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기고] 퇴·액비 품질기준, 이제는 하나로 통일해야

똑같은 퇴비와 액비인데도 어떤 법률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적합 판정을 받기도 하고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한다. 생산업체는 품질관리에 혼란을 겪고, 농업인은 어느 기준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기고] 퇴·액비 품질기준, 이제는 하나로 통일해야

이덕배 농축생태환경연구소 대표

[환경일보] 똑같은 퇴비와 액비인데도 어떤 법률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적합 판정을 받기도 하고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한다. 생산업체는 품질관리에 혼란을 겪고, 농업인은 어느 기준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현장 공무원 역시 서로 다른 법률을 적용해야 하는 이중 행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축순환농업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는 지금, 이러한 법적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요소와 암모니아 등 화학비료 원료의 수급과 가격이 크게 흔들렸다. 이에 정부는 수입 화학비료 의존도를 낮추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가축분뇨를 활용한 퇴비와 액비의 이용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를 뒷받침해야 할 법률은 서로 다른 품질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현재 가축분뇨로 만든 퇴비와 액비는 ‘가축분뇨의 관리와 이용에 관한 법률’과 ‘비료관리법’의 비료공정규격을 동시에 적용받는다. 문제는 같은 제품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두 법률의 품질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법률상으로는 가축분뇨법에서도 비료공정규격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기준은 상당 부분 다르게 적용되고 있어 법체계의 일관성을 훼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퇴비의 품질기준이다. 비료관리법은 부숙도, 유기물 함량, 중금속, 병원성 미생물, 염분, 함수율 등을 종합적으로 규정한다. 반면 가축분뇨법은 유기물 함량과 병원성 미생물 기준이 없고, 일부 중금속과 염분도 축종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함수율도 비료관리법은 55% 이하, 가축분뇨법은 70% 이하​로 규정하고 있어 똑같은 퇴비가 한 법에서는 적합, 다른 법에서는 부적합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액비도 마찬가지다. 비료관리법은 질소·인산·칼리의 양분함량과 병원성 미생물 등을 품질기준으로 관리하지만, 가축분뇨법은 양분함량 기준 없이 부숙도와 일부 중금속 등을 중심으로 관리한다. 더욱이 시행규칙에서는 농촌진흥기관의 비료사용처방서에 따라 살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양분함량 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법체계의 모순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행정 현장에서 그대로 혼란으로 이어진다. 시·군 농업기술센터는 부숙도 판정에는 가축분뇨법 기준을, 비료사용처방에는 비료관리법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같은 퇴비와 액비를 두고 서로 다른 법률을 적용하는 이중 행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농가와 생산업체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공무원도 어느 기준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다. 제조업체 역시 일관된 품질관리와 시설투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결국 경축순환농업 정책의 추진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경축순환농업은 탄소중립 실현, 화학비료 사용 절감, 토양 건강 회복을 위한 핵심 국가 전략이다. 하지만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은 현장에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퇴·액비 품질기준의 통일은 생산업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농업인은 안심하고 퇴·액비를 사용할 수 있고, 행정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국민은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농업환경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농촌진흥청의 퇴비와 액비의 품질기준을 하나로 정비해야 한다. 학계와 산업계,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법령 간 중복과 모순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토양검정과 비료사용처방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토양의사 제도를 적극 도입해서 퇴·액비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용을 지원하는 정책사업도 추진해야 한다.

경축순환농업의 성공은 현장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현장의 신뢰는 일관된 법과 제도에서 비롯된다. 퇴·액비 품질기준의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농업의 시대적 과제이다. 지금이야말로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