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전환이 만든 공급 병목···메모리 시장 '완전 공급자 우위'
AI 서버 확산이 촉발한 기판·MLCC 부족···부품사 주도권 확보
반도체·부품 '슈퍼사이클' 韓 제조사 우위 강화/이미지=챗GPT 생성
| 스마트비즈 = 양대규 기자 |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메모리부터 패키지 기판, 전자부품까지 주요 핵심 영역에서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전기, LG이노텍 등 한국 주요 제조사들이 구조적 우위를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황 반등을 넘어 '공급자가 시장을 지배하는 국면'으로 전환됐다.
HBM 전환이 만든 공급 병목···메모리 시장 '완전 공급자 우위'
2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률은 72%로 제조업에서 보기 어려운 수준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파운드리 1위 TSMC의 영업이익률(58.1%)을 약 14%포인트 앞질렀다.
AI 서버 확대에 따른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급증이 핵심 배경이다. SK하이닉스 D램 출하량 중 HBM 비중은 약 30%까지 상승했다. 문제는 고부가 제품 확대가 오히려 전체 공급을 줄였다는 점이다. HBM은 일반 DDR5 대비 약 3배의 생산능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사들이 설비를 HBM 중심으로 재배치하면서 범용 D램 공급은 구조적으로 감소했다.
이에 D램 가격은 급등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D램 고정거래가격은 전 분기 대비 90~95% 상승했고, 2분기에도 58~63%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낸드플래시 역시 1분기 55~60%, 2분기 70~75% 상승 전망이 나왔다.
삼성전자 주주총회 현장에 전시된 HBM4와 HBM4E/사진=연합뉴스
공급 우위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2분기 D램 가격을 약 30% 인상했다. 과거 연 단위 중심이던 계약 구조가 분기·월 단위로 재편되고 있다. 일부 거래에서는 납품 시점 가격을 반영하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공급자가 가격 결정권을 확보한 전형적인 공급 부족 시장의 특징이다.
실제 삼성전자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133조원, 영업이익은 57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8%, 755%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메모리 부문 영업이익률이 60~70% 수준에 이른 것으로 추정한다. 글로벌 D램 공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시에 가격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서버 확산이 촉발한 기판·MLCC 부족
부품사 주도권 확보
메모리뿐 아니라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서도 병목 현상은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기는 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와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에서 공급 부족 수혜를 동시에 받고 있다. FC-BGA는 AI 가속기와 서버용 반도체에 필수적인 고난도 기판으로 생산 가능한 업체가 제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기판 공급업체에 평균 10% 안팎의 판가 인상을 수용했고, 삼성전기 역시 일부 AI 고객사 대상 FC-BGA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파악된다. FC-BGA 라인은 2026년 하반기 풀가동, 2027년 연간 풀가동 체제 진입이 예상된다. 서버·데이터센터용 FC-BGA 수요는 현재 생산능력 대비 50% 이상 많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MLCC 시장도 유사한 흐름이다. 삼성전기와 일본 무라타의 MLCC 가동률은 이미 90% 이상이며 재고는 낮은 수준이다. 주문 후 납품까지 걸리는 리드타임은 20~24주로 생산 리드타임(6~8주)을 크게 웃돌고 있다. AI 서버 세대가 진화할수록 MLCC 탑재량은 급증하는데, 엔비디아 호퍼(Hopper) 서버는 2만개 이상, 차세대 블랙웰(Blackwell)은 40만개 이상, 루빈(Rubin)은 180만개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기 전장용 반도체기판(FCBGA) 샘플사진. /사진=삼성전기
생산 난도가 높아 신규 진입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공급 우위를 강화하는 요인이다. 삼성전기는 베트남 생산법인에 약 12억달러(1조8000억원)를 투자해 FC-BGA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으며, 글로벌 생산 거점을 동시에 확장하고 있다.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증설 속도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구조다.
카메라 모듈과 반도체 패키지 분야를 담당하는 LG이노텍 역시 비슷한 흐름에 올라타 있다. AI 스마트폰과 서버용 광학·기판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면서 고부가 부품 중심의 사업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AI 디바이스 확대는 모바일 부품을 단순 소비재 부품에서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성 요소로 재정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반도체 산업의 핵심 변수는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AI 서버 구축을 위해 장기 구매 계약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5년 단위 물량 협의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생산라인은 HBM 전환, 첨단 패키징, 고난도 부품 공정으로 묶여 단기간 증설이 어렵다. 이 같은 구조는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와 핵심 부품을 동시에 보유한 한국 제조사들이 AI 인프라 시대의 실질적 ‘게이트키퍼’ 역할을 맡게 됐다"며 "공급 부족 국면에서 가격, 계약, 투자 속도를 모두 통제할 수 있는 기업만이 시장을 주도하는데, 현재 그 위치에 가장 가까운 기업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전기, LG이노텍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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