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주간한국>은 창간 초기부터 ‘금주의 인물’이란 기획을 통해 매주 시대의 얼굴을 기록했습니다. 정치, 문화, 예술, 사회 각계의 인물들이 한 주의 이슈와 함께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금주의 인물은 단순한 인물 소개를 넘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생생히 담아내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 주 소개할 인물은 대가 없는 부성애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하고 세상을 떠난 ‘피터팬 아빠’ 전경철 작가입니다.
전경철 작가(오른쪽)와 아들 제원씨. 사진=작가 본인
[주간한국 박현영 기자] 중증 자폐가 있는 아들을 27년간 혼자 키우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전경철 작가가 향년 63세로 영면에 들었다. ‘피터팬 아빠’로 불렸던 전 작가는 자신만의 피터팬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전 작가의 피터팬은 27세이지만 정신 연령은 2살 정도에 머물러 있는 아들 제원 씨다. 중증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 제원 씨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네버랜드’ 속 피터팬의 모습과 닮았다며 전 작가가 부른 애칭이다.
전 작가는 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죽음 뒤 홀로 남게 될 아들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저는 죽어도 됩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살아야 합니다”라고 애원하며, 아들을 돌봐줄 기관을 찾아 전국 보호 시설 1000여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단 1곳의 시설도 아들 제원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말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자폐 성인 남성에, 타인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도전행동’까지 있는 제원 씨를 쉽사리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강했다. 포기하지 않고 시설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은 에세이 ‘안녕 피터팬’에 담아 출간했다. 그의 그치지 않는 부성애는 점차 알려지며, MBC ‘실화탐사대’,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의 출연으로 이어졌다. 특히 방송에서 전 작가가 아들을 향해 한 인터뷰는 대중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아빠라는 존재를 잊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완전히 잊히기는 원치 않는다”며 “나에 대해 ‘따뜻하게 아들을 바라봐 주던 늙은 남자가 있었다’ 정도의 희미한 그리움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아들에게 사랑을 전했다.
방송을 통해 전 작가의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의 후원과 응원이 쏟아졌다. 또 그의 노력이 보상이라도 받듯, 아들 제원 씨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도 찾게 됐다. 최중증 발달 장애인을 위한 공동체 마을에 입소하게 된 것이다. 전 작가는 아들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 하룻밤을 보내는 모습을 담은 방송에서 “‘여한이 없다’라는 말로도 사실은 모자라다. 만약에 제가 지금 말을 고른다면 ‘다 이루었다’”라며 “정말 이제는 한이 없다. 아들과 겪어볼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다 경험했다”고 말했다.
다만 전 작가는 아들이 머물 시설을 찾기까지의 고통을 다른 이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 시설 입소 후 그의 목표는 아들과 같은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 ‘네버랜드’를 만드는 것이 됐다. 그의 꿈을 실현해 줄 ‘피터팬 자폐인 복지재단’ 설립도 추진했다. 지난달 25일에는 재단 설립 추진위가 출범하며 목표에 가까워졌다. 전 작가가 고인이 된 이후에도 추진 위원들은 재단 설립 관련 논의를 계속 이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는 이 땅에, 피터팬이라는 이유로 세상 밖으로 내몰리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 더는 길이 보이지 않아, 자식과 자신을 포기하는 부모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 작가는 피터팬 재단을 준비하며 이같이 말했다. 피터팬 재단은 세상 모든 피터팬을 위한 네버랜드이며, 이곳은 부모가 떠난 뒤에도 장애인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딸, 아들의 마을이길 전 작가는 꿈꿨다.
전경철 작가 편지. 사진=카카오 브런치
전 작가의 마음은 정부에도 닿았다. 27년간 아빠가 짊어져야 했던 돌봄의 무게를 뒤늦게 알아차린 정부가 발달장애인 돌봄을 ‘국가책임제’로 추진해 지원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부모가 고령이 되거나 더 이상 돌보기 어려워져 (발달장애인) 자녀가 혼자 남겨진 삶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크다”며 “발달장애인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부모의 고령화도 계속되면서 이제는 국가와 지역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보다 두터운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에 맞춰 돌봄부터 자립까지 지원하는 3대 전략과 11대 추진 과제, 50개 세부 과제를 담았다. 특히 정부는 발달장애인의 돌봄 부담으로 보호자가 경제 활동을 포기하는 등 가족 전체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해 말 기준 발달장애인은 28만 8000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11.0%다. 이 가운데 성인은 20만명(69.5%)에 달한다. 그러나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은 26.4%에 그쳤다.
정부는 발달장애인이 생애주기별로 돌봄부터 자립까지 공적 지원을 한층 두텁게 보장받는 데 초점을 맞췄다. 먼저 야간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24시간 개별 1:1 지원 서비스를 확대하고, 평일에만 운영하던 서비스는 주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서비스 제공기관은 기존 34개소에서 내년에 40개소로 늘린다. 동시에 LH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한 주거 공간 추가 확보 등 주거 지원도 강화한다. 서비스 질 관리를 위한 관리·감독과 품질평가 체계 마련도 함께 추진한다.
이 밖에도 정부는 맞춤형 직무 개발과 공공 일자리 확대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취업 기회를 넓힐 계획이다. 또 공공후견인 제도와 재산 관리 지원 서비스를 강화해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한다. 사법 지원과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를 강화하고, 장애예술인 창작 지원과 장애인스포츠강좌이용권 등을 통해 문화·체육활동 참여도 지원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0일 전 작가의 사연을 언급하며 발달장애인이 부모의 돌봄 없이도 보통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아들의 앞날을 걱정했던 아버지의 눈물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며 “‘내가 떠난 뒤 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누가 아들의 곁을 지켜줄까’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의 내일을 걱정한 피터팬 아빠의 사연은 장애인 자녀를 둔 많은 부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부모가 곁에 없어도 자녀가 홀로 남겨지지 않고, 보통의 일상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한 걸음씩, 그러나 멈추지 않겠다. 피터팬 아빠 고 전경철 님이 마지막까지 걱정했던 아들의 내일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박현영 기자 hypar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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