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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SK하이닉스, 12조원 EUV 장비 구매 승부수

이미 TSMC, 삼성전자, 인텔,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수년 치 물량을 선점한 상태여서, 신규 진입자인 테슬라가 당장 장비를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ASML 장비 장벽…중국...

SK하이닉스, 12조원 EUV 장비 구매 승부수

인공지능(ChatGPT)으로 생성한 이미지.

[이코리아]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경쟁의 승부처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로 빠르게 수렴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장비 투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테라팹(Terafab)’ 구상은 서로 다른 방향처럼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이닉스, 12조원 EUV 장비 대량 구매… AI 메모리 주도권 강화

SK하이닉스가 내년 말까지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 12조원어치를 대량 구매하기로 했다. 25일 SK하이닉스 공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고 네덜란드 ASML로부터 11조9497억원 규모의 EUV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장비는 내년 말까지 순차적으로 도입되며, 청주 M15X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에 투입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와 미세공정 전환을 견인할 전망이다.

EUV 장비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나노 단위 회로를 그리는 ‘포토 공정’의 핵심 설비로, 첨단 AI 반도체 생산의 필수 요소다. ASML이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구조에서 장비 확보 자체가 곧 생산능력 확장으로 직결된다. 이번 장비 구매는 SK하이닉스 전체 자산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로, 회사 측은 “차세대 공정 양산 대응을 위한 EUV 장비 확보”라고 설명했다.

◇머스크 ‘테라팹’ 구상, EUV 공급 병목에 가로막힐까

반면, 머스크가 내세운 ‘테라팹’ 구상은 이 같은 병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시도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테슬라는 연간 1테라와트(TW) 규모 AI 연산용 칩 생산을 목표로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약 3500대 이상의 EUV 장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전문 분석기관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연간 1GW의 AI 연산용 칩을 제조하려면 약 3.5대의 EUV 장비가 필요하다. 이를 1TW(1000GW)에 대입하면 3500대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하지만 ASML의 연간 생산능력은 70대 남짓이며, 2030년에도 100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EUV 장비는 대당 수천억 원에 달하며, 10만 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 초정밀 장비다. 특히 독일 칼자이스의 초정밀 렌즈 시스템 등은 수작업에 가까운 공정을 거쳐 생산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 이미 TSMC, 삼성전자, 인텔,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수년 치 물량을 선점한 상태여서, 신규 진입자인 테슬라가 당장 장비를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ASML 장비 장벽…중국 국비투자도 못 넘은 ‘초정밀 기술’

EUV 수출 제한과 DUV 장비 역설계 실패 사례에서 보듯, 반도체 핵심 장비 기술은 국가 차원에서도 확보가 어려운 수준이다. 미국의 제재 속에서 ‘기술 자립’을 위해 중국이 ASML의 DUV 장비를 무단 분해해 역설계를 시도했으나, 재조립에 실패해 오히려 ASML에 수리를 의뢰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은 EUV 광원이나 광학 시스템 등에서 일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완전한 체계로 통합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반도체 업계 리더들조차 최근 ‘중국판 ASML’ 구축을 향후 5년간 핵심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할 정도로, EUV 기술의 진입 장벽은 국가적 역량으로도 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낸드플래시 제조업체 YMTC의 천난샹 회장, 반도체 장비업체 나우라 테크놀로지의 자오진룽 회장,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업체 엠피리언의 류웨이핑 회장 등은 최근 중국의 과학기술 전문 저널에 실린 기고에서 “ASML의 EUV 장비에는 공급업체 5000개의 10만개 부품이 들어가고, ASML은 단지 이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며 “중국판 ASML을 구축해 자금과 인적 자원을 균일하게 배분하는 것은 관련 부서가 즉시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긴급한 문제”라고 밝혔다.

테슬라 테라팹의 경우 삼성전자의 미국 테일러 공장과 30분 거리에 위치해 반도체 인력과 EUV 장비 확보 경쟁이 불가피한 상태다. 테슬라는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테라팹 반도체 개발 엔지니어를 채용하며 인력 확보 경쟁을 시작했으며, 향후 EUV 장비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문가, “반도체 공급 부족, 생각보다 훨씬 심하다”

전문가들은 테슬라의 테라팹 구상이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지만, 반도체 공급 부족의 심각성과 공급망 경쟁의 격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분석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공장 건설이 돈과 속도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25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만약에 그것이 가능했다면 중국이 이미 성공을 했어야 된다”라며 머스크의 구상에 대해 “스스로 만드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좀 희박하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테슬라의 대규모 투자가 단기적으로는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공장을 지을려면 성공 여부를 떠나서 공장에 들어가는 기자재, 소재, 그리고 인력이 필요하다”며 “그런 걸 한꺼번에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당분간 작용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EUV 장비와 관련해 “미국 정부에서 압력을 넣으면 테슬라에 먼저 공급을 하라고 할 수도 있다”며 한국 기업들의 장비 조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SK하이닉스의 EUV 발주는 곧 생산 캐파(capacity)”라며 “그 말은 그만큼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많다,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테라팹의 단기 실현 가능성에 대해 “(가능하다면) 현실적으로 4~5년 후에 있을 일이라 지금 이게 맞다 안 맞다 말하기는 조금 조심스럽다”면서 “전체적으로 맥락을 보면 반도체의 공급 부족이 생각보다 훨씬 심하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테라팹의 경우 그들이 메모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CPU나 GPU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장에서 각자 테크 기업들이 하나씩 스스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라며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왜냐하면 그런 팹들이 생기면 생길수록 메모리는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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