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에 있는 SMIC 본사. /SMIC
중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칩과 여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까지 반도체 밸류 체인의 모든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각종 반도체 소재·장비 수출 제한 조치는 중국 반도체와 첨단 산업 발전을 가로막은 핵심 병목이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주도해 온 칩 자립 전략이 중국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서 성과를 냈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AI 열풍과 글로벌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올라탄 결과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올해도 중국 반도체 기업 성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여전히 최첨단 공정에서 선두 업체보다 기술 면에서 뒤처지지만 성숙 공정(레거시 반도체)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전체 반도체 시장을 차근차근 잠식해 오고 있다”고 했다.
◇최대 실적 휩쓴 中 반도체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2025년 연간 매출 93억2700만달러(약 14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6% 증가한 수치다. 순이익도 6억8500만달러로 39% 늘었다. 대만 TSMC, 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3위 파운드리 업체로서 입지를 공고히 한 것이다. 웨이퍼 출하량은 전년보다 21% 증가하며, 월간 웨이퍼 생산 능력도 100만장을 넘겼다. 중국 2위, 세계 6위 파운드리 업체인 화홍반도체 역시 지난해 4분기 매출 6억6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설계 업체들이 해외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기지 못하면서, 중국 내 반도체 생산 수요를 모두 흡수했고, 중국산 AI 칩 생산도 대거 늘어났다”며 “중국 파운드리는 2~3나노 공정에서는 선두 업체에 뒤처졌지만, 성숙 공정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반도체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 분야 성장세도 가팔랐다. 블룸버그는 중국 1위, 세계 4위 D램 기업인 CXMT(창신메모리)가 지난해 8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전년(약 33억달러)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로 사상 첫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 시장이 심각한 공급 부족에 시달리며 가격이 폭등한 덕분이다. 공격적으로 생산 능력(캐파)을 늘린 영향도 컸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CXMT의 월간 D램 생산 능력은 2024년 초 웨이퍼 기준 10만장에서 작년 말 29만장으로 늘어났다. AI 칩 설계 업체인 캠브리콘 역시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4000만달러 매출을 기록했고,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중국 반도체 호실적의 가장 주된 이유는 AI 수요 증가에 따른 반도체 호황이지만, 미국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가속화한 자립화 전략이 역설적으로 구조적인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 AMD 등 미국 기업의 첨단 AI 칩 접근이 차단되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는 중국 정부의 압박을 받으며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자국 공급망으로 눈을 돌렸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AI 칩 자립률이 2027년 8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제재가 중국 AI 수요를 ‘내수 생태계’로 강제로 재편시키며, 반도체 전(全) 생태계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모양새다.
중국 CXMT가 개발한 저전력 D램(LPDDR5X). /CXMT
◇상장으로 자금도 싹쓸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잇달아 기업공개(IPO)에 나서며 시장 자금을 수혈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 AI 칩 업체인 무어스레드, 메타X, 비렌 등이 상장한 데 이어 메모리 업체인 CXMT는 상반기, YMTC는 하반기 상장에 나선다. IPO로 확보한 자금을 설비와 연구·개발(R&D) 투자에 쏟아 선두 주자를 추격한다는 전략이다. CXMT는 증권 신고서를 통해 IPO로 42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해 생산 라인을 확충하고 차세대 D램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런 자금력 확보가 국내 반도체 기업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1~2세대 뒤처진 레거시(Legacy) 공정에 머물러 있지만, 확보한 자본을 첨단 공정 R&D와 설비 투자에 쏟아부어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힐 것이라는 우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선두 주자와 기술 격차를 단기간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는 자금력을 확보해 추격 속도를 높이는 것”이라며 “중국 기업들이 저비용의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며 성장세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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