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육사회학 교수를 지낸 제이슨 알데이가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23년 대학의 최연소 흑인 정교수로 임용돼 주목받았다. 그의 임용은 소수자에게 문턱이 높았던 영국 학계에서 변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올해 여름, 그의 박사학위 논문과 다른 연구에 대한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회고록에 담긴 개인사와 성과를 의심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알데이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결국 교수직을 사임했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논란이 확산된 배경에는 대학의 다양성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영국 대학들은 소수자가 겪는 장벽을 낮추고 학계 진입 기회를 넓히려 노력해왔다. 알데이에게 표절 의혹을 제기한 학자 네이선 코프너스도 다양성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는 알데이의 연구를 문제 삼으며 그를 채용한 대학의 다양성 정책까지 공격했다. 논쟁은 이처럼 개인의 연구를 검증하는 문제에서 소수자 채용의 정당성을 따지는 문제로 번졌다.
이 두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표절 의혹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연구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다른 흑인 학자나 소수자 연구자까지 실력 없이 채용됐다고 볼 수는 없다. 의혹을 제기한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 의혹의 진위를 결정하지 않듯, 조사 대상자의 인종도 그 집단 전체의 능력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연구윤리를 지키려면 증거를 살피고 책임의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학이 소수자 교수를 소개하는 방식도 돌아봐야 한다. 대학은 ‘최초의 흑인 교수’나 ‘최연소 교수’의 임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로 인해 자신의 능력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능력까지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대학이 다양성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얻는 동안, 개인은 집단을 대표해야 한다는 무게를 짊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란이 생겼을 때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 대학은 연구를 엄정하게 조사하면서도 당사자에게 충분한 설명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 구성원에게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고, 인종적 모욕이나 위협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은 의혹에 대한 판단과 무관하게 제공해야 한다.
이 질문은 한국 대학에도 필요하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여성, 외국인, 장애인 교원의 채용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채용만으로 이들이 대학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우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업무의 관행을 알려줄 동료가 있는지, 어려움을 말해도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공정한 대우를 받는지를 살펴야 한다. 대학은 이들에 대한 멘토링과 상담에 시간과 예산을 배정하고,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겪은 구성원이 도움을 요청할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알데이의 죽음은 대학 혹은 조직이 말하는 다양성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에게 문을 여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터는 이들이 존중받으며 일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공정한 절차 아래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한다. 다양성의 성과는 채용한 사람의 숫자뿐 아니라 그들이 일터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로도 평가해야 한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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