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해럴드 매슬로는 1943년 ‘인간 동기의 이론’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인간의 욕구에는 생리욕구, 안전욕구, 애정욕구, 존경욕구, 자아실현욕구라는 단계별 위계가 있다는‘욕구 5단계설’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기본적이고 강렬한 하위 욕구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기본욕구인 의(衣)·식(食)·주(住)를 들 수 있고, 다음은 범죄·재난·사고·질병·폭력 등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려는 안전에 대한 욕구로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와 지방정부는 최소한의 의식주와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범죄로부터 안전’이라는 공공재를 전담하는 경찰 제도는 기존의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던 국가경찰 체제에서 지난 2021년 7월부터 전국적으로 자치경찰제가 시행됨에 따라, 이제는 지방정부가 국가와 함께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범죄예방·교통·사회적약자 보호와 관련된 자치경찰 분야의 정책 시행에 필요한 예산은 매년 광역자치단체가 시도경찰청의 예산요구를 반영하여 편성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 초기부터 국가경찰 신분의 경찰관이 자치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일원화된 기형적인 자치경찰제를 시행함에 따라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면서 새로운 정부는 인사권과 예산권을 자치단체장에게 부여하는‘이원화된 자치경찰제’의 전면 시행을 국정과제로 선정하여, 2026년까지 정책 모형을 확정하고 2027년 시범운영을 거쳐 2028년부터 전국적인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범죄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중대하고도 기본적인 예산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최근 대전경찰청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스토킹·교제폭력·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를 포함한 여성·청소년 분야와 교통안전, 범죄예방 등 자치경찰의 기본적인 정책 시행에 필요한 2027년도 예산을 대전시에 요구하였다.
그동안 대전시는 세수 부족 등 열악한 재정 여건 속에서도 범죄·재난 등 시민의 안전과 관련된 예산은 매년 조금씩 늘려왔으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2027년 자치경찰분야 본예산의 편성과 관련하여 대전자치경찰은 대전시청 예산실과의 실무자 간 접촉을 통하여 대전시의 열악한 재정여건을 감안하여, 전년도 대비 물가 상승분만을 반영한 최소한의 예산을 요구하면서 항목별 소요 예산에 대한 세부계획과 함께 그 필요성을 호소하였음에도 예산실은 대부분의 자치경찰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조정안을 보내왔다.
특히 가정폭력·성폭력·아동학대·스토킹·교제폭력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관련된 14개 세부 사업예산 요구항목 대부분을 삭감하여 오히려 전년 대비(–1.1%) 감축하겠다는 의견으로, 범죄에 대한 시대적 변화와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시민의 요구에 지방행정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민 안전’이라는 내년 농사의 결실을 기대하면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트랙터와 같은 신형 농기구 대신에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호미와 삽자루를 쥐여준다면 공직자의 노력과 열정만으로 어떻게 안전이라는 밭을 일구라는 것인가?
정부는 매년 교통사고·화재·범죄·생활안전·자살·감염병 등 5개 분야의 안전도를 평가하는 지역안전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대전시의 경우 다른 분야의 안전지수는 중·상위권을 오르내리고 있으나 범죄 분야만은 9년 연속 하위등급인 4등급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의(衣)·식(食)·주(住)가 인간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면 범죄 안전은 그 생존과 일상을 지키는 기본 조건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시민이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가? 즉 물리적 환경개선을 포함한 치안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안전한 치안환경은 위험요소 감소 및 체감안전도를 향상시켜 거주민의 정주 여건을 강화하고, 기업·인구·상권 활성화 및 부동산 가치상승·관광객 유치 등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원화된 완전한 자치경찰제 시행 이후에는 치안환경 분야에서도 자치단체별‘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현상이 가속될 것이며, 튼튼한 사회안전망 구축은‘시민의 행복과 살기 좋은 도시 평가’의 척도가 될 것이다.
‘더 안전한 대전, 더 행복한 시민’을 위한 치안 환경 구축 및 범죄피해자 보호에 대한 대전시의 적극적인 관심과 과감한 예산 투자를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