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부자가 되는 공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상속과 부동산 중심의 전통적 경로가 아니라, 연 5억 8천만원 대 근로소득과 금융투자를 결합한 ‘직장인형 자산 축적 모델’이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기회의 확대인 동시에 고소득·고학력 중심의 진입장벽을 강화하는 구조적 재편이기도 하다.
하나금융연구소가 15일 발표한 ‘2026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 가운데 절반가량은 최근 10년 사이 자산을 축적한 ‘신흥 부자’로 나타났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이들 중 50대 이하를 ‘K-에밀리(Korea Everywhere Millionaires. 한국의 일상 속 백만장자)’로 정의하고 분석했다. ‘에밀리’라는 용어는 2019년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크리스 호건이 큰 부를 쌓은 평범한 사람들을 ‘에브리데이 밀리어네어’라고 지칭하고, 이들의 부 축적 비결을 분석하면서 정착됐다.
크리스 호건은 “주변의 많은 백만장자들은 막대한 소득, 엄청난 투자 지식, 큰 상속 재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타고난 부적 능력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나금융연구소도 이번 연구에서 기존 통념을 뒤집는 뚜렷한 패턴을 도출했다. 우선 설문에 참여한 부자의 49%는 10년 이전부터 부자였다. 이 그룹은 평균 62세이다. 50대 이하는 40%이다. 60대 이상이 60%이다. 40대 이하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설문에 참여한 부자의 51%는 10년 이내 부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최근 5년 내 부자 기준에 도달한 그룹은 50대 이하가 71%이고 40대 이하도 25%에 달했다. 5~10년 미만 부자 그룹은 50대 이하가 54%이다.
하나금융연구소는 부자도달 시점 10년을 기준으로 삼아 10년 내 부자가 된 그룹 중 과반을 차지하는 50대 이하를 ‘K-에밀리’로 규정했다.
‘K-에밀리’의 평균 가구소득은 5억8000만원, 총자산은 60억원대에 달한다. 종잣돈은 평균 8억5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직업군은 회사원·공무원이 3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전문직(23%), 자영업 및 기업 대표(24%)보다 많았다. 고학력 비중도 높아 응답자의 40%가 대학원 이상 학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주지 기준으로 보면 강남 3구 거주 비중은 55%였다. 하지만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 및 분당 등 수도권 거주 비중은 9%에 그쳤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수도권 거주 신흥부자는 강남에 집중돼 있다. 둘째, 비수도권 신흥부자도 36%에 달한다.
이같은 수치들은 단순히 ‘부자가 늘었다’는 수준을 넘어, ‘누가 어떻게 부자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을 제시한다.
이 보고서에서 드러난 ‘신흥 부자 공식’은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부자가 되기 위한 종잣돈 형성 방식이 ‘상속 중심’에서 ‘고소득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근로소득이 ‘소비 수단’에 그치지 않고 중요한 ‘투자 재원’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급여가 생활비를 충당하는 수단에 불과했다면, 신흥 부자에게 근로소득은 자산 증식의 출발점이다.
이들의 초기 자산은 평균 8억5000만원이다. 이 돈이 종잣돈이 됐다.
이 정도 규모의 종잣돈을 모은 방법에 대해서, ‘예적금 등에 꾸준히 저축하기’ 43%, 소득인상 19%, 상속 및 증여 자산 확보 19%, 부동산 매매수익 10%, 주식 등 투자수익 확보 8% 등으로 응답했다. 근로소득을 저축하는 방법이 종잣돈 모으는 방법의 절반에 육박하는 셈이다. 소득인상까지 합치면 종잣돈 모으기 방법의 62%가 근로소득과 직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상속 및 증여 자산은 19%에 그친다는 점은 신흥부자가 ‘유산 상속’이 아니라 ‘근로소득’을 원천으로 삼아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부자가 된 이유에 대해, 이들 중 절반은 상속 및 증여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72%는 “온전한 또는 상당 부분 내 노력으로 부를 일군 결과”라고 밝혔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사실은 자수성가형 부자의 길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소득의 48%를 저축과 투자에 투입하고 있으며, 소비 비중은 47%에 그친다. 근로소득이 자산 형성의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직장인은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기존 인식을 정면으로 뒤흔든다.
둘째, 직장인 내부에서 ‘초고소득 계층’이 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K-에밀리의 평균 가구소득 5억8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일반 직장인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이는 기업의 보상체계가 성과 중심으로 재편되고, 일부 산업 및 직무에서 급격한 소득 상승이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인공지능(AI)·IT 기반 산업 확장과 함께 고부가가치 직무에 소득이 집중되는 현상이 강화되면서, 직장인 내부에서도 ‘상위 1%형 근로자’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 격차가 곧 자산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흐름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글로벌 반도체기업 이외에도 천문학적인 연봉을 주는 기업과 산업군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K-에밀리는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보수에 필적하는 평균 가구소득을 바탕으로 예적금을 들어서 종잣돈 8억5000만원을 모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셋째, 다양한 소득원을 개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특징이다. 노동 자체가 ‘포트폴리오화’되고 있는 셈이다. 즉 단일 급여에 의존하지 않는다. K-에밀리 가구의 근로소득은 2억 4천만원이다. 70%는 3천만원 이상의 재산 소득을 확보했다. 40%는 사업소득까지 추가됐다.
종잣돈 모으기, 즉 초기자본 형성 단계에서는 저축을 중시했지만 이후 자산 확대과정에서는 투자를 우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한 저축’으로 자산을 불리는 비율은 줄고, 금은예술품 등 ‘현물 자산’과 개인투자조합 및 스타트업 벤처기업 투자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다중 수익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신흥 부자의 특징이다. 노동과 투자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소득 구조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가구 총 소득 5억8천만원은 전문직이나 CEO의 가구 총소득 7억~8억원대보다는 낮지만 일반 부자보다 월소득이 1.1배 높다는 게 연구소 측의 분석이다. 반면에 K-에밀리의 총 자산은 60억원대로 일반부자의 70억원대보다 낮다.
넷째, K-에밀리의 부 형성 기여 요인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소득인상(사업호황, 연봉 인상) 44%, 주식 등 투자 성공 및 수익확보 36%, 예적금 등 저축을 통한 꾸준한 수익확보 28% 등에 달한다. 높은 근로소득을 기반으로 삼아 주식투자나 저축을 한 게 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라는 이야기이다.
반면에 거주 주택 가격 상승 24%, 상속 증여 자산 확보 21%, 부동산 투자성공 11% 등에 그쳤다. 유산 상속이나 부동산 투기가 부의 확대 수단이라는 통념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하는 응답 결과이다.
8억 5천만원 규모의 종잣돈 만들기, 60억원에 달하는 부의 형성 기여 요인 등에서 고소득과 이를 기반으로 한 투자행위가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음이 확인된다.
이는 ‘부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기존 통념과는 다른 결과다. 다만 이는 전통적 의미의 ‘자수성가’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낮은 학력과 사회 초년병 시절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큰 성공을 이룬다는 의미의 ‘자수성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높은 초기 소득과 높은 저축률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구조이다. 즉, 진입장벽이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배타적 자수성가’에 가깝다.
다섯째, 고학력은 선택이 아니라 ‘부의 진입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40%가 대학원 이상 학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소득 직무 진입이 고학력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월성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고소득을 올리고, 고소득을 기반으로 저축 및 금융투자 등에 집중해 K-에밀리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K-에밀리’가 보여주는 신흥 부자의 공식은 기회의 확장과 장벽의 강화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근로소득과 금융투자를 결합하면 직장인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길이 열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이미 연 5억대 소득과 고학력, 그리고 높은 저축 여력을 전제로 한다. 상속 의존도는 낮아졌지만, 그 자리를 ‘고소득 진입장벽’이 대체한 셈이다. 부의 공식은 바뀌었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게임은 아니다.
양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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