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미국의 가상자산 시장구조법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이 상원에서 부결되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하락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부결이 국내 제도 정비를 장기간 지연시킬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정책당국의 신중론이 강화될 가능성은 있다고 진단했다.
16일 글로벌 가상자산 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18분 기준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 대비 1.93% 하락한 7만5759.2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시간 주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인 이더리움과 엑스알피(리플), 솔라나는 각각 24시간 전 대비 3.41%, 7.83%, 3.66% 떨어진 2397.10달러, 1.29달러, 97.06달러에 거래 중이다.
특히 비트코인 가격은 오전 3시50분 24시간 전 대비 5% 이상 급락한 7만4900달러선까지 후퇴하기도 했다. 시가총액 2위 가상자산인 이더리움도 8% 넘게 하락하면서 비트코인과 함께 지난 6월 이후 가장 큰 장중 하락폭을 기록했다. 다른 알트코인들의 최대 낙폭은 이를 크게 상회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갑작스러운 급락에 최근 24시간 동안 2억1400만달러 이상의 롱 포지션이 청산됐다.
이 같은 가상자산 전반의 하락세는 그동안 시장 반등의 계기로 기대됐던 클래리티법안 처리가 불발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클래리티법안은 미국 내 가상자산 규제 관할을 명확히 하기 위한 법안이다. 가상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규제 불확실성이 줄어 그동안 진입을 주저했던 기관 자금의 유입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아울러 과거 관련 입법이 가상자산 시장 호황으로 이어진 경험도 투자자들의 기대를 키웠다. 그만큼 이번 처리 불발에 따른 실망감이 하락세를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3분기 미국 대통령의 친(親)가상자산 정책 기조 속에 디지털자산 3법(지니어스법·클래리티법안·반CBDC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규제 정비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시장 신뢰도도 높아졌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코인마켓캡 집계 기준)은 사상 최고가인 12만6198달러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클래리티법 처리가 무산되면서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상승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5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이 클래리티법을 토의에 부치기 위한 절차 표결을 진행했으나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법안 진행에 필요한 찬성표를 얻지 못해 입법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53석을 보유한 다수당이지만 법안 진행을 위해서는 60표 이상이 필요하다. 이에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으나, 민주당 의원 전원의 반대표와 공화당 내 이탈표가 발생하면서 무산됐다.
클래리티법안 입법의 발목을 잡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으로 인한 막대한 이익 창출이 이해충돌 문제를 일으킨 영향이다. 이에 공화당은 고위공직자의 가상자산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대폭 강화한 수정안을 내놨지만, 민주당의 거센 반대에 끝내 부결됐다. 마크 워너 민주당 의원은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이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법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올해 클래리티법안의 연내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의회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은 기간이 상당히 촉박한 점에서 재협상과 추가 표결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유진 LS증권 연구원은 “11월 중간선거 일정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며 “또 중간선거 이후 환경 변화와 다음 선거 사이클 등으로 인해 향후 수년간 클래리티법안 통과 가시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클래리티법안 불발, 국내 영향은
전문가들은 클래리티법안의 진행 지연이 국내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본다. 선 연구원은 “절차 지연은 국내 정책당국의 신중론을 더 강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은행 역할, 보상 허용 범위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가운데 법 제정 이전까지 그림자 규제로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국내 법제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시장 구조 법제화가 늦어질 경우, 이를 참고 모델로 삼고 있는 국내 규제 논의 역시 추가로 지연될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2단계 법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은행 참여 방식, 거래소 및 수탁 사업자 규제 등 상당 부분이 하나의 포괄적인 법안으로 다뤄지고 있다”며 “따라서 국내 정책당국이 미국의 최종 구조를 확인한 뒤 제도를 확정하려고 한다면 국내 일정도 함께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특히 미국에서도 은행 예금 유출과 스테이블코인 보상 문제가 클래리티 법안의 쟁점으로 남아 있는 만큼, 국내 논의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국내 기업들은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제도 이전에 사업화에 착수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어 그동안 경쟁력이 낮아질 우려가 존재한다. 미국의 최종 제도화를 기다리는 동안 국내 속도가 다시 한번 늦어지는지 여부가 중요한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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