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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당신은 대답만 해요

연극 ‘입국심사’(하수민 작·연출, 7월18~26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는 출입국 도중에 겪을 수 있는 인권 침해와 박탈의 극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입국과 체류 기간을 사전에 허가하는 비자가 본격화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알려져 있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당신은 대답만 해요

인권 침해 다룬 연극 ‘입국심사’

권력의 공간… 관객 금세 눈치채

공항난민들의 현실과 풍경 유사

벽보다 강력한 문 ‘사회 민낯 마주’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입국심사’(하수민 작·연출, 7월18~26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는 출입국 도중에 겪을 수 있는 인권 침해와 박탈의 극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입국과 체류 기간을 사전에 허가하는 비자가 본격화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알려져 있다. 국경을 넘는 이동과 여행에 합법과 불법의 구분이 현재처럼 엄격하게 작동한 역사는 일백여 년 정도인 셈이다. 국적이 없거나 국적을 상실해 성원권을 갖지 못한 상태로는 국외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제 여권이 자국민의 출국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비자가 외국인의 입국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무대 공간은 주로 입국심사실이다. 그곳에 입국심사 경찰관과 여행자 재상이 있다. 둘 뿐이다. 한 명이 묻고 다른 한 명은 답한다. 아, 통역사가 있기는 하다. 다만 전화기에 연결되어 있다. 입국심사실 현장에는 없다. 그러니까 경찰이 심문하면 통역사가 다시 묻고, 그 질문에 재상이 대답하면 통역사가 다시 전한다. 연극이 진행하는 동안 세 명이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질문은 경찰만 합니다.” 입국심사실이 위계와 권력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눈치채는 데는 단 몇 차례의 질문과 답변으로 충분하다. 굳이 밀실이 아니어도 좋다. 물리적 폭력을 직접 행사하지 않아도 된다. 심문이 그 자체로 위계와 권력의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심문은 대화가 아니다. 묻고 답하는 대화의 형식을 갖췄다고 해서 심문이 대화가 되지는 않는다. 심문은 오직 선별을 목표로 작동한다. 포함해도 좋은 존재와 배제해야 하는 대상을 나누기 위해서만 작동하는 폭력의 장치일 뿐이다. “당신은 대답만 해요.”

공항난민 인권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보고서(사단법인 두루, 2021)의 조사관 태도 항목 일부이다. “질문 자체가 압박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사관은 ‘이 신청서는 사실이 아니다. 너 거짓말하는 거지?’라고 제게 말하였습니다.” “‘예, 아니요’로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예, 아니요’로 대답할 수 없고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답변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고 해도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제가 할 말이 있어서 말하려고 했을 때에는, 조사관이 ‘물어보면 대답하세요’라고 하여 말하지 못했습니다.”

연극 속 인물 재상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입국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간절함에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다. 답변을 거부할 수도 없다. 질문이 쌓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모멸감을 느낀다. 사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연극은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간다. 답변을 거부하고 추방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답변을 하고 입국 허가를 받을 것인가의 양자택일의 순간이다. “당신의 성적 지향은 무엇입니까?”

실태조사보고서의 환승구역 풍경 일부이다. “아이들이 너무 추워하니 따뜻한 우유와 빵이라도 사서 해결했는데, 이것만 해도 보통 4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매일 햄버거라도 먹기는 어렵고 하루에 한 번만 먹거나 아이들만 먹이고 저희는 굶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잠자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잘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학교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공항에 와서 저희를 동물원 동물처럼 구경하고 사진 찍고 이런 것들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엄마로서는 빨래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빨래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화장실에서 했는데, 말리는 것은 더 힘들었습니다. 공항 청소부 아주머니 중 한 분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밖에서 빨래를 해서 가져다준 적도 있습니다. 이분이 저희를 돕다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어요.”

공항은 국경의 문이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에서 거절당해 국경의 문 앞에서 멈춰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화 터미널의 서사가 얼마나 낭만적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모든 문은 인공물이다. 벽에 문을 내는 까닭은 지나다니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떤 문은 벽보다 더 강력한 벽이 되기도 한다. 문이 통로나 연결이 되지 못한 채 벽으로만 작동할 때 우리는 문을 만든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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