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를 겨냥한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 나흘 만에 급제동이 걸렸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을 둘러싼 청년층과 개인투자자의 반발이 확산하고, '주가 누르기 방지법'마저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자 이재명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참모들과 진행한 상황 점검 회의에서 ISA 개편안과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둘러싼 여론을 보고받았다.
이 대통령은 ISA 개편안에 대해 "정확하게 준비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한 것이냐"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놓고도 애초 취지가 제도 설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재검토를 주문했다. 연합뉴스 보도
이번 지시는 세제 혜택을 활용해 국내 투자를 늘리겠다는 정책 방향과 달리, 기존 투자자의 선택권과 혜택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두 제도의 핵심 내용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도 커졌다.
◆ 국내 투자 늘리려다 기존 ISA 혜택 축소 논란
정부는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투자 대상을 국내 자산으로 한정한 '생산적 금융 ISA'를 신설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과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해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새로운 상품을 도입하면서 기존 ISA의 혜택을 동시에 줄이기로 한 대목이다. 정부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연간 납입 한도를 다음 해로 넘기는 제도를 폐지하고, 사실상 계속 연장할 수 있던 계약 기간을 최장 5년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담겼다.
현행 ISA는 한 해 납입액이 연간 한도에 미치지 못하면 남은 금액을 이듬해 이후에 추가로 납입할 수 있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거나 당장 투자 여력이 부족한 청년층도 향후 목돈이 생겼을 때 미사용 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월 제도가 사라지면 해당 연도의 한도를 채우지 못한 투자자는 그만큼의 절세 기회를 잃게 된다. 계약 기간까지 짧아지면 장기 운용을 통한 절세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해외 주식과 국내외 상장지수펀드(ETF)를 함께 운용해온 투자자들은 정부가 기존 ISA의 활용도를 떨어뜨려 사실상 국내 투자 상품으로 자금을 몰아가려 한다고 반발했다.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해 투자자에게 새로운 혜택을 주기보다 기존 선택권을 줄였다는 것이다.
◆ '주가 누르기' 막는다더니 회피 기준만 제시
상속·증여를 앞둔 최대주주가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가치와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행위를 막겠다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설계 단계부터 허점이 드러났다.
정부안은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 또는 코스닥 업종별 하위 10%에 포함된 상장사를 주가 누르기 기업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해당 기업으로 판단되면 상속·증여 대상 주식의 가치를 현행 평가액보다 최소 30% 높여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주가를 낮게 유지할수록 승계 비용이 줄어드는 기존 구조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기업이 일부 기간에만 PBR 순위를 끌어올리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기간 기업가치를 낮게 유지하더라도 13개 반기 중 두 차례만 기준선에서 벗어나면 추정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에서도 정부안이 주가 누르기를 차단하기는커녕 기업에 규제 회피 기준을 알려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정부안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며 별도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관련 보도
대통령이 두 제도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는 투자자 의견을 다시 수렴해 보완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세제개편안 발표 직후 핵심 정책이 흔들리면서 정책 조율과 사전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