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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740개가 무더기로 정기 주총을 열어 이른바 ‘슈퍼 주총 데이’라 불리는 26일,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 개정 상법 시행에 발맞춰 일반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현미경’ 안건 심의와 의결권 행사를 예고하면서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가 슈퍼 주총 데이의 주주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시한 93개사를 25일 한겨레가 전수 조사해보니, 국민연금이 이날 주총에 상정되는 모든 안건(의결권 미행사 제외)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한 기업은 31개사에 불과했다. 에스케이(SK)㈜·㈜엘지(LG)·금호석유화학·메리츠금융지주·현대백화점 등 전체 주총 개최 기업의 3분의 1만 주주 보호 관점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주총 개최일 전 의결권 행사 내역을 사전 공시하는 대상을 지분율 5% 이상인 기업으로 확대했다. 지난해까진 이 기준이 지분율 10% 이상이었다. 사전 공개 대상을 대폭 넓히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선 셈이다.
이날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할 예정인 주요 안건은 이사 및 감사의 정원·임기 관련 20개사,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 관련 19개사 등이다. 상법 개정으로 일반 주주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커진 데 맞서, 기업들이 이사 숫자의 상한을 축소하거나 이사들의 임기 만료 시기를 분산시키는 ‘시차 임기제’ 도입 등에 나서자 반대 입장을 정한 것이다. 이마트·빙그레·카카오·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진칼 등이 이런 사례다.
현대차·㈜한화·씨제이(CJ)·케이씨씨(KCC) 등은 자사주 관련 안건에 국민연금의 퇴짜를 맞는다. 과거 ‘주주가치 제고’나 ‘주가 안정’ 등을 이유로 들며 자사주를 사놓고, 이제 와서 임직원 보상 등에 자사주를 사용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씨제이의 경우 지분율이 높은 최대주주가 주총에서 자사주 처리 방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민연금은 안건 반대에 나섰다.
엔에이치(HN)투자증권은 26일 주총에서 ‘경영상 목적’을 위해 제3자에게 발행하는 신주 물량을 기존 전체 주식의 30%에서 50%로 대폭 확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올리겠다고 앞서 밝혔지만,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예고한 상태다. 코스닥 상장사인 에스티팜의 ‘퇴직 위로금’ 신설을 위한 규정 변경안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최대주주인 에이치디씨(HDC)의 모든 이사를 남성으로 채우려는 안건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할 예정이다.
다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예컨대 경제개혁연대 등은 ㈜한화가 이번 주총에서 이사의 임기를 기존 ‘2년 내’에서 ‘3년’으로 바꾸려는 것을 두고 “매년 선임하는 이사 수를 줄여 일반 주주 지지 후보의 이사회 진입을 막으려는 조처”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임기 연장의 순기능이 있고, 과거에도 이 같은 안건에 찬성해왔다”며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를 두고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임기는 평균 8년이지만, 매년 주총에서 능력을 검증받아 재선출되는 구조”라며 “개정 상법을 무력화하는 시차 임기제 도입에 사실상 찬성하겠다는 국민연금의 오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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