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연구용역·설문조사 진행하며 개별 대응 나서
“2030 직원들 퇴사 가능성 우려” “당국서 반응할 논리 찾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8월 18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에서 ‘정치 야합 분쇄, 정책금융 사수, 졸속적인 국책은행 지방이전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민혜 기자
[주간한국 강민혜 기자]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역 이전 대상 발표를 앞두고 금융권의 반발이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은)·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 등 국책은행은 물론 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서민금융진흥원(이하 서금원) 등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회사와 기업, 전문인력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감독·정책금융 기관을 지역으로 옮기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전문인력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전국에 지역 조직을 갖춘 기관에서는 본사를 옮겨 얻을 정책 효과가 무엇인지부터 따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오는 25일을 일단 첫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 등의 거취가 이날 먼저 공개되고 나머지 기관의 이전 계획은 이달 말 이후에 나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2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금융기관들은 정부가 구체적인 대상과 지역을 발표하기 전부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감원 노조와 예보 노조는 오는 24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 서금원 노조는 직원 설명회와 설문조사를 거쳐 반대 성명을 냈다. 오는 25일에는 사무금융노조 산하 기관들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무보에서도 노조를 중심으로 지역 이전에 대비한 대응에 들어갔다. 공개적인 움직임과 별개로 정부 측과의 물밑 대화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일부 기관의 노조와 관계자들은 정부 측에 기관의 업무 특성과 이전 시 발생할 문제를 설명하는 등 발표 전까지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대상 기관으로 확정된 뒤에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 금감원 “감독 대상은 수도권”…한은·금융위도 거취 촉각
금감원 노조는 금융감독의 ‘현장성’을 지역 이전 반대의 핵심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금감원 노조에 따르면 금융회사 본점의 91.6%, 현장검사 대상의 88.3%, 상장기업 본사의 72.7%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금융민원의 81.4%도 수도권에서 발생한다. 감독기관이 지역으로 내려가면 검사와 인허가·신고 업무를 위해 금감원 직원들이 다시 수도권으로 ‘역출장’을 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금감원 본원을 직접 찾는 외부인도 연간 7만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 해 평균 약 7만5000명이 금감원을 방문하며 이 중 약 9000명은 금융 민원·상담을 위한 민원인, 약 6만6000명은 회의와 업무협의 등을 위해 찾는 금융회사·기업 관계자 등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현재 수도권 시내출장으로 처리되는 검사·감독 업무가 시외출장으로 바뀔 경우 교통·숙박비 등으로 연간 30억~40억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온다.
전문인력 이탈도 걱정거리다. 금감원에는 회계사 500여명과 변호사 250여명 등 전문인력 7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역 이전이 현실화하면 금융회사나 로펌·회계법인 등 민간으로 옮기기 상대적으로 쉬운 전문직부터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찬진 금감원장도 금융감독 업무의 현장성을 들어 지역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이 원장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이 원장은 금감원 이전 문제를 공사 현장 감독에 빗대 “공사판의 현장감독이 어디를 가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본지에 “대민 업무가 많고 금융회사들을 불시 단속해야 하는 입장에서 세종으로 간다면 오가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국에서도 아직 최종 결정은 내리지 못한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을 수렴해 정책을 바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며 “이 같은 금융권 움직임이 당국 귀에 들어가 합리적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국 입장에선 직원 이탈이 큰일이 아닐 수 있다”며 “그렇기에 현실적인 업무상 어려움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한은 내부도 뒤숭숭하다. 공식적으로 이전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부 식사 자리 등에서는 지역 이전 가능성이 심심찮게 대화에 오르는 분위기다.
한은은 다른 금융공공기관과 달리 법률 문제도 있다. 현행 한은법은 한은의 주된 사무소를 서울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어 본점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서울 중구 본부에는 2023년 통합별관까지 준공해 입주한 상태다. 중앙은행이 정부와 금융시장, 금융회사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업무 특성도 내부에서 거론되는 서울 잔류 논리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본지에 “각 기관마다 지역으로 가지 않아야 할 이유는 모두 갖고 있다”며 “한은이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를 개최하는 것만 놓고 보면 반드시 서울이어야 하느냐, 제주에 있어도 불가능할 것은 없다는 식의 반론이 가능하다. 물론 준공한지 얼마 안 된 건물이 이유는 될 수 있겠지만 그건 모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세종 이전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돼 온 데다 정부 부처인 만큼 이전이 결정되면 인사명령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이다.
◇ 예보·무보·서금원도 ‘서울 잔류’ 주장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1층 민원실에서 한 노인이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강민혜 기자
예보 노조는 지난 4월 말부터 예보 지역 이전이 금융안정 기능과 조직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별도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법무법인 린 금융법제연구센터가 수행한 이 연구는 금융위기 대응 능력과 금융정보 접근성, 조직 안정성 등을 기준으로 예보의 입지를 따졌다. 노조는 지난 11일 정책토론회에서 이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용역에 포함된 직원 설문은 지난 6월 1일부터 12일까지 예보 재직자 74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진행됐다. 응답자의 51.8%가 근속 10년 미만이었고 거주지는 서울 82.8%, 경기·인천 16.4% 등 수도권이 99.2%를 차지했다.
저연차 직원의 이탈 가능성도 두드러졌다. 근속 5년 미만 직원 가운데 지역 이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12%에 그쳤다. 노조는 전문인력 이탈이 현실화하면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금융회사 부실 정리와 예금자 보호 등 예보의 핵심 업무 수행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보 노조와 금감원 노조는 오는 24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감독과 금융안정 기능을 지역으로 옮길 때 발생할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이후 공동 집회 등으로 대응을 확대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무보에서도 노조를 중심으로 선제 대응에 들어갔다. 수출기업과 금융회사 등 업무 상대방과의 연계가 중요한 기관을 지역으로 옮겼을 때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서금원에서도 지역 이전에 대한 직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서금원 노조는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역 이전 설명회와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사무금융노조는 20일 지역 이전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설문 결과 직원들의 우려는 가족과 주거 문제부터 업무 여건까지 구체적이었다. 가족의 직장과 주거 문제를 가장 큰 우려로 지목한 응답이 각각 53.9%였다. 지역 이전이 업무 집중성과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77.3%, 전반적인 삶의 질이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79.1%에 달했다.
본사를 옮겨 얻을 정책 효과가 얼마나 되느냐는 문제도 제기했다. 서금원은 이미 전국 52개 센터를 통해 지역에서 서민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본사를 옮기지 않더라도 전국 단위의 서민금융 공급망이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서민금융은 어쨌든 전국 단위로 공급되는 것”이라며 “본사 이전이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지 물음표”라고 했다. 서금원 노조는 다른 금융기관 노조와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구체 일정은 아직이다.
◇ 국책은행은 총파업 예고…“금융기관 이전 효과부터 검증해야”
국책은행에서는 이미 집단행동이 시작됐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 산은·기업은행·수은 지부는 지난 11일 처음 공동 대규모 집회를 연 데 이어 18일에는 금융노조 차원에서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융노조는 이어 오는 27일에도 중구 노조 투쟁상황실에서 다음달 4일 예정한 총파업 관련 기자회견을 연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과거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에도 국책은행이 제외됐다는 점을 들어 정책금융기관을 일반 공공기관과 같은 기준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현준 산은지부 위원장은 정부가 여의도를 글로벌 금융허브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놓는 한편 산은에는 10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와 첨단전략산업 지원 역할을 맡기면서 동시에 본점 지역 이전을 검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안에서는 여의도를 글로벌 금융허브로 키우고 산은에 명운을 건 정책금융 역할을 맡기겠다면서 다른 한쪽에선 본점을 지방으로 옮겨 인력을 공중분해시키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류장희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대선 당시 금융노조와 맺은 정책협약을 거론하며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에 충분한 설명조차 없이 이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명호 수은지부 위원장은 정부가 겉으로는 확정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서울 잔류 제로(0)’ 방침을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밀실에 숨어서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공공기관 서울 잔류 목표가 0이라고 한다”며 “잘하고 있는 국책은행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위해 더 잘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차 공공기관 이전 때 혁신도시로 가본 입장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지역 이전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본다”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있다고 해도 금융기관을 옮겨 실제 어떤 효과가 생기는지를 먼저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팀장급 이상의 직원들이야 이제 정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아 주말 부부를 해도 별 걱정이 없겠지만 이제 막 입사한 2030 직원들이 걱정”이라며 “그들에게 남은 20~30년을 지역에서 근무하라니 퇴사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민혜 기자 mine@hankooki.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