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이자 국가나 기업을 ‘글로벌 리더’라고 부른다. 역사 속 그리고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삶의 기록과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지난 5월 6일(현지시간), 세계 최초의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 CNN을 설립하며 미디어 산업의 판도를 바꾼 테드 터너가 플로리다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그는 2018년 루이체 치매 진단을 받은 후 투병 생활을 이어왔으며,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단순히 사업가를 넘어 모험가이자 자선가로 살았던 그의 불꽃 같은 삶을 조명한다.
테드 터너[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비극을 딛고 일어선 ‘대담한 선장’
1938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테드 터너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브라운 대학교 재학 시절 기숙사 방에 여학생을 들였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그는, 24세가 되던 1963년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맞이했다. 당시 아버지가 남긴 옥외광고 회사 ‘터너 아웃도어 애드버타이징’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매각을 권유했지만, 그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사업 수완을 발휘해 회사를 재건한 터너는 1970년 애틀랜타의 작은 TV 방송국인 채널 17을 인수하며 방송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하위권에 머물던 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인수해 모든 경기를 중계하는 파격적인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1976년에는 지역 방송을 위성으로 송출하는 ‘슈퍼스테이션(WTBS)’ 개념을 최초로 개척하며 미디어계에서 기반을 닦았다.
테드 터너[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CNN의 탄생...‘전설’이 되기까지
터너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980년 6월 1일 출범한 CNN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24시간 뉴스 채널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었고, 초기 CNN은 낮은 임금과 아마추어 같은 연출 탓에 ‘치킨 누들 네트워크’라고 조롱받기도 했다. 하지만 터너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방송을 종료하지 않을 것이며, 종말의 순간까지 생중계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밀어붙였다.
CNN이 세계적인 위상을 굳힌 결정적 계기는 1991년 걸프 전쟁이었다. 다른 매체들이 바그다드를 떠날 때 CNN은 남아서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CIA보다 CNN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할 정도로 CNN은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는 독보적인 매체가 되었다. 이후 그는 카툰 네트워크, TNT, TCM 등을 잇달아 설립하며 거대한 미디어 제국 TBS를 완성했다.
이후 터너는 1996년 TBS를 타임 워너에 매각하며 75억 달러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지만, 이후 경영권에서 밀려난 것을 인생 최대의 실수로 꼽으며 후회하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남부의 입’
거침없는 언변 덕분에 ‘남부의 입’ 또는 ‘캡틴 아웃레이저스’라는 별명을 얻었던 터너는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스스로를 극우 공화당원으로 칭하면서도 쿠바의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와 우정을 나누거나 권위주의 정권을 옹호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고, 기독교인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테드 터너[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지구를 사랑한 자선가
말년의 테드 터너는 자선과 환경 보호에 헌신했다. 그는 1997년 UN에 1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2001년 IT 버블 붕괴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었음에도 끝까지 이 약속을 지켜 자선 사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핵위협방지구상(NTI)을 공동 설립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도 힘썼다.
그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거대 토지 소유주로서 200만 에이커가 넘는 땅을 구매해 자연 보호구역으로 활용했다. 특히 멸종 위기에 처했던 들소 떼를 복원하는 데 열정을 쏟았으며, 이를 위해 ‘테드 몬태나 그릴’이라는 친환경 레스토랑 체인을 운영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모험가로 정의했던 테드 터너.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구축한 24시간 뉴스의 패러다임과 지구를 향한 헌신적인 자선의 정신은 미디어 산업과 인류 사회에 오래도록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시선뉴스=양원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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