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관광자원이 어디 있겠는가. 환대는 못할망정 명예대사 자격까지 얻은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는 곤란하다.
사람과 상어 모두의 안전이 우선이다. 친수공원 수로는 해수욕장이 아니어서 사람과 상어가 직접 마주칠 일은 없다. 다만 물가로 내려가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데 그쳐야 한다. 먹이를 던져주는 행위도 막아야 한다.
특히 밤중에 강한 불빛을 비춰 상어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은 금지해야 한다. 이참에 상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수로 일부를 야간 통행금지 구간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무위자연을 설파한 노자 철학과 닿아 있는 비틀스의 ‘렛 잇 비(Let It Be)’ 노래처럼, 인간이 섣불리 개입해 상어를 괴롭히지 말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를 바란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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