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검찰 항소 기각…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3년 유지
강풍·다른 발화 지점 등 피해 확대 요인 고려…인명 피해 인과관계 입증 부족
▲ 대구지법은 16일 경북산불 실화자 정모(63)씨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사진은 2025년 4월 24일 의성 산불 발화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대구지법 의성지원에 출석해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김동현 기자 jhass80@kyongbuk.com
“실수라 하기에는 사실상 너무 크잖아요.”
지난해 3월 경북을 덮친 초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은 또 다른 허탈감으로 다가왔다. 산불 발생 원인을 제공한 실화자에게 항소심에서도 집행유예가 유지됐지만, 피해 주민 상당수는 여전히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며 복구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산불 피해가 확대된 데에는 피고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형사책임의 범위를 가리는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피해 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생활고는 현재진행형이다.
대구지법 형사항소2-1부(김정도 부장판사)는 16일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모(63)씨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정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한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정씨는 지난해 3월 22일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의 한 과수원에서 영농 부산물을 태운 뒤 불씨가 완전히 꺼졌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 산불을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의성군 안계면과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경북 북동부 5개 시·군으로 확산했다. 이 일대 산불로 27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으며, 피해 면적은 9만9289㏊에 달했다. 이재민도 3500여 명 발생했다.
항소심의 핵심 쟁점은 대규모 산불 피해에 대해 실화자에게 어느 범위까지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였다.
재판부는 정씨의 부주의가 산불 발생의 원인이 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해 규모 전체를 피고인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건조한 날씨와 강풍, 다른 발화 지점에서 시작된 산불 등 피고인이 예견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웠던 요인이 피해를 키웠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인명 피해와 정씨의 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과 유사한 산림 실화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양형 판단에 반영됐다. 다만 재판부는 정씨의 부주의한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강하게 질책했다.
재판부는 “실형 선고를 하고 구속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쓰레기를 바람 부는 그날 반드시 태워야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산불 피해의 확대 과정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더라도 강풍이 부는 날 불을 피우고 잔불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행동의 위험성은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형사재판을 통해 정씨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의 범위는 정리되지만, 피해 배상 문제는 별도로 남는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별도로 의견을 들은 한 법원 관계자는 “유무죄를 다투는 것도 아니고 양형만 다투는 건데”라며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하는 데에는 법률상 제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상고 여부와 향후 법적 대응이 주목된다.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 역시 간단하지 않을 전망이다. 같은 관계자는 “민사도 이제 인과관계가 증명의 문제”라며 별도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와 실화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둘러싼 판단이 내려지는 동안 피해 지역 주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산불 피해를 겪은 의성군 단촌면의 40대 여성 주민은 이날 항소심 결과를 전해 듣고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직 복구가 안 돼 있지. 다들 아직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는데”라며 산불 이후 달라진 마을의 현실을 전했다.
집을 다시 짓기 위해 빚까지 져야 할지 모르는 이웃들의 형편도 걱정했다.
특히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고령 주민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자기 집을 잃어버린 할머니들은 자식들이 안 해주면 뭘 할 수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스스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노인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산불의 상처가 워낙 깊어 이웃끼리도 당시 상황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집과 생활 기반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주민들에게 산불은 지나간 재난이 아니라 여전히 감당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이다.
주거지를 다시 마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생계 회복의 불확실성은 피해 주민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대형 산불의 피해 규모와 실화자 개인에게 물을 수 있는 형사책임의 범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의 행위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예견 가능성, 기존 판례와 양형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산불로 발생한 모든 피해를 한 사람에게 법적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으로 피해 주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령 피해자들은 주택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거나 복잡한 복구 절차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주민일수록 장기적인 주거 불안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따라 형사재판의 결과와 별개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속적인 주거·생계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시 거처에서 안정적인 주택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력으로 재건하기 어려운 고령 피해자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주거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초대형 산불 발생 이후 1년 7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 주민들의 일상 회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실화자에 대한 법적 판단과 피해 주민들의 삶이 회복되는 시점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지가 산불 이후 지역사회와 행정에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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