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사성어에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 말이 있다. 한자로는 깨뜨릴 파(破), 사악할 사(邪), 드러낼 현(顯), 바를 정(正)자를 쓴다. 한마디로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르게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르라는 충언이다.
그래서 이글의 뜻은 사적 연고나 정치적 고려, 왜곡된 여론에 영합하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 파사현정의 정신으로 모든 압력과 유혹을 물리치고 때로는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유사어로 파현(破顯), 파신(破申)도 있다. 불교의 모든 종파는 파사현정으로 종취를 삼았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단호하고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 순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은 결국 사회성을 망가뜨리는 결과로 간다는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에 관해서 마냥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시켜 주어야만 비로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불교에서의 자비는 왜 조건 없는 베풂으로 인지하는 것일까? 부처님 역시 자비를 말씀하시기 이전에 ‘무지를 경계하라’ 당부하셨다. 개개인이 착한 성품을 가진 것과 무지는 별개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지해서 발생시키는 일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히려 무지함은 아무리 착한 성품을 갖고 태어났어도 점점 악한 인간으로 만들어간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지가 가장 무서운 것임과 동시에 삿된 것이니 바르게 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파사현정이다. 삿된 것은 깨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이 파사현정은 상당히 과격한 말로 들릴 수 있다.
특히 ‘파사’라는 부분이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삿된 것이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무지와 그 결과를 떠올려보면 대단히 큰 잘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지위든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옳다고 믿고 주변의 충고를 뭘 몰라서 하는 소리라 말하는 사람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로 인해 타인을 괴롭게 했다면 사과할 줄 아는 것.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충분히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파사현정의 과정부터가 이미 자비이다. 파사현정이 곧 자비임을 일상생활에서 생활화해야 한다.
최근 국정 과정에 그릇된 일이 터져 혼란스럽다.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재임기간 스웨덴과 덴마크, 독일 등 해외 출장마다 부부동반으로 출장을 간 사실이 확인돼 시끄럽다. 심지어 배우자의 항공권과 체류비 등 엄청난 비용을 나랏돈으로 쓰인 것이 문제가 됐다.
출장 목적은 '외국 지방선거 참관을 통한 선거제도 발전 방향 모색과 외국 선거 관계기관과의 교류·협력 강화' 등 이었다. 그런데 국외출장 계획서에는 노 전 위원장 이름 옆 '비고'란에 ‘부부동반’이라고 명시돼있다는 것이다. 부부동반 출장을 챙긴 것은 명백한 외유성 특혜이며 국민 혈세 낭비여 그릇된 일이다.
노 위원장은 배우자 동행 비용으로 쓴 혈세 약 5천여만원이 문제가 되자 모두 반납했다. 노 전 위원장은 선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가 최근에 사퇴했다. 이어 우원식 전 국회의장도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나랏돈을 쓴 것은 마찬가지였다. 재임기간 모두 14차례 해외 출장에 83억여원을 썼다는 것이다.
우 전 의장 역시 14번 모두 우 전 의장 배우자가 동행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국회의장의 해외 순방에는 수행 의원단, 국회사무처 직원, 경호 인력, 통역과 의전 담당까지 수십 명 규모의 대표단이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대표단의 규모와 무관하게 배우자 몫의 온갖 비용은 배우자가 동행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지출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위공직자가 외교 무대에서 배우자 동반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정상급 외교에서는 배우자 프로그램이 별도로 운영되기도 하고, 상대국에서 부부 동반을 전제로 만찬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선별'이 있었느냐다. 어떤 해외 출장은 정상급 의전이 필요한 공식방문이고, 어떤 출장은 국회의장회의 같은 다자회의 참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고위직 부부동반 해외순방은 혈세 낭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기에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르게 바로잡는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처럼 잘못된 관행을 차제에 바로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스스로도 나의 잘못에 대해 너무 관대하게 판단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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