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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朝鮮칼럼] 이주 노동자, 한국 경제와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대한민국 조선업을 붕괴 수준으로 몰아간 2010년대 불황기에 다수의 숙련 인력은 평택 삼성반도체 건설 현장 등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조선업 호황기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조선소 노동이 더 힘들어서다. 청년층은...

[朝鮮칼럼] 이주 노동자, 한국 경제와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파독 광부·간호사와

중동 건설 노동자처럼

국내 이주 노동자 110만

갈라치기 하지 마라

농어촌·건설·조선업 등

없어선 안될 소중한 자산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 지부는 9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역형 비자 제도 폐지와 청년 정규직 일자리 확대를 촉구했다. /뉴스1

이주 노동자가 없으면 대한민국 경제는 심대한 위기를 맞는다. 농어촌 생산 현장은 마비되고, 수많은 중소기업이 문 닫으며, 조선소는 치명타를 입는다. 고용노동부 기준 110만명의 이주 노동자는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다.

대한민국은 한때 이주 노동자 착취·탄압의 오명을 썼다. 임금을 떼먹고 인권을 유린하는 사업주가 많았고 노동 행정은 허술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나라 안팎에서 비판받았다. 이주 노동자 송출국과 외교 마찰도 빚었다. 이주 노동자 처우는 개선됐다. 물론 아직도 임금 체불, 산업 재해, 인권 유린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여러 현장에서 접한 이주 노동자의 상당수는 대한민국의 노동에 만족한다. 최저임금으로도 자기 나라 임금의 몇 배가 넘는다. 한 명의 노동자가 아쉬운 많은 중소기업은 월 300만원대 임금을 지급한다. 조선소에서는 숙련된 이주 노동자에게 연봉 5000만원대를 준다. 농어촌을 비롯한 많은 생산 현장에서 이주 노동자는 자연스러운 이웃이다. 이주 노동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타국 국적을 숙명으로 안고 있는 이주 노동은 언제든지 갈라치기 당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내국인 노동자 일자리가 줄었다는 주장이 그중 하나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을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저숙련 업무에서 일할 적정한 임금의 내국인 인력이 부족해서다. 고숙련 업무는 내국인 노동자가 감당한다.

‘울산형 광역 비자’를 둘러싸고 해당 지역 일각에서 제기한 주장도 이주 노동을 갈라치기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울산형 광역 비자는 울산시가 해외 현지에서 인력을 교육·선발하고 기업에서 고용하는 방식이다. 조선업 인력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내국인 유권자 표가 필요한 지방선거 때문인지, 지난 3월 울산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 이주 노동자 때문에 조선소 저임금이 고착되고 청년 고용 기회가 박탈된다고 주장했다. 광역 비자 폐지를 요구해 논란이 커졌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데, 현장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조선소는 이주 노동을 없애면 내국인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조선업은 10~20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산업이다. 대한민국 조선업을 붕괴 수준으로 몰아간 2010년대 불황기에 다수의 숙련 인력은 평택 삼성반도체 건설 현장 등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조선업 호황기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조선소 노동이 더 힘들어서다. 청년층은 조선업을 기피한다. 취업해도 대개 반년을 버티지 못한다. 호황기에도 그런 형편이다.

대한민국 조선업은 중국과의 경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경쟁에서 밀리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인건비 격차다. 그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소 원청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이 경직된 법 체계에서 불황기를 대비해야 하는 조선소는 결국 이주 노동에 기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데는 196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 1970년대 중동 건설 노동자 역할도 컸다. 그들이 산업화의 역군이었다. 먼 타국에 나가 힘들게 노동하며 보내온 달러를 보태서 대한민국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랬던 나라라면 이주 노동자에게 관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불법 체류를 양산한다고 할 정도로 이주 노동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더 엄격하면 안 된다.

나의 아버지도 중동의 이주 노동자였다. 1년도 채 버티기 어렵다는 그 뜨거운 사막의 건설 현장에서 무려 8년이나 버텼다. 그래서 중병을 얻었고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은 54세에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생각할 때마다 남몰래 먼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대한민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은 가족까지 데려온 경우가 많다. 아내·자식과 함께 매일 밥을 먹어 행복하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공통의 소망이 있다. 대한민국 물가가 비싸서 혼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어려우니까 아내도 취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주 노동자 가족 동반 F-3 비자는 농어촌과 돌봄 등으로 취업이 한정되어 있다. 그것을 소규모 음식점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만 넓혀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그들의 꿈을 이루어주기를 기대한다.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대한민국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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