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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상 시나리오] 잊고 있던 문명 '석유'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생기나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주력 산업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수출이 급감하면서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실업자는 빠르게 늘어났고, 경제 전반에 불안이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가상 시나리오] 잊고 있던 문명 '석유'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생기나

미·이란 전쟁 이후, 보이지 않던 기반이 무너진 사회의 경고

사진은 2020년 4월 8일 미국 텍사스 칸스카운티 칸스시티 인근에서 시추를 멈춘 펌프 잭 뒤로 해가 지고 있는 모습. 2026.03.10.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으로 중동 에너지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한국은 사상 초유의 ‘석유 공백’ 상황에 직면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며 원유와 LNG 수입이 사실상 중단됐고, 정부는 지난 약 200일분의 비축유를 풀어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석유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산업과 생활 전반을 지탱하는 기반인 만큼, 시간의 문제일 뿐 위기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 전력과 산업이 멈추며 ‘정상 사회’가 붕괴된다

수입 중단 직후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전력 시스템이다. LNG 발전 비중이 높은 한국은 전력 생산이 급감했고, 정부는 전국적으로 순환 정전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하루 몇 시간씩 이어지는 정전은 이제 일상이 됐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공공시설은 비상 전력에 의존하며, 냉난방은 제한된다. 시민들은 “도시는 그대로인데 기능만 사라진 느낌”이라고 말한다.

산업 현장은 더 빠르게 무너졌다. 석유화학 원료가 끊기자 플라스틱, 합성섬유 생산이 중단됐고, 의류 공장과 포장재 업체들은 줄줄이 가동을 멈췄다. 택배 상자와 비닐, 완충재가 부족해지면서 물류망은 급격히 위축됐다. 물건이 있어도 운반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며 대형마트 진열대는 눈에 띄게 비어가기 시작했다.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주력 산업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수출이 급감하면서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실업자는 빠르게 늘어났고, 경제 전반에 불안이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공급이 끊기면 경제는 연쇄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기사와 연관 없음.)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슈퍼마켓에서 14일(현지시간) 화장지를 들고 있는 쇼핑객 1명이 텅 빈 식품 진열대 건너편의 청소용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 식탁·유통·일상까지 흔들리는 ‘생활 붕괴’

시간이 흐르면서 위기는 시민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포장재 부족으로 택배 서비스가 크게 줄었고, 신선식품 유통도 원활하지 않다. 일부 지역에서는 생필품 사재기 조짐이 나타났고, 물건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농업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비료 생산이 중단되면서 농가에서는 파종을 포기하거나 재배 면적을 줄이고 있다. 몇 달이 지나자 채소와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일부 품목은 시장에서 아예 사라졌다. 시민들은 제한된 식재료로 식단을 꾸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의류 공급도 급격히 줄었다. 합성섬유 원료가 끊기면서 공장 가동이 멈췄고, 매장에는 더 이상 신상품이 들어오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류조차 재고에 의존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옷이 부족해질 줄은 몰랐다”는 시민들의 반응은 석유 의존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언론과 출판도 위축됐다. 신문 인쇄에 필요한 잉크와 용지 운송이 어려워지면서 발행 횟수가 줄었고, 종이책 출간도 급감했다. 전력 불안정으로 디지털 정보 접근마저 영향을 받으면서 정보 유통 속도 역시 느려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서산 비축기지 전경. (출처: 연합뉴스)

◆ 6개월 ‘버팀’, 1년 ‘한계’… 결국 생존의 문제로

비축유로 버티는 6개월 시점, 사회는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미 ‘정상’은 아니다. 정부는 에너지 사용 제한과 배급 정책을 시행하고, 산업은 축소 운영으로 전환됐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버티고 있지만, 생활의 질은 급격히 떨어졌다.

1년이 지나 비축분이 사실상 고갈되면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산업 생산은 대규모로 멈추고, 실업은 급증한다. 물류망은 거의 붕괴되고, 지역 간 물자 격차가 커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식료품 배급제가 시행되며, 교통과 이동도 크게 제한된다.

농업 생산 감소가 누적되면서 식량 위기가 본격화되고, 의료·유통 등 필수 시스템도 압박을 받는다. 사회는 더 이상 ‘경제 위기’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단계, 즉 생존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전기, 식량, 의류, 물류를 연결하는 ‘문명의 기반’이었다는 점을 인류가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그 기반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은 연쇄적으로 붕괴된다.

200일분의 비축유는 시간을 벌어줄 뿐,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석유가 사라진 세상은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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