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 중심서 '창작·감각 공유'로 패러다임 전환…도심 문화 거점 전략
작가 워크숍·배리어프리 확대 통해 공공성 확보… 지역 생태계와 상생 도모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 대형 오피스 빌딩이 밀집한 이른바 '빌딩 숲' 한복판에서 미술관의 운영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실험이 전개되고 있다.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세화미술관은 5월 가정의 달과 나들이 시즌을 맞아 '관람객 밀착형'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고 설명하는 정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관객의 물리적 개입과 창작 경험을 유도하는 '능동적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모습이다.
어쩌면 삐뚤게 세상에 낙서하기(사진=세화미술관)
세화미술관의 이번 기획은 현재 진행 중인 두 기획전 '기억의 실루엣'과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의 연장선에 있다. 미술관 측은 5월 중순부터 전시의 미학적 메시지를 오프라인 활동으로 치환한 작가 참여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다.
17일 예정된 김예솔 작가의 '어쩌면 삐뚤게 세상에 낙서하기'는 만화경을 도구로 활용해 드로잉의 경계를 확장하는 시도를 한다. 관객이 직접 선을 긋고 이를 왜곡된 시선으로 재관찰하는 과정은 작가의 창작 원리인 '놀이'를 관객이 직접 수행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23일 진행되는 정만영 작가의 '사운드 탐험'은 시각 중심의 미술 감상을 청각 영역으로 전이시킨다. 도심의 소음을 직접 채집하고 이를 예술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은 작가의 감각 체계를 관람객이 복제해보는 고도의 심리적·물체적 체험이다.
특히 화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 전시장 내에서 솜사탕을 매개로 소통하는 이원우 작가의 퍼포먼스는 권위적이었던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상징적 장치로 평가받는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세화미술관의 이러한 행보를 경영학적 개념인 '체험 경제(Experience Economy)'가 예술 현장에 깊숙이 침투한 결과로 분석한다.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고 복제가 용이해진 시대일수록,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촉각과 청각 기반의 아날로그적 경험이 관객에게 더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미술관 로비에 마련된 '핸드메이드 진(zine)' 제작 공간은 이러한 트렌드를 정면으로 반영한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Docent) 대신 관람객이 직접 소책자를 만들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은 현대 문화예술계의 'DIY(Do-It-Yourself)'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동시에 공공성 강화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도 병행된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시행되는 '세화 아트 로드: 수어 해설'은 시각 예술 중심 공간에서 소외됐던 청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실질적인 배리어프리(Barrier-free) 행보로 꼽힌다. 사립 미술관이 대중적 친밀도와 공익적 책임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화미술관의 실험은 미술관 내부 담장에 머물지 않는다. 인근 식당과의 연계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SNS 후기 이벤트를 통해 디지털 소통을 강화하는 등 도심형 미술관이 지역 생태계와 공존하는 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람객 유치를 넘어, 광화문 일대 직장인과 가족 단위 방문객의 라이프스타일 속에 미술관을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미술관은 6월 큐레이터 대담 프로그램인 '미술관 마실'을 통해 이번 기획의 학술적 갈무리와 향후 방향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체험형 프로그램이 자칫 '이벤트성 흥행'에 그치지 않도록 전문성을 보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세화미술관의 시도가 국내 사립 미술관 운영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기획전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브랜드 로열티'를 구축하는 방식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체험형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전시 본연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세화미술관 관계자는 "과거의 미술관이 박제된 유물이나 완성된 결과물을 전시하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관객의 일상이 투영되고 새로운 기억이 생산되는 '생동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입지를 활용해 누구나 예술을 향유하고 직접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굿모닝경제 노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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