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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설계하는 나라만 살아남는다

대한민국은 삼성전자의 HBM4 상업 출하에서 보듯 AI 시대 핵심 부품 분야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부품 공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많은 칩을 판매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기고] AI 설계하는 나라만 살아남는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축적한

제조 데이터를 AI로 전환해

자동차 공장·조선소 움직일

산업용 에이전트 수출해야

김태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2026년 3월 엔비디아 GTC는 AI 산업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이번 행사의 화두는 생성형 AI 자체보다 에이전틱 시스템, 피지컬 AI, 인퍼런스, 그리고 AI 팩토리였다. 이제 AI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도구를 넘어 스스로 추론하고 계획하며 디지털 세계와 물리 세계에서 행동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도체와 제조업을 국가 경쟁력의 축으로 삼아온 대한민국에 이는 단순한 기술 유행이 아니라 산업 질서의 재편을 알리는 신호다. 특히 AI 경쟁의 축이 모델 개발에서 산업 적용과 운영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 의미를 던진다.

첫째, 주목해야 할 변화는 인프라의 경제성이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루빈 플랫폼은 블랙웰 대비 에이전틱 AI 추론의 토큰당 비용을 최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 역시 2026년 AI 예산을 10조원 규모로 확대하고 국가 AI 컴퓨팅 센터와 'AI 고속도로' 구축을 통해 5만장 이상 GPU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 보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연구자와 기업이 남의 플랫폼을 임차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 데이터와 우리 산업에 맞는 소버린 AI 역량을 축적하는 일이다. 인프라는 장비 숫자가 아니라 생태계 문제다.

둘째,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축적해온 제조 데이터를 '물리적 지능'으로 전환해야 한다. 엔비디아는 케이던스, 지멘스, 시놉시스 등과 함께 설계·엔지니어링·제조 워크플로를 계획하고 최적화하며 검증하는 AI 에이전트 생태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도 HD현대의 디지털 트윈, 현대자동차그룹의 AI 팩토리·자율주행·로보틱스 협력처럼 제조 현장과 실증 기반을 갖고 있다. 이제 목표는 반도체를 잘 만드는 나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장과 조선소와 연구소를 움직이는 산업용 에이전트와 운영 체계를 수출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축적된 현장 데이터와 엔지니어링 경험을 지능으로 전환하는 일이 곧 새로운 수출 전략이 될 수 있다.

셋째, 기술 경쟁력만큼 중요한 것은 신뢰의 제도화다. 우리나라는 인공지능기본법과 시행령이 2026년 1월 22일 발효됐고,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도 2025년 9월 공식 출범해 올해 관련 행동계획과 기본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에이전틱 AI 시대에는 성능만이 아니라 투명성, 위험관리, 책임성, 산업 현장 적용 기준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 신뢰할 수 있는 규범과 실행 체계를 먼저 정립하는 나라가 결국 글로벌 시장의 기준을 선점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삼성전자의 HBM4 상업 출하에서 보듯 AI 시대 핵심 부품 분야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부품 공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많은 칩을 판매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지능을 설계하고 산업 현장에 심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제조 강국의 성공 공식을 한 단계 확장해야 한다. 반도체, 데이터, 소프트웨어, 제도, 산업 현장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어낼 때 우리는 제조 강국을 넘어 지능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김태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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