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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인물] "지하철 안내방송부터 짱구엄마까지" 목소리로 남은 성우 강희선

“전동차가 들어올 예정이니 손님들께서는 한 걸음 안쪽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안내 방송 목소리의 주인공 성우 강희선 씨가 지난 4일 별세했다. 향년 66세.

[금주의인물] "지하철 안내방송부터 짱구엄마까지" 목소리로 남은 성우 강희선

26년간 ‘짱구는 못말려’ 봉미선 연기…47차례 항암 치료에도 병실서 녹음

[편집자주] <주간한국>은 창간 초기부터 ‘금주의 인물’란 기획을 통해 매주 시대의 얼굴을 기록했습니다. 정치, 문화, 예술, 사회 각계의 인물들이 한 주의 이슈와 함께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금주의 인물은 단순한 인물 소개를 넘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생생히 담아내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 주 소개할 인물은 만화영화 ‘짱구는 못말려’의 봉미선, 서울·부산 지하철 안내 방송으로 수많은 국민과 일상에 있던 성우 강희선입니다. 46년간 성우로 활동한 그는 대장암 투병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습니다. 얼굴보다 목소리로 더 오래 기억될 한 사람의 삶을 돌아봤습니다.

서울·부산 지하철 안내방송과 만화영화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엄마 목소리로 널리 알려진 성우 강희선씨가 지난 7월 4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0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강민혜 기자] “전동차가 들어올 예정이니 손님들께서는 한 걸음 안쪽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안내 방송 목소리의 주인공 성우 강희선 씨가 지난 4일 별세했다. 향년 66세. 한국성우협회에 따르면 지병으로 투병하던 고인은 이날 오전 2시 10분께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26년 동안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서 봉미선을 연기한 성우로도 유명하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경고,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배우를 꿈꾸다 지도 교수의 권유로 성우의 길을 택했다. 서울예술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79년 만 18세의 나이로 TBC 10기 공채 성우로 데뷔했고, 19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KBS 15기 성우로 활동했다. 한국성우협회 수석부이사장, KBS성우극회 극회장을 거쳤고 KBS 성우연기대상,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 ‘빨간머리 앤’부터 샤론 스톤까지

프리랜서가 된 후 첫 더빙 작품은 애니메이션 ‘빨간머리 앤’이었다. 1980~1990년대 외화 더빙 전성기에는 샤론 스톤, 줄리아 로버츠, 우마 서먼 등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의 목소리를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 ‘원초적 본능’의 캐서린 트라멜을 포함해 ‘블루워터의 비밀’ 나디아, ‘올림포스 가디언’ 헤라, ‘삼국지’ 초선, ‘성춘향뎐’ 성춘향 등 작품에서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를 통해  “내 목소리는 사연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젊은 세대에게는 ‘짱구 엄마’ 봉미선으로 더 친숙하다. 1999년부터 26년 동안 봉미선을 연기했고 맹구 역도 맡았다. 카랑카랑한 봉미선과 느릿한 맹구를 같은 성우가 연기했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봉미선 너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마”라며 “짱구가 안 일어나면 안 일어나는 대로 그냥 둬. 너무 힘들게 살지 마. 그냥 띄엄띄엄 살고 네 자신을 사랑해.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네 시간을 가져봐. 여행도 다니고”라고 당부해 시청자들을 울리기도 했다.

고인은 또 1996년부터 서울과 부산 지하철 안내 방송을 맡았다. 이후 약 30년 가까이 시민들의 출퇴근길을 지켰다. 2018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음성합성(TTS) 안내 방송을 도입하면서 고인의 목소리는 일부 노선에서만 들을 수 있게 됐다. 당시 그는 기계음에 대해 “사람의 정서가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 시한부 선고에도 마이크 놓지 않아

그는 2021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간으로 전이되면서 시한부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47차례 항암 치료를 받으며 성우 활동을 이어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에도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녹음을 이어갔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돼 결국 26년간 함께한 짱구는 못말려에서 지난해 8월 하차했다. 서울 지하철 안내 방송 역시 병실에서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가 이어지면서 안내 방송 목소리의 톤이 이전보다 낮아졌다는 점을 지하철 3호선 대곡역을 이용한 시민들이 알아챌 정도였다고 한다. 2024년에는 “연기를 생명처럼 생각한다”며 “다음 생에도 성우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하다 죽어도 좋다”고 답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까지 안내 방송 목소리로 서울 시민들의 발걸음에 동행했던 강희선 성우가 우리 곁을 떠났다”며 “투병하던 병실에서조차 지하철 안내 방송을 녹음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한동안 먹먹한 마음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오 시장은 이어 “매일 아침저녁 우리가 들었던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새 하루를 여는 활기찬 신호였고 누군가에게는 지친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며 “서울 시민을 향한 고인의 깊은 애정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따뜻한 짱구 엄마가 돼 우리 청년들과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셨던 분”이라며 “47번의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디며 마이크 앞을 지키셨던 고인의 숭고한 장인정신 앞에 고개숙여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 “서울 시민을 대표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성우협회 관계자는 본지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보내드렸다”며 “협회 이사장, 집행부 임원들이 조문하고 지난 6일 발인 미사까지 드렸다. 추가로 추모 행사를 기획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자녀 안은석·안지선 씨가 있다. 아들 안은석(독립영화 투자제작사 본필름 대표·민주평통 자문위원) 씨는 “항상 성우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사랑하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머니께서도 많이 좋아하셨을 것”이라며 “저의 어머니이자 짱구 엄마 봉미선이었던 강희선 님을 추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다”고 했다. 아울러 “어머니 발인을 마치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던 방에 1년 1개월 만에 모셔드렸다”며 “병원을 계속 입퇴원 반복하시다 병세가 악화돼 1년 1개월을 병실에서 보내시다 소천하신 어머니”라고 전했다.

강민혜 기자 mine@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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