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단 왕자의 복수’ 주연 푸시루
2026 세계음악극축제 초청작
‘사느냐 죽느냐’ 명장면 그대로
“중국 전통의 경극과 서양의 고전을 굳이 억지로 융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걸 그대로 두고 그 두 곳이 충돌하는 지점을 관객이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방식이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상하이경극원 배우 푸시루(傅希如·사진 왼쪽)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경극으로 옮긴 ‘지단 왕자의 복수(王子復仇記)’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주인공 지단 왕자, 즉 햄릿을 맡은 이 작품은 국립극장 ‘2026 창극 중심 세계음악극축제’ 초청작으로 12·13일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관객과도 처음 만나는 무대였다.
푸시루는 중국에서 이름난 경극 스타다. 준수한 외모에 ‘푸솨이(傅帥·잘생긴 푸)’라는 별명이 있고 펑파이신문은 그를 ‘가장 잘생긴 노생(老生·경극에서 수염을 단 비교적 진중하고 지위 높은 남성의 역할)’이라 불렀다. 하지만 “얼굴로 먹고살 수 있는데도 굳이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게 팬들의 평이다. 문(文)과 무(武)를 겸하는 문무노생인 그는 2019년 중국 공연예술계 최고 영예인 매화상(梅花奬)을 받았다.
‘지단 왕자의 복수’는 2005년 상하이경극원이 창작한 신편(新編) 경극이다. ‘햄릿’의 무대를 고대 중국의 가상국가 ‘적성국(赤誠國)’으로 옮겨 햄릿은 ‘지단’, 클로디어스는 ‘옹숙’, 거트루드는 ‘강융’, 오필리어는 ‘은리’가 됐다. ‘사느냐 죽느냐’의 독백 등 명장면은 그대로 살렸고, 병풍 4개와 의자 5개만으로 배우 12명이 30여 배역을 소화한다. 연출 스위쿤(石玉昆)은 이 작품을 “혼(魂)은 셰익스피어요, 형(形)은 경극”이라 말한다. 2005년 초연 이후 20여 년간 이 작품은 15개국 넘게 순회했다.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천사선구상’을, 푸시루는 이 작품으로 2006년 상하이 백옥란연극상 신인주역상을 받았다.
스물넷이던 2005년, 그는 전례 없는 인물을 처음부터 빚어내야 했다. “‘1000명의 관객에게는 1000명의 햄릿이 있다’는 말처럼, 같은 배역이라도 배우마다 다릅니다.” 가장 공들인 대목은 지단의 광기였다. “진짜와 가짜 광기를 여러 층으로 나눠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도 미친 줄 모르고, 어떤 순간에는 진실을 감추려 일부러 얼빠진 척 연기했습니다.”
‘21년 차 지단’의 기량은 13일 무대에서 고스란히 확인됐다. 관객은 지단의 독무대와 대결 장면에서 극의 긴장이 차오른 뒤 박수를 보냈다. 경극의 양식은 고스란히 살아 있었지만, 이야기와 대사를 익숙한 ‘햄릿’에서 가져온 덕에 경극을 처음 접하는 관객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등장인물이 극 중 인물이면서도 중간중간 인물에서 빠져나와 줄거리를 해설하는 방식으로 극 흐름의 이해를 도왔다.
이번 방한에서 한국 창극을 처음 직접 봤다는 그는 “창극과 경극은 노래를 중심으로 악단 반주와 완결된 이야기를 갖췄다는 점에서 닮았다”면서 “정통 햄릿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본을 쓴 펑강(馮鋼) 역시 “한·중은 문화적으로 공통분모가 많다”며 “노래, 연기, 무예를 아우르는 경극의 표현 방식은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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