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장도장(은장도)
임장식 전승교육사 중심으로
은장도 만들기·토요상설공연 등
체험·시연 이끌며 활성화 노력
“사용 않더라도 전통 이어져야”
전승자만으로 명맥 유지 어려움
지자체 보전·진흥책 따라 좌우
“시민 접점 더 늘릴 방안 필요”
6일 오후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앞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무형유산 토요상설공연’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 강병주 이수자가 시연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이 기획은 단순히 지역 유산을 나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주정마을과 부동마을은 구불구불한 ‘꼬불통’(담배통) 같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다. 이곳은 조선 후기부터 담뱃대를 만드는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 ‘댓방골’이라고 불렸다.
이 지역 주민인 윤태섭(1932~2000) 옹은 부친에게서 장죽(長竹·긴 담뱃대) 제작 기술을 익혀 가업을 이어왔다. 1995년에는 지금의 경상남도 무형유산 ‘연관장(煙管匠)’ 보유자로 지정됐다. 그러나 윤 옹의 별세로 장죽 제작의 명맥이 끊겼고, 연관장도 2024년에 경상남도 무형유산에서 해제됐다.
17세기 초 일본에서 전래한 연초가 기호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담뱃대 수요도 꾸준했다. 1950년대에는 댓방골에서 공방 8곳이 성행했다. 하지만 궐련(일반 담배)이 생산·보급되며 담뱃대 수요는 급감했고, 현재 도내 연관장 전승 기반은 사실상 사라졌다.
장도장(粧刀匠)도 사정이 비슷하다. 장도는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차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로, 조선시대에는 생활용을 비롯해 장식·호신용으로 남녀노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지녔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휴대용 칼 등이 대량 생산되면서 위상이 꺾였고, 장도를 제작하는 장도장의 수도 줄어들었다.
도내 장도장 전승 기반도 사라질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현재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 임장식(65) 전승교육사를 중심으로 강병주 이수자와 문하생 2명이 시민과 접점을 넓히며 명맥을 잇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9일 자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경남의 맥을 찾아서-진주 장도장(은장도)’. /갈무리
“전통 고집하면서 은장도 만들 것”
임 전승교육사는 2012년 본지와 인터뷰에서 가업을 잇고 쪼이질(새가 모이를 쪼듯 정으로 쪼아 문양을 새기는 기법)을 고수하는 이유 등을 풀어냈다. 그는 1980년대에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장도의 길로 돌아왔다. 선물용 수요가 꾸준해 장도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장도는 칼몸·칼자루·칼집 등 세 부분을 조합해 만든다. 수작업으로 제작돼 품을 적게 들인다고 해도 평균 2~3일이 걸리며, 장인의 공력이 들어가기에 인터뷰 당시 기준으로 최소 수십만 원의 값어치를 했다. 대량 생산되는 커터칼과 경쟁하기는 어려웠을 터. 그럼에도 임 전승교육사는 무형유산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중 상당수가 지금은 즐겨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다. 은장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것을 보전하고 계승할까. 그것은 바로 당시에는 그게 최고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은장도만 해도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도 은장도를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전통 기법 중에서 맥이 끊긴 기술이 너무 많다. 지금보다 공구도 좋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을까’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 너무 많다. 박물관에 가면 감탄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 기술을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도 전통을 고집하면서 은장도를 만들 것이다.”
4월 4일 오전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에서 ‘논개 가락지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 임장식(가운데) 전승교육사가 체험 참가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류민기 기자
4월 4일 오전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에서 ‘논개 가락지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이 장도를 만져보고 있다. /류민기 기자
4월 4일 오전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에서 ‘논개 가락지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부모와 함께한 아이들이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을 소개하는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체험 프로그램·상설공연 등으로 시민과 접점 마련
4월 4일 오전 10시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 1층 전수교육실. 이날은 18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전·오후 두 차례 진행되는 ‘논개 가락지 만들기’ 체험의 첫 시간이었다. 부모와 함께한 아이들은 가락지 치수를 재고 2층으로 이동해 장도장을 소개하는 영상물을 시청했다. 영상을 보는 동안에 1층에서는 임 전승교육사가 체험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영상 시청 전 일(一)자형 장도, 을(乙)자형 장도 등 책상에 놓인 장도를 만져보고 젓가락이 달린 첨자도의 쓰임새 등 설명을 들었다. 영상물이 끝난 후에는 1층으로 돌아와 자기 손가락에 맞도록 정으로 가락지를 두드렸다. ‘통, 통, 통’ 소리가 이어졌고 문하생들의 마무리 작업까지 끝나자 아이들은 완성품을 받아 들고 기뻐했다. 이들에게 가락지 만들기 체험은 장도장을 처음 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5월부터는 ‘은장도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만 19세 이상 성인 8명이 7월 10일까지 10주간 매주 금요일 오후 장도 제작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다. 논개 가락지 만들기는 진주시, 은장도 만들기는 국가유산청·진주시의 지원사업으로, 두 교육은 장도장을 보급하고 전수교육관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시민과 접점을 넓혀나가는 시책으로 ‘무형유산 토요상설공연’도 있다. 2007년 시작된 공연은 올해로 19회째를 맞았으며, 올해는 4월부터 9월까지(7~8월 제외) 진주성 중영 앞마당과 국립진주박물관 앞 야외공연장에서 열리고 있다. 장도장과 두석장 공간도 마련해 매주 시연하고 있다.
공연에서는 국가무형유산인 진주검무·진주삼천포농악, 경상남도 무형유산인 진주포구락무·신관용류가야금산조·진주오광대·진주교방굿거리춤이 참여한다. 이달 6일 오후 진주성을 찾았을 때 시민들은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자리를 잡고 공연을 관람했으며, 또 다른 시민들은 진주성을 거니는 중에 장도장과 두석장의 시연을 지켜봤다. 무형유산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6일 오후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앞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무형유산 토요상설공연’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 강병주 이수자가 시연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6일 오후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앞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무형유산 토요상설공연’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 강병주 이수자가 장도 제작 시연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류민기 기자
전승자만으로는 무형유산 명맥 유지 역부족
이제는 전승자의 분투만으로 무형유산의 명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현행 ‘국가유산기본법’과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등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무형유산을 보전하고 전승 기반을 조성해야 하는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상위법인 ‘대한민국헌법’에서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있다고 해서 무형유산의 전승 과정이 원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수교육시설 마련에 얼마나 노력할지, 무형유산 보전·진흥에 필요한 경비를 어느 정도 보조할지 등은 특히 자치단체(장)의 정책 의지와 재정 여건에 달려 있으며, 예산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법은 최소한의 틀일 뿐이다.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주최·주관하는 행사와 축제에서 무형유산 전승자를 참여시키는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진주시는 5월 2일부터 5일까지 진주성과 진주대첩 역사공원 일원에서 열린 ‘제25회 진주논개제’에서 장도장과 두석장 등이 참여한 교방예술촌을 운영했다. 9월 열릴 ‘진주국가유산야행’에서도 함께한다. 전승자가 시민을 만날 수 있는 장을 얼마나,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무형유산의 생명력도 달라진다.
26일 오후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에서 ‘은장도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교육 참가자들이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 임장식 전승교육사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류민기 기자
26일 오후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에서 ‘은장도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류민기 기자
26일 오후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장도장(은장도)’ 임장식(가운데) 전승교육사와 문하생, 교육 참가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류민기 기자
갈 길 먼 전승 기반 확대
26일 오후 7시 진주장도장전수교육관. 이날은 은장도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로, 임 전승교육사와 문하생 2명, 교육 참가자 6명이 교육관을 채웠다. 칼몸 작업이 이뤄졌으며, 열처리하는 등 임 전승교육사의 손길을 거치는 동안 칼몸의 형태가 드러났다.
교육 참가자들은 모집 인원이 극소수라는 점, 프로그램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전수교육관 위치를 언급하며 시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도 밝혔다. 이들은 현재 장도장이 연관장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와 진주시의 지원, 진주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바탕으로 전승 기반을 더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쉬워요. 앞으로 교육이 두 번 남았는데, 끝나면 여기에 올 이유가 없어지는 느낌이네요. 오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거를 연결하려면 (진주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참 많이 아쉽네요. 앞으로 확장해 나가고 해서 수풀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류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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