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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거대한 장벽 앞에 선 청년들에게 "끝내 벽을 넘어설 수 있다"

AI시대에 인간의 가치와 마음을 바라보는 과학자의 따뜻한 시선은 작품 「Happiness」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진법 숫자 '0'과 '1'은 기계의 언어인 동시에 '너(YOU)'를 의미하며, 「어른들은 모두 한때...

거대한 장벽 앞에 선 청년들에게 "끝내 벽을 넘어설 수 있다"

김한기 교수의 '어린왕자' 출처=인사1010

“나는 어린왕자를 읽을 때마다 불편했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말이 많고, 왜 이렇게 질문이 많으며,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가? 그러다 깨달았다.

그 불편함은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김한기 작가 노트 중에서)

과학자이자 예술가로 활동하는 김한기 성균관대 교수(신소재공학부)가 과학을 소재로 마음을 이야기하는 미술 전시회 ‘B612의 과학자’를 지난 18일부터 서울 종로구 갤러리 인사1010에서 열고 있다.

'B612의 과학자' 출처=인사1010

이번에 선보이는 60여 점의 작품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삼았다. 김 교수는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소중한 본질적 가치들을 과학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전자, 자기장, 파동처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적 원리들이, 사실은 사랑과 우정, 신뢰와 같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핵심 가치들과 닮아있음을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김 교수는 작가 노트에서 “나는 과학자 혹은 공학자다. 수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불완전하다고 배워왔고, 측정되지 않는 감정이나 현상은 늘 의미 없이 취급해 왔다. 그러나 과학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세상을 움직이는 것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어린 왕자가 말한 중요한 것은 어쩌면 가장 과학적인 개념일지도 모른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양자역학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응원과 진심을 전하는 작품 '터널링' 출처=인사1010

특히 김 교수의 작품에서 눈여겨 볼 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향한 진심 어린 메시지다. 대표작인 「Tunneling」 연작은 양자역학의 ‘양자 터널 효과(Quantum Tunneling)’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 교수는 “제 작품 중에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중 터널링이란 작품은 학생에 대한 저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터널링이란 에너지가 부족해 보이는 입자가 고전역학의 상식적인 장벽을 넘지 못할 것 같아 보이지만 확률적으로 그 장벽을 통과해 다른 쪽에 도달하는 현상을 말한다. 반도체공학을 가르치는 김 교수에게 터널링은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니다. 강의실에서 지금 이 시대의 학생들과 마주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해되지 않는 공식, 포기하고 싶은 순간,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감정을 어떻게든 함께 넘어가고 싶은 ‘선생님’의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어린왕자가 작은 별 B612를 떠나 각각의 별에서 어른들을 만났듯, 이 시대의 청년들 역시 사랑, 학업, 학점, 취업, 건강, 종교, 인간관계, 돈이라는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장벽들 앞에 서 있고 그 장벽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김 교수는 “저의 「터널링」 연작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물리적 통로를 형상화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시대 청년들의 정서적·사회적 장벽을 구체화하고 있다. 넘기 어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양자역학이 말하듯, 확률이 0이 아니라면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터널링해서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AI시대에 인간의 가치와 마음을 바라보는 과학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Happiness」출처=인사1010

AI시대에 인간의 가치와 마음을 바라보는 과학자의 따뜻한 시선은 작품 「Happiness」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진법 숫자 ‘0’과 ‘1’은 기계의 언어인 동시에 ‘너(YOU)’를 의미하며, 「어른들은 모두 한때 어린아이였다」와 같은 작품은 효율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동심과 순수함을 일깨운다.

장준호 성균관대 교수

김 교수는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현실의 벽 때문에 미대 진학을 하지 않고 공대로 진학했다. 그래서 늘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은퇴하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집에 거실을 작업실로 변경하고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림은 저에게 과학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언어인 셈이다. 그림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과학의 내용과 수식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에 Al, HI(Human intelligence), 로봇, 신소재, 각도, 오파츠, 스타워즈, 양자역학, 뇌과학, 뉴련, Ego, 전뇌화, 광합성, 나즈카 문명, 외계인, 골프, 달, 황도12궁, 플라즈마 등 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휼륭하게 작품의 주인공이 돼 주었다”고 밝혔다.

이어 “마치 그 옛날 고대인이 벽화에 지식을 남기듯 그림으로 나의 지식을 전달하려 해보았다”며 “이번 전시가 관람객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자신만의 행성인 B612를 되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성균관대는 이번 전시가 공학적 지식과 예술적 감성이 결합한 ‘융합형 인재’의 표본을 제시하고, 대중에게 과학을 보다 친숙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소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본 전시는 경기도 지역협력 연구센터 (GRRC)의 후원으로 수행됐다.

임효진 기자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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