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과 동시에, 혹은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갖춘 인간을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대학이 하나의 특수한 학문, 하나의 전문 영역, 더 나아가 하나의 개별적 인간이 보편성 혹은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특수한 영역들을 서로 잇고 그것을 전체로서 사유하는 인문학과 기초학문이 대학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이 보편성과 전면성은 도시의 형성과 발달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 도시, 예를 들어 창원이 단순한 공업도시가 아니라 살만한 도시, 즉 그 공기가 문화와 휴머니티로 가득 차 있는 도시가 되려면 전면적으로 발달한 개인들이 그것을 이루는 것과 동시에 그것의 각 분야가 균형 있게 발달하고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종합 대학 역할이 중요하다.
종합 대학과 달리 과학기술원은 고급 이공계 인재 양성과 국가 연구·개발(R&D)을 목적으로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특수 대학원과 연구 중심대학이다. 과기원은 애초에 종합 대학과는 다른 목적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그러므로 국립창원대학을 없애고 그것을 과기원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은 창원과 경남을 위해 요구되는 종합 대학의 역할을 무시하는 일에 불과하다.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은 그 성과가 당장은 보이지 않는 그래서 시장 논리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학문이다. 그러나 비효율성이 곧 비생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탐스러운 열매가 맺히려면 나무를 둘러싼 것들, 즉 좋은 토양, 적절한 기후, 신선한 공기,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 이것들을 보존하고 개선하는 일은 당장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없거나 부실하다면 나무는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교육과 연구에서 이와 같은 것들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은 국립대학의 존재 이유에 속한다. 그러나 대학이 자신이 가진 보편성과 종합적 성격을 포기하고 비효율성을 구실로 인문학과 기초학문을 무시하거나 말살하는 것은 진공 속에서 나무를 키우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는,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창원이라는 시민의 거주지를 효율성으로만 지어진 공장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민주주의 역시, 특히 경쟁과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제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 체제로 선택하고 추구하는 것은 그 비효율성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단단한 토대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대학 교육은 긴박한 산업 성장을 위해 고속도로를 뚫었던 일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 독재자가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성과와 그 성과를 이루고자 사용한 방식을 대학이 추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재훈 국립창원대 인문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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