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백모씨와 리모씨가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내 포로수용소에서 김영미PD와 접견하며 탈북민단체들이 보낸 북한음식 ‘두부밥’을 먹고 있다. 침대(왼쪽 상단)에 이들이 직접 그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겨레얼통일연대 제공. 연합뉴스]
- 젤렌스키, UN총회서 전격 폭로하며 국제사회 압박
- 우크라 “북한군 포로 한국행. 한국과 직접 대화”
- 우리 정부는 “확인 불가”... 憲法상 자국민인데도 ‘저자세 외교’ 비판 나와
- 이재명 대통령 “北포로 송환, 우크라가 비공개 합의 어기고 공개”
- 정부 비공개 지침 비판엔 “생색 위해 생명·안보 해치면 살인자·매국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의 대한민국 송환 사실을 전격 공개하면서 국제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헌법상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자 북·러 군사 밀착의 결정적 ‘살아있는 증거’를 확보하고도, 북한과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시종일관 비밀주의로 일관한 우리 정부의 ‘로우키(low-key·절제 기조)’ 대응을 두고 외교·안보가 안팎에서 비판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 단상에 올라 “김정은이 화폐처럼 총알받이로 보낸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으로 안전하게 인도됐다”고 전격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역시 연합뉴스 질의에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은 한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진행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민족”이라며 “대한민국은 이들을 자국민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두 사람의 신병 인도를 러시아가 반복적으로 요청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러시아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전 세계 정상들 앞에서 북·러 혈맹의 실체를 폭로하고, 추가적인 무기 지원과 대러 압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보다 더 확실한 카드가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전선에 투입된 다른 북한군 군인들의 귀순을 자극하려는 고도의 심리전 카드이기도 하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가 보인 태도는 주권 국가로서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는 외국 정상의 입을 통해 자국민의 입국 사실이 전 세계에 중계된 이후에야 언론의 확인 요청에 “사실상 시인”하는 민망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면서도 대외 공식 입장으로는 여전히 “신변 안전 우려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식의 방어적 태도로 일관했다.
정부와 외교가는 북한의 국지적 도발 가능성과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 대북 이전 등 ‘대북 리스크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실리적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포로와 북한 내 남은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서도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다는 정황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대북·대러 안보 리스크를 통제한다는 명분 아래, 지나치게 굴종적인 저자세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따라 북한 주민은 당연히 우리 국민이다. 사선을 넘어 귀순 의사를 밝힌 자국민을 당당하게 품지 못하고, 북·러의 반발이 두려워 숨기듯 처리하는 것이 과연 정부가 표방해 온 ‘글로벌 중추 국가’의 외교 기조에 부합하느냐는 비판이다.
더욱이 이번 사안은 국제 규범을 무참히 짓밟은 북한의 파병 만행을 단죄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를 주도할 수 있는 결정적 모멘텀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북·러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목소리를 낮추는 바람에 외교적 주도권을 우크라이나에 고스란히 넘겨주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북한군 포로 2명은 작년 1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존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생포 사실을 공개하며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헌법상 한국 국민인 북한군 포로들이 언론 인터뷰와 탈북민 단체 등을 통해 귀순 의사를 밝힌 만큼 이들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편 미국과 멕시코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에 보냈다고 공개한 것에 대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많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공개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북한 포로 국내 송환 문제는 외교, 안보, 한반도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의제”라며 “공개로 생길 여러 문제를 생각할 때 비공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했고 그렇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보수 야권에서 정부가 북한 포로 송환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관련, “타당하고 정당한 비공개 조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되든, 누군가 죽어 나가든, 국익이 손상되든 개의치 않고 성과를 생색내느라 포로 송환 사실을 징치고 춤추며 온 세상에 광고했을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비공개 노력이 이해가 안 될 뿐 아니라 심지어 ‘뭔가 문제 될 게 있나’ 싶을 것”이라며 “이처럼 잔인하고 무책임할 수는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권순욱 기자(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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