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
중동 사태, 치솟는 환율과 국제유가, 불안정한 공급망 등 글로벌 교역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음에도 우리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경기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3월 수출액은 861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3%나 급증했다. 종전 최고기록을 166억 달러 넘어선 쾌거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있었던 2월 28일 이후 실적임을 감안할 때 실로 놀라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수출 기록에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바로 산업 간 디커플링 현상이다. 3월 중 반도체 수출은 328억 달러로 지난해 대비 무려 151.4% 폭증하면서 전체 수출의 38.1%를 홀로 책임졌다. 반면 기계, 철강, 디스플레이, 가전, 자동차부품 등 전통 주력 산업의 수출은 감소했다.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 우리 경제의 향방을 결정짓는 구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 반도체 시장의 수급 여건이 아직 우호적이기는 하나, AI 버블 붕괴 가능성, 투기 수요에 대한 우려 등으로 반도체 슈퍼 사이클 조기 종료 전망도 있어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우리 경제가 탄탄한 펀더멘털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든 산업이 골고루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반도체 업황이 나빠져도 경제 전체에 미치는 충격이 흡수될 수 있다. 지면을 빌려 몇 가지 정책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국가전략기술과 신성장기술에 비해 턱없이 미흡한 일반 연구개발에 대한 세제지원을 크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전략기술과 신성장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최대 30~40%이지만, 일반 연구개발은 2%에 불과하다. 기술의 융합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와 같이 기술 유형별로 구분해 세제지원에 과도한 차등을 두는 것은 일반산업 분야에서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지연시킬 수 있다.
아울러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의약품, 디스플레이 등 9개 분야로 구성된 국가전략기술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적자가 나더라도 투자세액공제를 현금으로 환급해 줄 필요가 있다. 현행 세액공제 제도는 이익이 발생해야만 공제 혜택이 적용된다. 해당 9개 산업은 첨단업종으로 통상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므로 다른 업종들보다 투자 실패에 따른 자금부담 리스크가 큰 측면이 있다. 첨단업종에 대한 경쟁력 확보 노력을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현금 환급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도전과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도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규제가 열거된 사항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어 새로운 산업을 수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기술개발도 지연될 수 있다. 규제시스템을 원칙허용·사후규제의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사의 경영판단에 대해 광범위한 처벌이 가능한 배임죄도 전면 개편해야 한다. 배임죄가 기업가정신의 출현을 저해하는 대표적 규제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은 형법상 배임, 업무상 배임, 회사법상 특별배임에 더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이 있는 유일한 나라다. 규제 도입 전 사전심사 절차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특히, 국회의 입법은 법률 사항이기 때문에 규제의 경직성이 크다. 입법 과정에서 행정부처럼 규제 타당성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혼자서는 울창한 숲을 이룰 수는 없다. 우리 산업구조가 제대로 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국회와 정부의 뒷받침은 그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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