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최근 국내 금융 시장의 뜨거운 화두는 단연 인수합병(M&A를) 통한 덩치 키우기다. 신한금융지주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로부터 6933억원에 롯데손해보험을 품에 안으며 손보업계 재편을 예고했다. 우리금융 그룹 역시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1조5493억원에 패키지로 인수하며 초대형 생명보험사 출범의 닻을 올렸다.
비단 은행 계열 금융지주뿐만이 아니다. 한화생명은 글로벌 PEF 운용사 EQT파트너스로부터 애큐온캐피탈 지분 50.54%를 약 44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애큐온캐피탈이 애큐온저축은행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한화생명은 저축은행까지 품게 된다. 교보생명 역시 SBI저축은행 지분을 약 9000억원에 사들이며 종합금융그룹화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금융 영토를 넓히기 위한 무한 확장 전쟁이 시작된 형국이다.
이들이 수천억에서 조 단위의 거액을 쏟아부으며 몸집 불리기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전통적인 은행 업무나 단일 보험업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금융지주들은 예대차 마진에 따른 이자 장사에 치중해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기 변동과 정부의 대출·금리 규제에 따라 경영 실적이 출렁이는 구조다. 규제의 틀이 엄격한
은행의 한계를 넘어, 증권·보험·캐피탈·저축은행 등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촘촘히 구축하는 것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유일한 돌파구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KB금융지주가 2014년 우리파이낸셜(현 KB캐피탈)을 인수하고, 우리금융이 2020년 아주캐피탈·아주저축은행을 인수하며 비은행 캐시카우를 확보했던 성공 방정식이 이를 증명한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이렇게 종합금융그룹화가 가져올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하나의 모바일 앱 안에서 은행, 증권, 보험, 카드 업무를 모두 해결하는 '슈퍼 앱' 전략은 고객을 그룹의 울타리 안에 가두는 강력한 '록인(lock-in) 효과'를 발휘한다. 은행 고객에게 보험과 캐피탈, 증권 상품을 연계 판매하는 교차 영업이 활성화되면, 마케팅 비용은 줄고 수익성은 극대화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신한생명을 가진 신한금융이 롯데손보를 인수한 뒤 기존 디지털 손보사인 신한EZ손해보험과 통합해 시너지를 내려는 구상이나,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을 합병해 총자산 55조원 규모의 업계 5위권 '우리라이프'(가칭)를 출범시키려는 계획 모두 2금융권의 고수익 비즈니스를 통해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하지만 외형 확장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무리한 M&A는 그룹 전체를 흔드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당장 인수한 금융사들의 자본 건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입해야 할 추가 자금 확보가 숙제다. 신한금융은 롯데손보 구주 인수 대금 외에 자본 건전성 개선을 위해 약 3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등 총 5000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여파가 여전한 상황에서 고위험 대출 비중이 높은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혹은 지급여력비율(K-ICS)이 낮은 보험사들을 무분별하게 흡수해 그룹 전체의 동반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적지 않다.
더 큰 과제는 이른바 피인수 금융사와의 '화학적 결합'(PMI·Post Merger Integration)이다. 서로 다른 조직 문화와 노사 관계, 복잡한 전산 시스템을 하나로 융합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지난 8월 동양생명을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며 상장폐지 절차를 밟고 있는 우리금융이 ABL생명과의 노조 및 전산 통합이라는 과제에 직면한 것이 그 예다. 무늬만 종합금융그룹일 뿐, 내부적인 갈등과 비효율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금융사들의 몸집 늘리기는 리스크 관리 역량을 고도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정교한 통합 전략이 동반돼야 성공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가상자산 등 금융 시장과 산업에 거센 변화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는 지금 종합금융그룹화 바람이 한국 금융의 체질을 바꾸는 진정한 혁신이 될지, 아니면 덩치만 키운 위태로운 거인을 낳을지는 철저한 사후 관리와 내실 경영에 달려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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