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기계 영웅 20인 이야기···"없던 길 만들어 갔다" 50주년 기계연 주역...

지금 한국의 제조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자동차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다투는 '선도자(first mover)'가 됐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만들면서도, 그 공정에 투입되는 핵심 장비와 소재는 여전히...

기계 영웅 20인 이야기···"없던 길 만들어 갔다" 50주년 기계연 주역...

한국기계연구원 50주년 특집

'KIMM-FBO 명예의 전당' 조성

치밀한 절차로 11개 기술 20명 선정

논문·특허 수·기술료 아닌 사람에 방점

공통점, "시간·현장중심·실패의 축적"

한국기계연구원 본관 1층에 들어서면 오른쪽 KIMM-FBO 명예의 전당 동판이 가장 먼저 반긴다. 기계연이 50주년을 맞아 세계 최초, 최고, 유일한 성과를 개발한 연구진을 기념하는 헌액관이다. 기계연은 앞으로 2년마다 FBO를 선정할 계획이다.[사진= 한국기계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본관 1층 로비에 들어서 황금빛 동판 스물한 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계 최초·최고·유일의 성과를 만든 연구자 20인의 얼굴과 연구성과가 적힌 기념판이다. '자연모사' '함정 함내소음 및 수중방사소음 해석 기술',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및 자기부상 이송 기술', '의복형 바이오닉 슈트' '플라즈마를 이용한 미세먼지 저감' 등. 그리고 빈 동판에는 '미래의 FBO'라고 적었다. 후배 FBO를 위한 자리다.

오는 14일 한국기계연구원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갖는다. 기계연은 'KIMM-FBO 명예의 전당'을 조성하고 50년의 성과와 함께 연구진의 역할, 시간을 조명했다.

FBO는 First(최초)·Best(최고)·Only(유일)의 머리글자다. 반세기 역사에서 세계 최초, 세계 최고, 대한민국 유일의 성과를 이룬 연구자를 발굴하고 기리는 제도다. 11개 기술 분야에서 총 20명(First 11명, Best 9명)이 선정됐다. 재직자 12명, 퇴직자 8명. 기계연의 FBO는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SCI 논문 수, 특허 등록 건수, 기술이전 매출액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과 달리 사람에 방점을 뒀다. 그들의 축적의 시간을 인정하고 모두에게 알리며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 왜 FBO?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한국 산업기술의 역사는 오랫동안 '추격'의 역사였다.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기술을 더 빠르게, 더 싸게 구현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이었다. 1976년 창립 당시 기계연의 미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핵심 기계부품과 장비를 국산화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다.

반세기가 흘렀다. 지금 한국의 제조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자동차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다투는 '선도자(first mover)'가 됐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만들면서도, 그 공정에 투입되는 핵심 장비와 소재는 여전히 일본과 미국에 의존한다.

류석현 원장은 "FBO를 해본 경험이 부족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전문가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선도 국가의 격차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을 만들어 온 사람의 경험과 태도의 문제라는 뜻이다.

KIMM-FBO는 바로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기관 50년의 역사 속에서 이미 FBO를 이룬 사람들을 발굴하고, 그 과정과 인물을 조명함으로써 '우리도 세계 최초를 해낼 수 있다'는 문화를 조직 내부에, 나아가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확산시키겠다는 취지에서다.

선정 과정은 치밀했다. 미래위원회 인재양성·조직문화 분과에서 개념과 절차를 구체화한 뒤, 2025년 5월부터 전 부서를 대상으로 후보자 추천을 받았다. 접수 결과 43개 기술 분야 64명이 올라왔다. 세 차례의 위원회 심사를 거치며 36개 기술 58명 → 15개 기술 31명 → 최종 11개 기술 20명으로 압축됐다. 이번 KIMM-FBO는 유일무이한 성과와 인물은 선정되지 않았다. 인증위원회에는 외부 전문가 6명이 참여해 객관성을 높였다.

◇ 반세기의 결 기계연 50년과 FBO

FBO가 탄생하기까지 기계연의 반세기 역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맥락이다. 1976년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출범한 한국기계연구원은 대한민국이 산업화의 초입에서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으려 분투하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초창기 임무는 명료했다. 수입에 의존하던 기계부품과 장비를 국산화하고, 공장과 조선소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실용기술을 빠르게 공급하는 것. 연구보다는 개발이, 원천보다는 응용이 더 시급했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며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산업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국산화'의 의미가 달라졌다. 단순 복제가 아니라 외국 기술이 전혀 진입하지 않은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박성제 박사 팀이 극저온 냉각기를 개발하던 1980년대 후반이 그랬고, 김재승 박사 팀이 전 세계에 공개된 전례 없는 함정 소음 해석 SW를 개발하던 1990년대가 그랬다. 이들은 참고할 교본도, 앞서간 선배 연구자도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원천기술과 사업화의 연계가 본격화됐다. 박천홍 박사 팀의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가 847억 원의 누적 매출을 올리고, 정준호 박사의 나노 필름 기술이 2,000억 원대 시가총액 기업의 상장에 기여한 것은 이 시기의 성과다. 기술이 연구실을 벗어나 시장에서 검증받는 과정에서 기계연은 '국책연구기관'을 넘어 산업 생태계의 실질적 파트너가 됐다.

기계연 50년사는 이 흐름을 이렇게 기록했다.

"창립 이후 한국기계연구원은 대한민국 기계기술 발전을 이끄는 핵심 연구기관으로서 산업 경쟁력 강화, 첨단 원천기술 확보,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적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명예의 전당에 기록된 연구자들은 새로운 기술 영역을 개척하고 기준을 제시하며 국내 기술 경쟁력의 기반 형성에 기여했다."

◇ 열한 가지 성과, 스무 명의 사람들

KIMM-FBO에 선정된 20명의 연구진들.[사진= 한국기계연구원 제공, 대덕넷 편집]

이번 FBO 선정자들의 성과는 분야도, 시대도 다르다. 하지만 각각의 기술이 품고 있는 의미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가 몰랐던 길을 먼저 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재승·김현실 박사는 함정의 소리를 잡은 사람들이다. 전쟁은 소리의 싸움이기도 하다. 잠수함과 수상함은 적의 소리를 잡아내면서 자신의 소리를 숨긴다. 그 소리를 분석하는 전용 소프트웨어는 세계 어느 나라도 기술을 공개하지 않는다. 군사와 안보 기밀이기 때문이다. 김재승·김현실 박사 팀은 그 소프트웨어를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했다. 외국 기술을 빌릴 수도, 참고할 선례도 없는 자리에서 만들어낸 기술이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한국 해군은 신형 함정의 설계와 건조를 외부 전문가의 판단에 맡겨야 했다. 설계 주권의 문제였기에 이 기술은 대한민국의 미래안보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천안함 앞에 선 연구자들고 있다. 정정훈·권정일 박사가 주인공이다. 함정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중폭발이 발생했을 때 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디서 불이 나면 어떻게 번지는지, 그 모든 조건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이 함정 생존성 설계·해석 기술이다. 정정훈·권정일 박사 팀은 국내 유일의 독자 기술로 해군 신조함정 18척을 지켰다. 이지스함 한 척이 1조 원이다. 수십조 원의 국가자산을 지키는 기반을 기술이전 29.6억 원의 기술료로 만들었다는 것, 그 비대칭이 이 기술의 가치를 말한다.

어둠 속의 눈 기술의 주역은 박성제·홍용주 박사이다. 전차의 야간 시야는 빛이 아니라 열로 작동한다. 그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 센서는 극저온으로 냉각해야 작동한다. 이 핵심 부품을 1980년대 후반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박성제·홍용주 박사 팀의 국산화는 단순한 수입 대체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 기술과 동등한 성능을 갖추고 군 현장의 혹독한 기준을 통과해 냈다. 이후 K-방산 수출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이 기술은 국산 전차의 눈이 됐다. 기술이 방산 생태계의 기반이 된 사례다.

신병천·한형석 박사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는 바퀴 없이 뜬다. 분진과 소음이 없고 유지보수 비용도 낮다. 2016년 국내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고 원천기술은 반도체 웨이퍼 이송 시스템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국내 확산은 지연됐다. 기술의 완성이 곧 사회의 수용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이 기술의 여정이 그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현재 신병천 박사는 해외 협력을 이어가며 기술의 쓰임을 찾고 있다.

34년의 긴 꿈을 이뤄온 김용진·한방우 박사. 화력발전소의 굴뚝 속, 반도체 공장의 배기관 등 미세먼지가 가장 짙게 피어오르는 그 자리에서 34년을 버텼다. 김용진·한방우 박사 팀의 전기집진기 기술은 화력발전소에서 시작해 반도체 공정까지 영역을 넓혔다. 기술을 이전받은 에코에너젠은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싱가포르 글로벌파운드리에 기술을 공급하는 관련 분야 세계 최고 기업이 됐다. 출연연 연구가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기업을 키워낸 경로를 이 기술이 보여준다.

'남들이 안 한 기술'로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축적의 30년을 일궈낸 송영훈·이대훈 박사. 1994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플라즈마 기술에 뛰어들었다. 30년 후 그 기술은 일본이 실패한 조건에서 작동했고, 공군 특수차량에서 기존 기술이 연이어 실패한 부분을 거뜬하게 해결했다. 영하 30도의 울란바타르, 한밤중의 선박 엔진, 새벽 3시의 발전소. 환경이 가장 나쁜 현장을 직접 다니며 쌓은 기술이다. 세계 최초 상용화이자 세계 유일의 사례. '남들이 하지 않은 기술'을 택한 결단이 만든 결과다.

박천홍·오정석 박사의 연구개발 과정은 실패로 쌓아 올린 역작이다. TV와 스마트폰 화면을 선명하게 만드는 광학필름. 이 필름을 제조하는 장비는 전량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됐다. 박천홍·오정석 박사 팀이 이를 국산화한 과정에는 실험실 바닥을 가득 채운 오일도, 전원 노이즈 해결에 소비한 6개월도 있었다. 완성된 기술은 847억 원의 누적 매출을 올렸고, 사업화 기업은 반도체 공정으로 영역을 넓히며 성장 중이다. 연구실의 실패가 상용화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이 기술의 여정이 증명한다.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보다 가는 형상기억합금 실을 한 올 한 올 직조해 만든 옷감이 근육처럼 힘을 발휘한다. 세계 최초의 기술이다. 박철훈 박사가 이 연구를 이어가는 이유는 수치가 아니라 표정에 있다. 착용 테스트에서 평소 들지 못하던 무게를 들어 올린 참가자가 놀라워하던 그 표정.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이 "빨리 세상에 나와달라"고 했던 그 말. 기술의 목적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박철훈 박사는 현장에서 배웠다.

나노투명스크린, DNA 니들패치, 나노플라즈모닉 컬러 필름. 한 사람에게서 6개의 세계 최초 원천·사업화 기술이 나왔다. 정준호 박사가 그 주역이다. 성과는 단일 성과로도 충분히 의미 있을 기술들이 한 연구자의 이력에 중첩돼 있다. 그 배경에는 2002년 입소 이후 10년간 장기 대형 과제를 연속으로 수행하며 쌓은 전문성이 있다. 기술 하나가 아니라 기술을 만드는 역량이 축적됐을 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자연의 원리를 연구개발로 완성한 사례도 있다. 김완두·임현의 박사이다. 연잎이 물을 튕겨내는 원리, 상어 피부의 낮은 마찰 구조. 자연의 원리를 공학 언어로 번역하는 분야를 '자연모사기술'이라 부른다. 김완두·임현의 박사 팀은 그 개념 자체를 세계 최초로 정의하고 국제 표준화를 이끌었다. 기술을 만드는 것을 넘어 기술의 개념과 기준을 만든 것이다. 현대자동차 유리의 자기세정 기술로 상용화가 진행 중이며, 임현의 박사는 기계연 첫 여성연구원으로서 이 분야 개척의 역사를 함께 썼다.

마이크로 LED를 기판으로 옮기는 공정은 비용이 높아 상용화의 걸림돌이었다. 이학주·김재현 박사 팀은 롤 공정을 활용해 대량·고속 전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 벽을 낮췄다. 단원자층 나노박막의 물성 측정 원천 기술, IEC 국제 표준 9건 제정, 영상 왜곡 없는 신축 디스플레이 개발. 이학주 박사는 1985년 입사해 2025년 정년을 맞았지만 지금도 초음파 기반의 뇌 영상화 기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정년이 연구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이력이 보여준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지난 2월 KIMM-FBO 인증식을 가졌다.[사진= 한국기계연구원]

◇ 공통된 언어 "시간, 현장, 그리고 실패 축적"

스무 명의 연구자들이 걸어온 길은 각기 다르다. 국방, 환경, 디스플레이, 바이오, 에너지.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간이다. FBO 수상자들의 해당 기술 연구 기간은 대부분 10년을 훌쩍 넘는다. 김완두 박사의 자연모사 연구는 41년 재직 기간의 거의 전부였다. 박성제 박사의 극저온 기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다. 송영훈 박사의 플라즈마 연구는 1994년 결단에서 시작해 30년이 됐다. 김용진 박사는 34년을 "인생에서 한바탕 긴 꿈"이라 불렀다. 단기 성과와 속도를 강요하는 R&D 생태계에서, 이들은 몸으로 '장기 지속'의 의미를 증명했다.

둘째, 현장이다. FBO 기술들은 예외 없이 실제 현장에서 검증된 기술들이다. 발전소, 잠수함, 반도체 공장, 몽골의 버스, 공군 특수차량. 연구실의 결과가 현장에 박히는 과정에서 수없이 깨졌고, 다시 만들어졌다. "이런저런 산업 현장들을 마다하지 않고 한 우물을 열심히 판 거죠"라는 이대훈 박사의 말은 이 모든 수상자들의 공통된 경험을 압축한다.

셋째, 실패의 내면화다. 박성제 박사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6℃까지 안정적으로 냉각하는 데 성공했을 때 연구원들이 함께 환호했던 순간"을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로 꼽았다. "연구과제 최종 평가 3일을 앞두고 4~5명의 연구원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연속 시험을 진행하던 때"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실패와 긴장의 서사는 논문에도 특허에도 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같은 축적과 열정야말로 기술의 진짜 뿌리다.

명예의 전당은 과거를 기념하는 공간이지만, 기계연이 이 제도를 설계하면서 더 강조한 것은 미래다. 2년 단위로 새로운 FBO를 발굴한다. 강연과 세미나를 통해 연구 과정을 공유한다.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 경험이 후속 세대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그리고 비워 둔 동판은 지금 연구실 어딘가에서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기술과 씨름하는 젊은 연구자를 응원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김완두 박사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First, Best, Only'라는 가치에 닿을 수 있었다"면서 "비록 지금은 현직을 떠나 직접 연구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후배들이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뒤에서 성원하며 한국기계연구원의 위상 제고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 기계로 50년, 사람으로 이어지는 다음 반세기

2025년 기준, 한국기계연구원의 연구원 수는 약 1400명이다. 이 중 20명이 첫 FBO로 선정됐다. 대덕넷은 20명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답변이 온 연구진 15명의 연구 여정과 미래 당부와 포부이다(순서 기준 없음).

△박성제 박사(BEST)

박성제 박사는 1991년 입사해 35년 넘게 한국기계연구원에 재직하며 국방용 열감지 센서용 극저온 냉각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연구자다. 그의 대표 성과는 야간이나 악조건에서도 물체가 방출하는 적외선 열 신호를 정밀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센서를 극저온으로 냉각하는 핵심 냉동기 기술 개발이다.

이 기술은 전차 등 군 장비에 탑재되는 열영상 장비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당시 해외 수입 제품에 의존하던 냉동기를 국산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당 기술은 기술이전을 통해 기업에서 실제 냉동기를 생산·납품하고 있으며, 군 장비뿐 아니라 다양한 극저온 응용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군용 시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년간 연구에 몰두했던 박 박사는 "당시에는 새벽에 귀가하는 날이 반복될 정도로 개발이 쉽지 않았다"며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많다"고 회고했다.

박 박사는 "극저온 기술은 아직 국내에서 인식이 낮지만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라며 "기계연이 이 분야 연구를 오랫동안 주도해온 만큼 핵심 연구 인프라 역할을 지속해 국내 관련 연구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기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완두 박사(BEST)

김완두 박사는 1982년 한국기계연구원 공채 1기로 입사해 41년간 연구원에 몸담은 대표 연구자다. 그의 대표 성과인 자연에서 원리를 찾아 공학기술로 구현하는 자연모사 기술 연구는 이번 KIMM-FBO에 선정됐다.

그는 당시 국내에서 생소했던 자연모사 기술 분야를 기계연이 선도적으로 개척할 수 있도록 연구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연구를 추진했던 시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자연모사를 기계연의 새로운 연구 지평으로 확장한 경험이 지금도 가장 뜻깊다"고 회고하며, "자연모사라는 연구 흐름을 기계연이 선도적으로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23년 퇴직 이후에도 과학기술인협동조합, 대덕클럽 회장, 공공과학기술혁신협의회 활동 등을 통해 출연연 발전과 후배 지원에 힘쓰고 있는 그는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며 "연구원은 선후배가 아니라 동등한 동료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신병천 박사(FIRST)

신병천 박사는 자기부상열차 기술 개발을 이끌었다. 1998년부터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사업 단장을 맡아 2012년 인천공항 구간 세계 두 번째 상용화를 이끌었으며, 이후 도시철도법에 따른 차량성능인증을 획득한 국내 최초 상용 도시형 자기부상열차기술(2016년)로 완성시켰다.

신 박사는 연구실에서 완벽했던 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구와 실제 현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며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기부상열차는 기존 바퀴식 철도 대비 분진과 소음이 적고 유지보수 비용도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내 확산은 지연된 상태다. 신 박사는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향후 차세대 철도 시스템으로 다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도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등과 협력을 추진하며 기술 자문과 컨설팅을 이어가고 있다.

인생의 절반가량을 기계연에서 보낸 신 박사는 "기술 확산과 인재 양성 등 출연연의 간접적 기여도 매우 크다"며 "국가와 사회를 위한 연구에 헌신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 박천홍 박사(BEST)

박천홍 박사는 1985년 입사해 41년째 한국기계연구원에 몸담으며 초정밀 가공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연구자다. 그의 대표 성과인 대면적 미세패턴 초정밀 롤 금형가공기는 TV와 노트북 등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LCD 백라이트유닛(BLU)용 대면적 미세패턴 광학필름 생산 장비다. 당시 국내에는 관련 장비 기술이 전무해 해외 제품에 의존했지만, 기계연이 이를 국산화하며 초정밀 가공기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해당 기술은 휴대전화 화면의 시야각 제어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 분야에도 응용되고 있다.

한 명의 연구자가 여러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던 시기, 박 박사는 "초정밀 롤 금형가공기만큼은 깊이 있는 연구에 집중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의지로 시작한 과제"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수요기업 임원들을 운영위원으로 참여시켜 현장 수요를 반영했고, 이를 통해 실용성과 사업성을 모두 확보했다. 해당 기술은 기업에 이전돼 현재 중국 생산라인 등에 공급되고 있으며, 올해 누적 100대 판매 달성을 앞두고 있다.

현재도 장비 핵심 부품인 정밀 베어링 기술이 기업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기술 지원과 자문을 이어가고 있는 박 박사는 "최근 반도체 공정 분야에서 초정밀 가공기술 수요가 다시 확대되고 있다"며 "후배 연구자들이 축적된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학주 박사(FIRST)

이학주 박사는 1985년 입사해 지난해 3월 정년퇴직 했다. 그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 마이크로 LED를 기존 방식보다 빠르게 기판으로 옮기는 롤 전사기술을 개발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 성과로 KIMM-FBO에 이름을 올렸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는 높은 휘도와 넓은 시야각, 우수한 내구성을 갖췄지만 많은 LED가 필요하고 전사 공정 비용이 높아 상용화에 한계가 있었다. 이 박사는 롤 공정을 활용해 대량·고속 전사가 가능하도록 하며 가격 경쟁력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

퇴직 이후에는 기계연과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에서 확보한 원천기술을 응용해 고령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적용과 사업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초음파를 활용해 뇌 내부를 빠르게 영상화하고, 치매와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기술 개발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이 박사는 "시대에 따라 출연연의 역할도 달라진다"며 "기업과 정부가 필요로 하는 기술 공급 기지이자 사회문제 해결의 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에게는 "한 팀을 넘어 기관 간 융합 연구를 통해 더 큰 기술적 성과를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정훈 박사(FIRST)

정정훈 박사는 기계연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계연은 배움과 성장 체험의 장임과 동시에 많은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교류의 장이었다"며 "35년(위촉기간 포함) 동안 기계연과 함께할 수 있어서 매우 영광이었고 행복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 박사는 32년간 기계연에서 한국 해군 함정의 생존성 향상을 위한 연구와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연구자다. 1992년 2월 입소해 2024년 7월까지 재직하며 수중폭발 내충격 설계 기술, 함정 통합생존성 해석 기술, 인공지능 기반 화재탐지 체계 등을 실제 함정에 적용하는 성과를 거뒀다.

연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민군합동조사단 선체분과 민간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꼽았다. "연구생활에 큰 전환점이 됐다"며 "국가적 현안에 대한 출연연 연구자로서의 자세와 사회적 책무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이공계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8대 회장으로 활동한 경험도 의미 있었다고 회고했다. "출연연 종사자, 정부부처 관료, 국회의원, 언론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만남과 토론을 통해 국가 과학기술 체계와 출연연의 발전방안을 거시적 관점에서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소중한 연구 및 기술 개발의 기회를 만들어주신 유관기관 관계자분들과 함께해 주신 참여 연구원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재 수퍼센츄리 부회장으로 재직 중인 정 박사는 후배 연구자들에게 "보여주기식 성과를 내기 위한 부산함을 버리고 냉철한 성찰로 내실을 다져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와 국민에게 보답해야 하는 출연연 연구자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과 신영복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완고한 벽을 깨뜨리지는 못하지만, 깜깜한 어둠 속을 달려가 벽에 부딪치는 작은 소리를 보내옴으로써 보이지 않는 벽의 존재를 알리기에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송영훈 박사(BEST)

기계연의 발자취를 40년 가까이 지켜본 송영훈 박사는 "80~90년대 국산화와 역설계가 핵심어였던 시절, 기계연의 역할이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며 "그 일원이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플라즈마 기술을 활용한 유해가스 처리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연구자다. 그의 대표 성과인 플라즈마 활용 유해가스처리 기술은 이번 KIMM-FBO에 선정됐다.

1994년 박사학위를 받고 기계연에 복귀했을 때 대기오염이 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시기였다. 유해가스 처리에는 연소나 촉매 등 여러 기존 기술이 있었지만, 그는 당시 산업계에서는 생소했던 플라즈마 기술을 과감히 선택했다. "앞으로 30년은 연구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남들이 하지 않은 기술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디젤 차량 매연 여과 필터 재생 기술, 반도체 공정 난분해성 온실가스 처리 기술 등이 여러 기업에 이전돼 상용화에 성공했다. 현재도 기계연이 개발한 플라즈마 설비 천여 대가 산업 현장에서 운용 중이다. 송 박사는 "이러한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한 지금이야말로 기계연이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기계연 연구원들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라며 "이제 기업은 경제성만 확인되면 거의 모든 기술을 스스로 개발할 역량을 갖췄고, 과거와 달리 기계연에서 기술을 직접 공급하는 수요가 줄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 수요 감소가 기계연의 역할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송 박사는 "기업 현장에 가보면 과거보다 더 깊은 지식과 난이도 높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쇠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며 "변화된 시대에 적극 대응해 국민 모두가 응원하는 연구소가 되길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김용진 박사(FIRST)

김용진 박사는 34년간 한국기계연구원에 몸담으며 정전기를 이용한 미세먼지 저감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연구자다. 작년 7월 정년퇴직한 그는 "기계연에서의 34년은 인생에서 한바탕 긴 꿈을 꾸고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라며 "만감이 교차한다"고 회고했다.

1991년 KAIST에서 미세입자 열유동 전공으로 학위를 마치고 기계연에 입사한 김 박사는 1992년부터 전기집진기 개발 과제를 시작했다. 당시 화력발전소 건식 전기집진기는 일본·미국·독일 등 기술제휴선에 의존하던 상황이었다. 한국중공업과 G7 사업으로 독자모델 전기집진기의 핵심 집진방전극을 9년간 개발해 2001년 500MW 석탄 화력발전소에 국내 최초로 실용화했다.

그는 "상용화를 위해 연구소 내 새 건물을 짓고 파일럿 플랜트 실험을 거쳐 실제 화력발전소에 3개월 이상 상주하며 9년간의 장기 연구를 함께한 산업계와 팀 연구자들이 새삼 떠오른다"고 회고했다.

2000년대에는 반도체 공정 배출 초미세먼지에 대응하는 고속유동 습식 전기집진기를 세계 최초로 실용화해 삼성전자에 적용했다. 참여기업인 에코에너젠은 현재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대만 TSMC, 싱가포르 글로벌파운드리 등에 기술을 공급하며 연매출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해 관련 분야 세계 최고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김 박사는 50주년을 맞은 기계연의 미래와 관련해 출연연의 역할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기계분야는 수만 개 이상의 광범위한 분야인 반면 기계연 연구자는 수백 명에 불과해 전 분야를 담당할 수 없다"며 "시급한 기술 지원과 함께 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익적 분야나 5년 이상의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템 발굴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배 연구자들에게는 "논문과 특허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연구 결과가 세상에서 실용화돼 굴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특히 연구의 제품화와 실용화 성공을 위해서는 관련 기업 관계자와 연구원 상호간 좋은 인간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김현실 박사(FIRST)

김현실 박사는 1991년 입사해 32년간 재직하며 함정 소음 해석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다.

그의 대표 성과는 신조 함정의 함내소음과 수중방사소음을 해석하는 소프트웨어(SW) 개발이다. 해당 기술은 함정 건조 이전 단계에서 소음 저감 방안을 사전에 제시할 수 있도록 해, 실제 시험 평가에서 기준을 만족하도록 지원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박사는 실제 함정에 승선해 실선 측정을 수행했던 경험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특히 소형 함정에서 1박 2일 동안 배멀미에 시달리며 진행했던 측정 실험이 연구자로서의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그는 "50이라는 숫자는 상징성이 매우 크고, 한 기관이 여러 측면에서 절정기에 와 있다는 의미로 느껴진다"고 평가하며 32년간의 재직 기간을 돌아봤다. 김 박사는 "주어진 업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창의적인 연구나 새로운 학문 분야에 대한 도전을 병행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김재현 박사(FIRST)

김재현 박사는 2003년 한국기계연구원에 입사해 현재까지 20여 년간 재직하며 나노측정 기반의 롤 전사 및 메타디스플레이 제조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연구자다.

그의 대표 성과는 이학주·장봉균 박사와 함께 이룬 나노측정 기반의 롤 전사 및 메타디스플레이 제조 기술이다. 나노스케일 반도체 공정을 통해 제조된 10nm급 나노구조물의 역학적·물리적·광학적 물성을 측정하는 원천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를 스케일업해 태양전지·반도체·디스플레이용 소자의 롤 전사 공정 기술로 발전시켰다.

이후 기계적 메타구조체와 메타스탬프 롤 전사 기술을 활용한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 제조 기술로 고도화했으며, 세계 최초로 신축 시에도 영상 왜곡이 없는 컬러 디스플레이 구현에도 성공했다. 두 성과는 2010년, 2020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에 선정됐으며, 발명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롤 전사 기술로 마이크로 LED를 회로 기판에 옮겨 처음으로 패널에 불이 켜지던 순간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김 박사는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던 시기에 입사해 선배 연구원들의 도움으로 즐겁게 연구할 수 있었다"며 "50주년의 절반에 가까운 기간을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후배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연구는 선후배, 동료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에서 나온다"며 "이러한 협력을 더욱 장려하는 기관 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정석 박사(BEST)

오정석 박사는 KAIST 기계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2005년 말 한국기계연구원에 입사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그는 "1976년부터 시작된 기계연의 역사를 되짚으며 한국 기계산업과 함께 발전해온 연구원의 발자취를 깊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 성과는 박천홍 박사와 함께 개발한 대면적 미세패턴 광학필름 제조용 초정밀 롤 금형가공기다. 약 2m 길이의 롤 금형에 다이아몬드 공구를 이용해 10~100㎛ 주기의 미세패턴을 광학적 품질로 균일하게 가공하는 이 장비는 LCD 백라이트유닛용 광학필름 생산의 핵심 설비다.

개발 이전에는 미국과 일본 제품에 전량 의존하던 것을 100% 국산화했으며, 기술이전을 통해 누적 매출 약 847억 원(수출 509억 원 포함)을 달성했다.

개발 과정에서 전원 노이즈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을 소비했고, 유정압 베어링 오일 순환 장치의 오작동으로 실험실 바닥이 오일로 가득 찬 상황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는 "바닥을 닦으며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었지만,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상용화 성공의 기반이 됐다"며 "당시의 힘든 기억이 지금은 가장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후배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논문과 특허뿐 아니라 실제로 사회와 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머무르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기계연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철훈 박사(BEST)

박철훈 박사는 2007년 1월 한국기계연구원 첨단로봇연구센터에 입소해 올해로 20년째 재직 중이다. 입소 당시 받아든 30주년 기념연보를 보며 선배들의 연구업적에 감탄했던 그는 "어느새 50주년이 됐고, 기념책자에 나의 연구내용도 실리게 됐다"며 감회를 전했다.

그의 대표 성과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의복형 바이오닉 슈트' 기술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보다 가는 형상기억합금(25~40㎛)을 코일 형태의 실로 제작한 뒤 옷감을 짜듯 직조해 근육처럼 힘을 발휘하는 '근육옷감'을 구현했다. 이 근육옷감은 자체 무게의 1,000배에 달하는 부하를 지지할 수 있으며, 이를 적용해 세계 최경량 수준인 1kg 미만의 의복형 소프트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다. 근육옷감의 연속 대량생산이 가능한 자동직조장비도 함께 개발해 상용화 기반을 마련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소형 베틀로 한 올 한 올 직조해 처음으로 근육옷감을 완성했을 때다. 이후 착용 테스트에서 평소 들지 못하던 무게를 들어 올린 참가자가 놀라워하던 표정과, 몸이 불편한 환자와 어르신들이 "빨리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하던 순간이 연구를 이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현재 근육옷감 기반 의복형 바이오닉 슈트 기술을 토대로 창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 기술이 근력이 약해진 고령자, 반복 작업을 하는 근로자,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의 일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는 "연구에 매몰되다 보면 연구의 진짜 목적을 잊게 된다"며 "'나의 연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말고, 연구실 밖 사람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준호 박사(FIRST)

정준호 박사는 2002년 2월 한국기계연구원에 선임연구원으로 입소한 이후 나노공정장비연구실장, 정책·전략연구실장, 나노융합기계연구본부장, 전략조정본부장을 역임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전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학연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그는 "한국기계연구원의 지난 50년은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발전 역사와 함께해 왔다"며 "그 역사의 현장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대표 성과는 나노융합제품의 대량제조를 위한 세계 최초 수준의 원천기술 및 사업화 기술 개발이다. 19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국내외 특허 출원·등록 411건 이상, SCI 논문 185편 이상의 연구성과를 창출했다. 총 20건의 기술이전으로 22억 원의 기술료 계약과 10억5800만 원의 기술료 징수 실적을 거뒀으며, 연구소기업 메타투피플과 에이디엠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육성했다.

주요 성과로는 100인치 이상 초대형 나노투명스크린, 메타렌즈 탑재 고에너지 집속초음파기기, 나노·마이크로 DNA 니들패치, 나노플라즈모닉 컬러 필름·플레이트 등의 세계 최초 사업화가 있으며, 대통령표창(2019), 국회 공로장(2024) 등 11건의 대내외 포상을 수상했다.

2002년 입소 당시 나노기술 연구개발 전담 부서 신설과 함께 시작된 '나노메카트로닉스기술개발사업'에 핵심 연구자로 10년간 참여하며 나노제조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이 경험은 2014년 글로벌프론티어사업 '파동에너지 극한 제어 연구단'을 기계연으로 유치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됐다.

그는 "5년 이상의 장기 대형 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회고했다.

후배 연구자들에게 "기계연은 지난 50년 동안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글로벌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며 "10년 후 기계연이 규모와 인지도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10배 이상 성장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임현의 박사(BEST)

2003년 12월 입사한 임현의 박사는 기계연 창립 50주년을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입사 23년째인 그의 대표 성과는 자연모사기술 분야다. 초발수·반사방지 유리, 물 수확기, 촉각센서 등을 개발했으며, 현재는 '자율랩'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입사 이틀째 날을 꼽았다. 종무식에서 원장과 동석했을 때, 옆 동료들이 "임 박사랑 같이 가면 사람들이 쳐다본다"며 1미터 앞에서 걸어가던 장면이다. "첫 여성연구원이 지고 가야 하는 몫이었습니다." 그 기억 속에는 무거움과 함께 개척자로서의 자부심이 동시에 담겨 있다.

임 박사는 기계연의 역할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출연연의 역할은 명확하다 국가의 기술을 지켜내는 수비대"라면서 "하지만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들이 점점 더 다양화되고 숨가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는 "큰 뜻을 품고 넓은 안목으로 모든 일에서 강약조절을 할 수 있는 균형을 지닌 후배님들이 만들어갈 기계연을 기대한다. 함께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대훈 박사(BEST)

이대훈 박사는 2004년부터 기계연에 재직하며 20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돌이켜 보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특별히 다양한 산업 현장을 다니면서 실제 산업 현장의 상황과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계연에서의 20여 년을 두 시기로 나눴다. 첫 번째는 플라즈마 기술로 배출가스·오염물질·온실가스를 제거하는 환경 문제 해결의 시기, 두 번째는 플라즈마 기술을 화학전환과 소재 생산에 활용하는 현재다. 이번 FBO는 첫 번째 시기의 성과, 즉 플라즈마 버너와 플라즈마 개질기를 이용한 매연·미세먼지 저감 기술에 대해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현장의 풍경들을 꺼냈다. 매연이 심하게 배출되는 배기구에 얼굴을 대고 일한다든지, 질식을 떠올리게 하는 악취 현장을 다니면서 몸에서 냄새가 며칠 동안 사라지지 않던 일, 높은 굴뚝 속을 올라가야 했던 날, 영하 30도의 울란바타르 겨울밤 현장, 한밤중의 선박 엔진에서의 작업, 바닷가 칼바람 불던 새벽 3시의 발전소, 반도체 공장의 바닥(under floor) 현장 등 모든 순간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박사가 말하는 현장은 환경이 가장 나쁜 곳이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란, 곧 그런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후배들에게는 긴 호흡을 당부했다. 그는 "연구를 한다는 것은 긴 경주를 하는 것과 같다. 유능한 연구원들이 젊은 시기에 본인의 독립적 연구를 고집하고 빨리 이름을 높이려다 성장할 기회를 놓치는 경우를 본다"고 말하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긴 호흡을 가지고 조직과 팀을 키우며 성장하고 한 걸음씩 나간다면, 분명히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구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연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냥 '과제 수행자'가 아니라 '연구자'로 정의하고, 과제와 무관하게 긴 호흡으로 지식과 기술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본인의 정체성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기술의 주기는 과제의 기간이 아니라 더 긴 호흡이 되어야 합니다."

길애경·김지영·홍재화 기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