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아파트 단지. 조태형 기자
정부의 세제 개편안 발표 이후 비거주 주택에 대한 혜택이 줄어들자 세를 주던 집을 ‘실거주’로 돌리려는 집주인들이 급증할 조짐이다. 여기에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4년간 거주해 온 세입자 1만여 가구의 만기까지 몰리면서 서울 임대차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일대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제 개편안이 윤곽을 드러낸 이후 집주인들의 실거주 전환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인근 A중개업소 관계자는 “과거엔 만기가 와도 집주인이 직접 입주하겠다는 비율이 10% 미만이었지만, 최근 9~10월 만기 물건은 절반 가까이가 실거주 전환으로 돌아섰다”며 “9000가구가 넘는 대단지임에도 국민평형(전용 84㎡) 전세 매물이 단 1건에 불과해 세입자들이 단지 안에서 옮겨갈 집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 아파트에서 계약갱신청구권(갱신권)을 사용한 ‘2+2년’ 전세 계약이 대거 만기에 다다르고, 세제 개편까지 겹치면서 전세 시장 불안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연말까지 약 1만 건의 계약이 4년 거주를 마치고 시세 기준으로 재계약하거나 이사를 결정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9일 기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4년 7~11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갱신 계약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총 1만 347건으로 집계됐다. 이들 계약이 이달부터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4년의 계약 기간을 마친다고 가정하면 임대차 수요가 1만 건 이상 발생한다. 2020년 7·31 임대차 2법 시행으로 도입된 갱신권은 세입자가 한 차례 기존 계약을 2년 연장해 최대 4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갱신권 사용으로 5% 이내 상승으로 묶여 있던 보증금은 계약 만료와 함께 시세를 반영해 일시에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발표된 세제 개편안도 변수다. 비거주 주택의 세제 혜택이 줄면서 집주인은 실거주를 택할 유인이 커졌다. 집주인 본인이나 직계존비속이 실제 거주하면 갱신권은 무력화 된다. ‘2+2년’ 만기 물량에 갱신권이 막힌 세입자까지 전월세 시장에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2년 전 계약된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을 합산해 이달부터 연말까지 새로 집을 구해야 할 가능성이 있는 임대차 물량을 추정하면 총 9만4296건에 달한다.
‘2+2년’ 만기 물량은 특히 세제 개편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 강남권에 집중돼 있다. 자치구별로 송파구가 1019건으로 가장 많았고 강남구가 935건으로 뒤를 이었다. 서초구도 587건으로 강남 3구에서만 총 2551건에 달했다. 이는 서울 전체의 24.7%에 해당한다.
현장에서는 이미 집주인들의 실거주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A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 실거주로 집을 비워줘야 하는 경우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 갱신권을 안 써서 2년도 거주 못한 사람들도 절반 정도는 된다”며 “젊은 부부와 자녀를 둔 세입자가 많은데 이사를 하게 되면 자녀 전학 문제까지 생겨 집주인의 실거주 통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 인근 B중개업소 관계자는 “아직 세제개편안이 본격적으로 적용되진 않았지만 ‘이제는 실거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담이 확실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만기 물량은 앞으로 더 늘어난다. 2027년에 만기가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갱신권을 이미 사용한 물량은 4만 9078건이다. 갱신권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집주인이 실거주를 택할 경우 잠재적으로 이사 가능성에 놓인 전체 만기 물량은 24만 5574건에 달한다. 이날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 매물은 3만 8157건으로 올해 초(4만 4424건)보다 14.1% 감소했다. 임대차 매물이 줄며 전셋값은 올라가는데 실거주 전환까지 겹쳐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남권에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가격이 낮은 성동·마포·양천·동작 등으로 이동할 경우 전월세 수요가 연쇄적으로 번져 타 지역의 전셋값까지 밀어 올리는 ‘풍선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어도 주택은 충분히 사용되고 있는데, 집주인 실거주에만 혜택을 주면 임대인이 직접 들어가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며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전세 매물이 줄고 결국 세입자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똑같이 집 비우는데…거주기간 稅혜택 차별 논란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불가피하게 집을 비워야 하는 이주민에 대한 예외 규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공사기간 일부를 거주기간으로 인정하는 보완책이 마련됐지만 공공주택사업과 리모델링 등은 대상에서 빠져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경우 공사기간의 50%를 거주기간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거주가 중단되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반면 공공주택사업으로 기존 주택이 협의취득 또는 수용되고 주민들이 이주자택지 신축주택이나 이주자주택으로 이전하는 경우에는 이주 및 공사기간을 거주기간으로 인정하는 별도 규정이 담기지 않았다.
주거 이전의 강제성이 더 큰 공익사업 이주 주민에게 보완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리풀1지구 새정이마을 주민대책위원회는 “공익사업을 위해 불가피하게 주거를 이전하는데 종전주택 거주기간과 이주·공사 기간을 인정하지 않으면 세제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사업에 협조할 경우 실거주에 따른 혜택을 잃게 된다고 판단하면 협의취득과 이주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대책위는 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관련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주와 공사가 필요한 리모델링 사업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한 리모델링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리모델링 역시 노후 주택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으로 장기간 공사가 진행되고 이주도 필요하다”며 “정비사업과 같은 조건으로 실거주 기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주 관련 예외 규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다양한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재정경제부가 입법예고한 종합부동산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이날 오후 3시 기준 4250여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장기거주 소득공제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2140여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전문가들도 보완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정책 신뢰성을 유지하고 주택 공급을 원활히 추진하려면 공공주택사업에 최소한 민간 정비사업과 동일한 수준의 혜택은 필요해 보인다”며 “종전 주택 거주 기간과 불가피한 이주 기간 등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점옥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부단장(세무사)은 “향후 심의를 거치고 시행령·시행규칙 마련 등의 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보완될 가능성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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