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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민논단] 대학등록금 논란, 액수 아닌 값어치가 본질

전공별 기대 수익, 직접 교육비 투입 비중, AI 및 디지털 역량 향상도 등 수요자 중심 지표가 핵심 지표로 담겨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의 가치를 데이터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상아탑의 위기는 단순한 재정난을 넘어...

남수경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대학졸업장이 실력 보증하던학력 보증수표 기능은 무력화일본 미국 영국은 등록금의상세한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공급자 중심 회계에서 벗어나성과 중심 체계로 개편할 때대학은 존재 이유를 숫자로증명하는 시험대 위에 섰다교육 현장에서 ‘돈’을 논하는 것은 여전히 성역이자 금기시되는 불편한 영역이다. 교육의 가치를 금전적 잣대로 환산하는 시도는, 본질 훼손을 우려하는 교육적 신념과 비용 효율을 따지는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그 접점을 찾아야 하는 고난도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형의 교육 서비스에 ‘경제적 효용’이라는 가시적 지표를 대입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설득법이다.이 논쟁의 최전선에 대학교육과 등록금 문제가 있다. 과연 오늘날 대학은 투입된 비용만큼의 가치를 돌려주고 있는가. 2023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시카고대학교 여론연구센터(NORC)의 조사 결과, “4년제 대학 교육이 비용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미국 국민의 긍정 응답은 4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충격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다. 2024년 7월 추가 조사에서 이 비율은 34%로 저점을 경신한 데 이어 2025년 말 NBC뉴스 조사에서도 33%에 그치며 대학교육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성인 3명 중 2명은 이제 대학을 ‘실무 기술은 외면한 채 천문학적인 부채만 안기는 곳’으로 보고 있다.흥미로운 점은 대학교육의 ‘비용’에는 비판적이지만, ‘필요성’ 자체는 여전히 인정한다는 데 있다. 2025년 미국 루미나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학위가 없는 성인의 70%가 학사 학위의 가치를 인정했다. 대부분 미국인은 학사 학위를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따야 하는 최소한의 입장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대학 학위는 ‘성공을 위한 필수재’인 동시에 비용 대비 효용은 현저히 낮은 ‘저효율 투자처’라는 모순적 지위에 놓이게 되었다.결국 문제의 핵심은 대학 등록금의 절대적 액수 자체가 아니라 그 비용이 얼마나 가치 있게 운용되고 있느냐에 있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소모적 인상 논쟁에서 대학이 과연 그만큼의 값어치(Value for Money)를 하고 있는가로 옮겨가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정보공시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대학 알리미’는 재무·회계 수치와 산정 근거 등 공급자 중심 정보를 나열하는 수준이다.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대학 교육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공시 체계를 고도화하며 대학의 책무성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표준액을 초과하는 등록금을 책정할 경우 초과수익이 실험 실습실 확충이나 교수진 확보 등 교육 환경 개선에 어떻게 환원되는지 상세 계획서를 대중에게 공시해야 한다. ‘돈을 받는 이유’와 ‘그 돈이 만들어낼 변화’를 동시에 설명하라는 엄중한 요구다. 영국 역시 등록금 1파운드당 지출 내역을 시각화하여 제공하고, 이를 교육 우수성 평가(TEF) 결과와 연계 공시한다. 미국은 수업료 외에 생활비 등을 포함한 총교육비(COA)를 공개하고, ‘순학비계산기’ 배치를 의무화해 학습자의 합리적 선택을 돕는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대학이 등록금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교육의 질을 증명해야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정부의 대학 등록금 규제정책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우리 대학들도 “등록금 동결로 재정이 어렵다”는 읍소만 되풀이할 단계가 지났다. 등록금 인상 여부에 머물기보다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의 경제적·사회적 효용을 투명하게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다. 공급자 중심의 단순 회계 공시에서 벗어나, 학습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성과 중심의 공시 체계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전공별 기대 수익, 직접 교육비 투입 비중, AI 및 디지털 역량 향상도 등 수요자 중심 지표가 핵심 지표로 담겨야 한다.대학이 스스로의 가치를 데이터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상아탑의 위기는 단순한 재정난을 넘어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존립 근거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그리고 정부 당국에 대학이 비용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확신을 줄 때, 비로소 대학은 ‘형식적 학위 수여 기관’에서 벗어나 진정한 지식의 전당으로서 그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이제 대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엄중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그 입증의 결과가 곧 우리 고등교육의 지속 가능성과 질적 도약을 결정지을 것이다.남수경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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