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01번째 레터
는 지난 15일 개봉한
VR 영화 ‘르세라핌 브이알 콘서트: 인비테이션’
입니다. 지난번 200번째 레터에서 야구 모르면서 본 야구 영화 얘길 해드렸는데, 이번엔 르세라핌 모르면서 본 르세라핌 VR 영화 얘기입니다. 저희 신문 오늘 아침자(24일 수요일)에 관련 기사를 썼는데, 레터에서는 VR 기기로 보니 어땠는지 실제 체험 위주로 보내드려요. 일반 영화와는 감각적인 차원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르세라핌 멤버들이 볼을 마주댈 듯 가까이 다가와 찡긋찡긋 나긋나긋 방긋방긋 웃는 가상의 공간, 그 안에서 저는 넷플릭스 ‘블랙 미러’가 떠올랐습니다. 더디지만 언젠가 열리긴 열릴 영상의 미래, 지금은 어디까지 와있는지 말씀드려볼게요.
VR 영화 '르세라핌 브이알 콘서트: 인비테이션'에서 부엌을 배경으로 김채원이 인사하고 있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들어간 가상 세계는 12K 초고화질로 구현돼 있어서 생생함 그 이상입니다. 어지럽지만 않았으면 그 안에 더 싶었을텐데./롯데시네마·어메이즈
이번 레터 제목에서 르세라핌을 1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는데, 뉴스에서 접한 적이 있긴 합니다. 르세라핌이 2024년 코첼라 무대에 섰다가 가창력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지요. 하도 시끄럽길래 영상을 찾아 봤었는데 좀 놀랐습니다. 와, 이렇게 노래 못 해도 가수하는구나. 가수랑 아이돌은 역시 다른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컨디션 난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음정을 못 맞추는데 어찌 코첼라까지. 대략 이런 생각이 르세라핌에 대한 제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르세라핌이 제 담당인 영화로 진출했습니다.
지난 15일에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 르세라핌 VR 전용관이 오픈
했거든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 상영관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전용관을, 그것도 VR 영화용으로 열었으니 가보지 않을 수 없죠.
저는 17일에 갔는데 평일인 금요일 오후인데도 자리가 꽤 찼습니다. 여자 아이돌이라 그런지 남성 관객이 눈대중으로 절반쯤은 돼보였습니다.
관람료는 3만3000원.
일반 영화 2배가 넘네요. 그렇다보니 적극적인 소비층, 아이돌 팬들이 많이 봅니다. VR 영화가 콘서트 영화 위주로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VR 영화는 관람법부터 일반 영화와 다릅니다. 처음 가면 헤드셋 착용부터 낯설어요. 상영관에 들어설 때 먼저 받는 것이 일회용 위생 안대입니다. 이걸 눈가에 대고 헤드셋을 차야하는데 첨이라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상주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좌석과 연결하고 눈동자 초점 맞추면 관람 준비 끝. 관람자의 양손 움직임도 잡아주는데 한쪽 손에 응원봉을 쥔 것처럼 연출도 해줍니다. 정말 콘서트 보는 것처럼요. 그럴싸하죠.
VR 영화 '르세라핌 브이알 콘서트: 인비테이션' 촬영 장면. 저렇게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실제로 눈맞추듯 느낄 수 있는게 VR의 매력입니다. 정말로 저를 쳐다보는것 같거든요. 실제로 보시면 예상보다 훨씬 진짜 같아요./롯데시네마·어메이즈
제가 처음 본 VR 영화는
작년 6월에 개봉한 ‘차은우 브이알 콘서트: 메모리즈’
였습니다. 그때는 인터렉티브하다는 점이 홍보 포인트였는데, 관객에게 다음 전개될 내용을 선택할 기회를 줬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에, 받고 싶은 선물 고르는 옵션이 있었고, 곰인형할래, 꽃다발할래 물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어느 항목을 선택하든 차은우 얼굴을 최대한 크게, 최대한 가까이 보여주는 게 목표라서요. 그렇다보니
콘서트라기보다는 차은우 3차원 영상 화보
라는 게 맞아보였습니다. 그때도 관람료가 3만3000원이었는데, 이 값을 내고 1시간 동안 3차원 차은우를 보고 싶은 관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가 관건이었죠. 결과는? 누적 관객 3004명이었습니다.
저 빼면 3003명
이군요. 현재 시장 구조에서 VR 영화가 흥행하려면 유명한 걸로는 부족하고 열성 팬덤의 강력한 지지가 필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르세라핌은 차은우와는 확실히 달랐어요. 무대와 춤을 강하게 쓰니까요. 이번에 기사 쓰면서 소속사 쏘스뮤직에 VR 영화에 진출하게 된 계기 내지는 동기 내지는 의도 내지는 포부 내지는 목표를 물어봤는데
“퍼포먼스가 강하다는 장점”
을 강조하더군요. 노련한 답변, 좋았습니다.
카메라를 보면서 이렇게 웃으니 관객이 VR 기기로 보면 '나를 보고 웃네'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영화 '르세라핌 브이알 콘서트: 인비테이션' 촬영 장면입니다./롯데시네마·어메이즈
가상 세계에서 만나는 르세라핌은 장점인 퍼포먼스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VR은 정말 신세계거든요. 한 번도 보신 적이 없다면 경험을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아이돌이 정말로 손이라도 잡아줄 것처럼 다가오는데, 현실이 아니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느낌이 진짜로 정말 같거든요.
르세라핌 VR은 퍼포먼스를 위한 무대와 배경도 잘 살렸어요. 곡명이 ‘스파게티’이다보니 부엌도 나오고, 대도시 배경이나 우주 공간 같은 무대가 펼쳐지는데 김채원이나 홍은채가(이번에 VR 보고 나서 멤버 이름 다 외웠습니다) 그 공간을 누비며, 제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서 오라고 손내밀며, 공연 괜찮냐고 물어보면 저절로 답하고 싶어집니다. “그럼요, 아무렴요, 네, 네!” 사실은 제가 아니라 카메라를 보면서 촬영한 영상이라는 걸 알면서도요. 실제로 제가 관람하던 날, 객석 어디선가에서 남성으로 추정되는 관객 여러 명의 탄성이 수시로 들렸습니다. 감탄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심정, 십분 이해합니다.
VR 영화 '르세라핌 브이알 콘서트: 인비테이션'의 배경 중 하나인 부엌. 저 안으로 훅 들어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관람하실만해요./롯데시네마·어메이즈
그런데 이 꿈같은 체험에는 한계가 있으니, VR 기기의 문제입니다. 일단 무겁고 불편합니다. 저의 튼실한 목도 상영 1시간이 되니 뻐근해지더군요. 게다가 어지러워요. 몸은 안 움직이면서 눈동자만 움직여서 생기는 원천적인 문제라는데, 영화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르세라핌이 계속 윙크를 날려주는데도 반갑기보다 어서 끝났으면 싶어졌습니다. 저는 1시간은 버텼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10분만 지나도 멀미가 나기도 한다니 개인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예매를 하신다면, VR 영화는 스크린이 아니라 기기로 보는 거라서 객석 어느 자리에 앉아도 동일한 경험을 준다는 점, 참고하세요. 자리 고른다고 시간 들일 필요없습니다. 즉, 기술이 발전하면 꼭 극장이 아니어도 되는 거죠. 어디서든 장비만 갖춰지면요.
제가 앞부분에
넷플릭스 ‘블랙 미러’
말씀드렸죠. ‘블랙 미러’에는 가상 현실을 다룬 에피소드가 몇 편 나오는데, 예를 들어
시즌 3의 ‘샌 주니페로’
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곳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제 눈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르세라핌을 보면서, 어쩌면 정말로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헤드셋 말고, ‘블랙 미러’처럼 아주 쉽고 간단하게, 단추 같은 기기를 귓가에 붙이면 바로 가상 공간으로 들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이승에 없는 사람이거나 저 멀리 떨어진 사람인 세상도 언젠가는 열릴지 모르겠네요.
물론 아직은 그런 세상까지는 한참 멀었습니다. VR 영화가 좀 더 대중화 보편화돼야 투자도 더 되고 기기도 발전할텐데, 그러려면 다음엔 방탄소년단이 나서야 하는 걸까요. 방탄 VR이면 지금보다 티켓 몇 배로 비싸도 반복 관람하겠다는 팬들이 많지 않을지. 저 포함해서요. (뜬금없이) 하이브에게 열일을 촉구하며,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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