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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건축탐구 집] 영혼을 갈아 넣은 황혼의 럭셔리 저택

그는 현실에 따라 IT 업계에 오래 몸담았으나 치열한 속도전 속에 마음 따라 몸도 탈이 났다. 건강에 적신호가... 숫자와 씨름하는 IT 전문가의 내면에는 알고 보니 문학 소년이 숨어 있었다. 집을 고치는 시간이야말로...

[건축탐구 집] 영혼을 갈아 넣은 황혼의 럭셔리 저택

이코노미퀸 박유미 기자 사진=EBS 건축탐구 집

[건축탐구 집] ‘인생 마지막 집, 아낌없이 지었노라’ 편이 5월 19일 화요일 밤 9시 55분, EBS1에서 방송된다.

팔순 농부의 아내를 위한 럭셔리 저택

경북 예천의 한 마을, 평생을 농사만 지어온 노부부가 팔순을 앞두고 생애 가장 찬란한 집을 지었다. 40년 세월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을 키워낸 헌 집은 뒤로 하고, 부부의 일터인 배밭 옆에 새로 지은 인생 마지막 집! 전망 좋은 터에 자리 잡은 부부의 새집은 리조트를 연상하게 하는데...

시골 분위기와 사뭇 다른 이들의 럭셔리 저택은 40년간 시부모를 봉양하고 농사, 살림까지 묵묵히 도맡은 아내 성자 씨가 “죽기 전에 좋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남편 진윤 씨는 고생한 아내에게 집으로 보답하고 싶었으나 예산 걱정에 헌 집을 리모델링하자고 제안했단다. 어림도 없는 소리! 아내는 무조건 크고 넓은 집을 고집했다고.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고자 네 남매도 합세해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고급 주택 짓기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특히 맏딸 혜은 씨가 총대를 메고 서울의 일류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집 짓는 데 들어간 철근만 28톤, 시멘트 두께는 1.5m! 100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게 설계한 이 집은 묵직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거실을 감싼 통창은 채광은 물론 세련미를 자아내며, 최고급 시스템 창호를 적용해 옛집의 고질적인 단열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했다. 딸들이 가장 공들인 주방. 예천에서 서울까지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자재, 가구 하나하나 직접 골라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완성한 주방은 세라믹 상판과 넉넉한 원목 수납장으로 채우고, 여럿이 함께 요리해도 될 만큼 여유롭게 구성했다.

히든 도어로 마감한 부부의 침실도 호텔급! 침대에 누워 마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통창을 내고, 밭일 후 피로를 씻어줄 편백 욕조까지 설치했다. 자주 내려오는 자녀와 손주들을 생각해 만든 2층에는 테라스 딸린 방과 미니 주방을 들였다. 리조트 못지않은 새집 덕에 서울 사는 자녀들의 발걸음도 더 잦아졌단다.

“나이 들어 얼마나 산다고 빚까지 내서 집을 짓냐”라는 주변의 우려를 듣기도 했다는 부부. 하지만 건축 잡지에 실릴 만큼 아낌없이, 또 후회 없이 지은 집에서 살며 부부는 나날이 회춘하는 기분이란다. 노년엔 관리하기 편한 작은 집이 최고라는 편견을 깨고, 풍요로운 공간이 선사하는 삶의 질을 몸소 증명한 셈! 아내를 향한 남편의 통 큰 보답과 부모님의 여생을 응원하는 네 남매의 효심으로 꽉 채운 집을 들여다본다.

은퇴 후 나를 위한 우아한 보상

살면서 천직을 찾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열 번은 구했을 거라 말하는 남편 한용 씨. 그는 현실에 따라 IT 업계에 오래 몸담았으나 치열한 속도전 속에 마음 따라 몸도 탈이 났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서야 그는 조기 은퇴를 택하고 9년 전 친구와 나란히 지은 주말 주택을 자신만의 색으로 고치기 시작했다. 아내에겐 하자 보수를 가장한 채로.

처음 집을 지을 당시 특별한 취향도 없고 바쁘단 이유로 건축사에 모든 걸 맡겼다는 부부. 하지만 9년이란 세월을 지나오며 집이란 ‘마땅히 영혼을 갈아 넣을 만한 대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남은 생을 기댈 안식처를 만들고자 그는 집 내부 전체를 뜯어내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매일 레퍼런스를 10개씩 찾아 5개로 추리는 작업을 수개월 반복한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콘셉트를 찾았다. 그 이름은 ‘와비사비’. 와비사비는 불완전함 속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미학으로, 그의 삶의 철학과 똑 닮았다.

인테리어 업체 디자인 팀은 추상적인 그의 취향을 구현해 내기 위해 일본 답사까지 감행했을 만큼 이 집은 집념의 결정체이다. 한용 씨는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고자 현무암, 자연석, 고재 등 시간을 머금은 소재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특히 거실 단상의 고재 기둥은 장인이 쌍주먹장으로 끼워 맞춰 고전미를 더했다. 이 집의 백미는 단연 계단! 자연 소재로 채운 집인 만큼 계단 역시 한 풍경처럼 만들길 바랐다고. 연구 끝에 원목 레진 슬라브 장인을 어렵게 설득해 만든 계단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식탁부터 조명, 아내만을 위한 침실과 별채까지 그의 고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숫자와 씨름하는 IT 전문가의 내면에는 알고 보니 문학 소년이 숨어 있었다. 집을 고치는 시간이야말로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발산하는 해방의 시간이었다는 한용 씨. 반면, 뼛속까지 공대생인 아내 양형 씨는 집 고치기에 몰두하며 생기를 찾은 남편을 보며 비로소 그의 감성을 이해하게 되었단다.

한 치 앞만 보며 살아온 끝에 스스로에게 허락한 가치 있는 사치! 고된 세월을 버텨 도착한 부부의 제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건축탐구 집> ‘인생 마지막 집, 아낌없이 지었노라’ 편에서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행복을 찾아 아낌없이 투자한 집을 탐구해 본다.

이코노미퀸 박유미 기자 사진=EBS 건축탐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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