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열악한 공급망 의존 현실
미국, '바루크 교훈' 성공 사례
공급망 안보, 국가가 책임져야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합성고무 프로젝트는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와 함께 2차 대전 최대의 국가 안보 프로젝트로 꼽힌다. 전차 한 대에 고무 0.5톤, 전함 한 척에 75톤이 들어갔다. 고무 없이는 전쟁 자체가 불가능했다. 일본이 동남아를 장악하며 천연고무 공급의 90%가 끊기자, 미국은 국가 존립의 위기 앞에 섰다. 그런데 국가가 사라질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미국 내부에선 소모적인 '고무 논쟁'이 1년 넘게 이어졌다.
논쟁의 겉모습은 기술 논쟁이었으나 속내는 철저한 이권 다툼이었다. 핵심은 "무엇으로 부타디엔(합성고무 원료)을 만들 것인가"였다. 중서부 농경지대 의원들은 에탄올 방식을 밀어붙였다. "석유는 고갈되지만 농산물은 재생 가능하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과잉 생산된 곡물 재고를 처리하려는 게 본질이었다. 반면 스탠더드 오일 등 거대 정유사들은 석유 부산물을 활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이들은 독일 화학기업과 손잡고 기술 독점을 통한 시장 장악을 꾀해 왔다는 점이 의회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공급망 안보라는 공공재를 만들어야 할 시기에, 정치인은 표를 계산했고 기업은 독점적 지위를 계산했다. 의회는 결국 농민의 손을 들어주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 수행을 위한 기술적 결정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논쟁이 국가를 마비시키던 1942년, 루스벨트는 버나드 바루크에게 전권 조사를 맡겼다.
"사실 박사(Dr. Facts)"라는 별명을 가진 바루크의 해법은 명쾌했다. 그는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사료통(feed-box)에서 갓 꺼낸 사실"에 집중했다. 바루크 위원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급망의 철저한 분해였다. 타이어, 가스마스크, 항공기 유압호스 등 용도별로 필요한 고무의 성질을 분석하고, 에탄올 방식과 석유 방식의 생산 속도와 비용을 객관적으로 비교했다.
바루크 위원회는 논쟁을 '승패'가 아닌 '역할 분담'으로 끝냈다. 에탄올 방식은 공장 건설이 빨라 단기 공급에 투입하고, 석유 방식은 장기적 대량 생산을 맡겼다. 정부가 공장 건설 자금을 대고, 기업은 운영만 맡는 '공공 투자-민간 효율' 모델을 확립했다. 경쟁 관계였던 기업들은 200종 이상의 특허를 공유해야 했고, 하버드와 MIT 연구진이 합류했다. 그 결과 10년이 걸릴 것이라던 일을 단 10개월 만에 해냈고, 1941년 8,000톤이던 생산량은 1945년 92만 톤으로 폭증했다.
한국의 공급망 현실은 당시 미국보다 더 열악하다. 수입 품목(HSK10)의 44%가 특정국에 70% 이상 의존하고 있으며, 대체 공급원이 전혀 없는 품목도 590개에 달한다. 공급망 안보는 단순히 수입처를 바꾸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동의 원유나 중국의 원자재는 수십 단계의 가치사슬로 엮여 있다. 원유 한 배럴에서 연료뿐 아니라 비료, 농약, 반도체 세정제 등 수만 가지 원료가 나오듯, 공급망을 바꾼다는 것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재설계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기득권을 잃고, 누군가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시장은 언제나 가장 싼 공급원으로 돌아가려 하며, 기업은 당장의 실적 때문에 장기적 안보 투자를 기피한다.
바루크의 교훈은 명확하다. 시장의 자생적 노력에만 맡겨둔 공급망은 반드시 붕괴한다. 공급망 안보는 국가가 리스크를 사고, 민간이 혁신을 파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는 '사실'로 정리하고, 정치가 아닌 과학과 안보의 관점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탈중국', '탈중동'이라는 구호가 아니다. 합성고무 프로젝트의 출발은 사실 조사였고, 핵심은 정부와 기업의 역할 분담이었으며, 결과는 미국 산업 경쟁력의 토대가 됐다. 공급망 안보는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국가의 일이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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