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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TSMC에 걸린 AI 패권… 스탠퍼드가 짚은 '병목', 한국이 쥐고 있다

동시에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공급을 주도하고 있다. 결국 AI 패권 구조는 이미 세 층으로 나뉘어 있다. 설계와 서비스는 미국, 제조는 대만...

TSMC에 걸린 AI 패권… 스탠퍼드가 짚은 '병목', 한국이 쥐고 있다

-美 데이터센터 5427개·전력 29.6GW… 칩은 대만, 메모리는 한국, 전력·물류 바다로 확장

-SK하닉·삼성전자 ‘메모리’ 넘어 인프라 주권으로… 조선·방산, AI 실전 배치 산업으로 재편

올 초 CES에서 공개된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사진제공=현대자동차

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발간한 ‘AI Index Report 2026’은 외형상 기술 보고서지만, 실질적으로는 산업 질서 재편을 읽어내는 보고서에 가깝다. 인공지능 성능의 진전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성능이 어떤 인프라와 공급망 위에서 구현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 결과 도달한 결론은 분명하다. AI 경쟁력은 모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칩과 전력, 데이터센터, 그리고 그것을 실제 산업과 전장에 연결하는 능력에서 갈린다.

23일 확인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미국은 5427개의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AI 데이터센터 전력 용량은 29.6GW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이 거대한 인프라를 지탱하는 핵심 칩은 사실상 대만 TSMC 한 곳에 집중돼 있다. 세계 최강의 AI 생태계조차 단일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대목이다. 동시에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공급을 주도하고 있다. 결국 AI 패권 구조는 이미 세 층으로 나뉘어 있다. 설계와 서비스는 미국, 제조는 대만, 메모리 병목은 한국이 쥐고 있는 구도다.

이 구조에서 한국 반도체의 위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더 이상 단순한 가격 경쟁형 메모리 업체가 아니다. AI 서버 한 대의 실제 성능을 좌우하는 ‘병목’을 쥔 기업들이다. 특히 HBM은 연산 능력보다 더 직접적으로 처리 속도와 효율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전략 역시 생산량 확대에 머물 수 없다. HBM을 중심으로 첨단 패키징, 전력 효율, 서버 단위의 통합 최적화까지 이어지는 구조로 확장돼야 한다. 스탠퍼드 보고서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AI 시대의 승부는 ‘더 좋은 칩’이 아니라, 끊김 없이 작동하는 인프라 스택을 누가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연산 능력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컴퓨트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대형 모델일수록 막대한 계산 자원이 투입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자료=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AI연구소(HAI)]

보고서는 또 하나의 분명한 신호를 제시했다. 2025년 글로벌 AI 관련 민간 투자는 인프라·모델·연구·거버넌스 분야에 총 1432억2000만 달러(약 212조7000억원)가 집중됐고, △방산 315억8000만 달러(약 46조9000억원) △반도체 146억3000만 달러(약 21조7000억원) △로보틱스 105억8000만 달러(약 15조7000억원) 순으로 자금이 유입됐다. 자본의 흐름은 이미 AI를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니라 국가 인프라와 안보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조선과 방산이 하나의 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조선업에 대한 함의도 분명하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서버가 아니라 전력과 냉각,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물류 체계다. 스탠퍼드 보고서가 전력과 물 사용 증가를 동시에 짚은 이유다. AI는 더 이상 육지에 머무는 산업이 아니라, 에너지와 자원을 따라 다시 바다로 확장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의 기회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LNG 운반선과 해양플랜트, 특수선, 전력 인프라 운송까지 AI 인프라 확대의 전 과정이 해상과 연결된다. 조선업은 이제 단순한 선박 제조를 넘어, AI 시대의 에너지·물류 인프라를 떠받치는 산업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대목은 따로 있다. 스탠퍼드대 보고서는 로봇이 가정 같은 비정형 환경에서는 작업 성공률이 약 12%에 그치는 반면, 통제된 환경에서는 89.4%까지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이 차이는 곧 산업 전략을 가른다. 피지컬 AI는 혼란스러운 일상 공간이 아니라, 공정이 표준화되고 데이터가 축적된 산업 현장에서 먼저 수익을 만든다. 실제 흐름도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앞세워 AI 로보틱스 전략을 제시했고, 두산로보틱스는 산업용 AI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HBM [사진=최지훈 기자]

HD현대로보틱스는 조선·자동차·배터리 공정에 산업용 로봇 적용을 확대하고 있고, LIG D&A 역시 무인·자율체계와 MUM-T 중심으로 전장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선소는 이러한 흐름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을 수 있는 대표적인 통제 환경이다. 따라서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의 전략은 자율운항 홍보에 머물 것이 아니라, 스마트야드 구축과 공정 자동화, 설계·생산·유지보수 데이터 통합으로 이어져야 한다. AI의 첫 수익은 바다 위가 아니라, 도크와 생산라인 안에서 만들어진다.

방산 역시 같은 구조로 움직인다. 스탠퍼드대 보고서는 AI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수준의 문제를 풀면서도, 단순한 아날로그 시계 판독 정확도는 50.1%에 그친다고 짚었다. 실제 컴퓨터 작업 수행 성공률도 약 66% 수준에 머문다. 성능이 들쭉날쭉하다는 뜻이다. 전장에서는 이 불확실성이 곧 위험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현대로템, LIG D&A의 전략은 ‘완전 자율 무기’가 아니라 인간 통제 기반의 체계형 AI에 맞춰져야 한다. 감시정찰과 지휘통제, 표적 식별, 유·무인 협업처럼 실패를 관리할 수 있는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AI 전장의 승부는 개별 무기 성능이 아니라, 센서·지휘통제·타격을 하나로 엮는 체계 구축에서 갈린다.

한국의 위치도 보고서는 분명히 짚고 있다. 2024년 기준 인구 대비 AI 특허 1위는 한국(14.3%)이다. 동시에 한국은 2016년 이후 17건의 AI 관련 법률을 통과시킨 나라다. 다만 조직 차원의 AI 활용 역량과 책임 있는 AI 체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의 제도와 산업 현장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해법은 규제를 더하는 데 있지 않다. 현장 실증과 산업 적용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있다. 반도체 공장과 조선소, 방산 생산라인, 군 시범사업을 하나의 테스트베드로 묶어, 기술이 바로 성능과 비용으로 검증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AI 모델 공개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완전 공개는 줄고, API 기반 제한적 접근과 비공개 모델이 늘어나며 AI는 점점 기업 통제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자료=HAI]

스탠퍼드 보고서가 한국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은 미국처럼 모델을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도 아니고, 중국처럼 총량으로 밀어붙이는 나라도 아니다. 대신 AI 시스템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병목 가까이에 서 있는 나라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메모리 병목을 쥐고 있고,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은 전력과 물류를 움직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현대로템·LIG D&A는 이를 전장 체계로 연결한다. 이 세 축은 따로 떨어져 있는 산업이 아니다. 하나의 구조로 맞물려 돌아간다.

보고서를 총괄한 스탠퍼드대 HAI 공동의장 욜란다 길(Yolanda Gil)과 레이먼드 페로(Raymond Perrault)는 “이 기술은 단순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시스템보다 더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경고에 가깝다. 동시에 방향을 가리킨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모델을 만든 나라가 아니라, 그 모델이 의존하는 병목을 산업으로 전환한 나라다. 지금 그 병목 위에 서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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