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이들의 성장 뒤에는 성공적인 부품 제조를 지원하는 협력사의 노력도 있었다. 그 협력사 가운데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은 HBM(고대역폭메모리) 제조의 핵심 장비인 TC 본더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TC 본더는 HBM 제조의 핵심인 만큼 이를 제조하는 회사는 소위 '슈퍼 乙(을)'로 불린다. 그런데 지금, 이들 '슈퍼 乙'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지난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3민사부는 한화세미텍이 한미반도체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변론기일 직후인 13일 한미반도체는 입장문을 내고 "후발주자의 적반하장식 공세"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특허소송은 전면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에 따라 패소한 쪽은 손해배상금 지급과 제품 판매 금지, 소송 비용 부담 등을 떠안게 돼 기업 경영에 치명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 고의적인 침해로 판단된다면 형사처벌도 면하기 어렵다.
한미반도체의 TC본더4(왼쪽)와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 (사진=각 사)
◇ 소송의 시작은 한미반도체···후발주자 향한 견제 의도? =
특허 분쟁의 시작은 한미반도체였다. 한미반도체는 2016년 TC 본더 개발을 완료하고 2017년 고객사에 공급했다. 현재 글로벌 TC 본더 시장 점유율에서 1위이며 HBM 장비 관련 특허를 출원예정을 포함해 163건을 보유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2024년 12월 한화세미텍이 자사의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한미반도체2모듈·4본딩 헤드 구조 등 듀얼 TC 본더에 탑재되는 핵심 기술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한미반도체는 '2모듈·4본딩 헤드' 기술에 대해 2017년 독자 개발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세미텍은 한미반도체의 주장에 대해 "이미 널리 알려진 기술"이라고 반박하며 특허 무효 심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한화세미텍은 "30년 이상의 축적된 노하우를 기반으로 TC본더를 자체 개발했고, 내부적으로 선행기술 조사를 거쳤다"라고 설명했다.
한화세미텍 역시 2017년 반도체 후공정 시장에 진출한 후 2020년부터 TC 본더 개발에 돌입해 2023년 프로토 타입을 내놨다. 이후 기존 한화정밀기계에서 한화세미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2025년 3월 SK하이닉스에 10여대의 TC 본더를 공급하며 HBM 공급망에 첫 전입했다.
한화세미텍은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한 후 2025년 10월 한미반도체를 상대로 특허 침해 맞소송을 제기했다. 구체적인 소송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TC 본더에 탑재되는 부품 일부에 대해 한미반도체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의 주장에 대해 "해당 특허에 대한 비침해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에, 소송을 신속하게 종결시킬 수 있는 특허무효심판 등의 우회적 전략 대신 본안 소송 종결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이 주장하는 특허에 대해 선사용권 자료와 무효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다.
HBM4 제품 모습. (사진=삼성전자)
◇ 특허 분쟁 이전 인재 유출 갈등···"관련 있을까?" =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은 특허 분쟁 이전에 인재 영입에 따른 기밀유출 분쟁도 있었다. 2021년 한미반도체에서 TC 본더와 플립칩 본더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원이 한화정밀기계(現 한화세미텍)로 이직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한미반도체는 핵심 기술 정보가 경쟁사로 유출됐다고 주장하며 부정경쟁행위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근거는 △영업비밀 보호 의무 위반을 제재하고 △전직 금지 및 기술 사용 금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한미반도체의 손을 들어줬다. 한미반도체가 보유한 영업비밀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이직한 직원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사용을 제한한 것이다. 한화세미텍은 이에 대해 개인의 이직일 뿐이고 해당 직원은 핵심 기술을 보유한 자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법원의 조치에 대해서는 기술 유출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사용을 제한하는 예방적 조치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직원 이직에 따른 기밀 유출과 특허 분쟁은 법적으로 별개의 사건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두 사건을 연관지어 보는 시선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핵심 인력이 이직했고 그와 관련된 기술이 반영된 장비가 같은 해에 나와 특허가 침해됐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시간 흐름"이라며 "한미반도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한미반도체가 부정경쟁행위 금지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것은 2024년 5월이며 한화세미텍을 향해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같은 해 12월이다. 이 때문에 시간 순서상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한화세미텍은 두 사안이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한미반도체에서 한화정밀기계로 이직한 직원은 1심 패소 이후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직원의 이직 이력과 판례는 특허 소송의 직접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한화세미텍의 기술 개발 과정에서 독자성을 입증하는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동현 법무법인 에스제이파트너스 변호사는 "판사가 기술의 독자성 유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직접 증거는 되지 못해도 정황 증거 정도는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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