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가고, 어떤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가.”
(ㅍㅍㅅㅅ 진유미 기자)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 왜 처벌은 다를까. 법원은 이를 ‘형벌의 개별화’라고 설명한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형량을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실제 판결을 들여다보면, 이 원칙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처벌의 기준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이후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53조는 특별한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더라도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으면 법원은 그 형을 가볍게 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작량감경(酌量減輕)이라고 한다. 판사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재량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건이다. 2018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던 것과는 정반대 결과였다. 재판부는 일부 혐의 축소와 함께 “경제적 역할”과 “재범 가능성” 등을 고려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수천만 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회사원들은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이어졌다. 수백억 원대 범죄와 수천만 원대 범죄 사이에서 형량이 뒤집히는 현상은, 법이 범죄의 규모보다 ‘사후 수습 능력’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인상을 남겼다.
음주운전 사건에서도 이 구조는 반복된다. 2023년 부산지방법원은 음주운전 사고를 낸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해자와의 합의와 처벌불원서를 주요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유사한 사고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실형이 선고된 판례도 적지 않다. 결국 같은 위험한 행위라도, 피해자와 합의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형량을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피해 회복 중심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피해를 회복했다면 처벌을 줄여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원칙이 ‘회복 능력의 차이’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고, 그 결과 감형을 받는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더 무거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반성’ 역시 예외가 아니다.
법원은 피고인의 반성 여부를 양형에 반영하지만, 반성은 본질적으로 내면의 상태다. 이를 법정에서 평가하는 순간, 반성은 ‘증명 가능한 행위’로 바뀐다. 공탁, 합의 시도, 재활 프로그램 이수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들 역시 일정한 시간과 비용, 정보 접근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결국 반성조차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법원이 사정을 고려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코로나 시기, 생활고로 달걀을 훔친 이른바 ‘코로나 장발장’ 사건에서 법원은 벌금형 선고유예를 선택했다. 생존을 위한 범행이라는 점과 피해 규모가 작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는 형벌이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재범 방지와 사회적 복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정 고려’가 일관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단적인 빈곤층은 선처를 받고, 경제적 자원이 풍부한 계층은 피해 회복을 통해 감형을 받는다. 그 사이에 있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히려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결국 현재의 형벌 체계는 ‘행위 책임’보다 ‘사후 대응 능력’을 더 크게 평가하는 구조로 기울어 있다. 법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이 가진 자원과 조건이 처벌의 수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형벌의 개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능력에 따른 차등 처벌’로 변질된다면, 법의 평등은 더 이상 실질적인 원칙이 아니다. 같은 죄에 대한 판단의 출발점이 다시 ‘행위’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ㅍㅍㅅㅅ / PPSS ) 진유미 기자 press@ppss.kr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