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영역 파고든 인공지능
거부할 수 없는 대행서비스로
경험·지식 축적돼 속내 꿰뚫어
생각 근육 앗아가는 응급상황
나다운 목소리 낼 몇줄이라도
골든타임 속 치열하게 남겨야
나는 평생 말과 글로 먹고살아온 사람이다. 요즘은 ‘나만의 독서법 25가지’를 정리해 책을 쓰고 있다. 환경독서·협력독서·창조독서 등 나름 고심해서 이름을 붙인 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인공지능(AI)에 물었다. “이 개념들로 자료 좀 찾아줄 수 있어?”
설마 했는데, 웬걸. AI는 내가 이름을 붙인 취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30여년을 함께 산 아내조차 “그게 뭔 소리야?”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말이다. 마누라보다 내 속내를 더 잘 아는 녀석이라니, 소름 돋는 일이다.
10년 후에도 인간이 글을 쓸까? 내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다. 글쓰기가 기획·집필·퇴고의 과정이라면, 적어도 ‘집필’이라는 노동은 AI가 완전히 대신할 것이다. 인간은 그저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명령하고, 퇴고라는 이름으로 검수만 할 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글쓰기를 싫어하며 고통스러워하고, AI는 그런 사람보다 글을 더 잘 쓰기 때문이다. 이 달콤한 대행서비스를 거부할 장사가 있을까? 조만간 기획과 퇴고마저 AI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남은 ‘글쓰기 골든타임’은 길어봐야 10년이다. 이 시간 안에 인간의 글쓰기를 구해야 한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생각하는 근육이 전멸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계산기가 암산 능력을, 휴대전화의 저장 기능이 기억력을, 내비게이션이 길눈을 앗아갔듯, AI의 집필은 인류의 생각하는 능력을 퇴화시킬 것이다. 언어 감각, 성찰, 비판적 사고는 오직 글을 쓰는 과정에서만 단련된다. 나는 운 좋게 그 시대를 피해 가겠지만 생각하는 기능마저 AI에 저당 잡힐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둘째, AI에 ‘나’를 학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구상 중인 내 책의 제목을 입력하고 AI에 목차를 짜보라고 했더니, 단 2분 만에 내가 수개월 걸려 만든 것과 70% 정도 일치하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심지어 나보다 더 ‘강원국스러운’ 문장을 구사한다. 당연한 결과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AI는 내 경험과 지식을 모조리 수집해 기억하고, 내 문장의 패턴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파악하고 있어서다.
앞으로 인류는 ‘AI가 학습한 인간’과 ‘AI가 모르는 인간’으로 나뉠 것이다. 전자는 AI를 비서로 부리며 자기다운 글을 창조하겠지만, 후자는 AI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글쓰기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독한 양극화의 시작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 당장 더 치열하게 써야 한다. 내 글쓰기 역량을 지키는 동시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사람인지 AI에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훗날 AI가 나를 대신할 때 적어도 ‘가짜’가 아닌 ‘나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글쓰기 응급상황이다. 골든타임의 시계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단 몇줄이라도 당신의 흔적을 남겨라.
◆강원국은…
기업에서 17년간 세 회장의 글을 쓰고, 청와대에서 8년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다. ‘회장님의 글쓰기’ ‘대통령의 글쓰기’ ‘나는 말하듯이 쓴다’ ‘모두를 위한 강원국의 진짜 공부’ 등 15권을 저술했다. 지금도 강연과 기고,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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