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던 하드웨어의 시대가 저물고, 소프트웨어가 자동차 업계의 생사를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 전통적 제조 문법에 갇혀 멈춰 선 업체들부터 순혈주의를 버리고 적과의 동침을 택한 파격적 동맹, 그리고 플랫폼은 빌리되 데이터 주권은 놓지 않는 현대차그룹의 내재화 전략까지.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각 제조사들이 써 내려가는 생존 방정식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폭스바겐그룹 SDV (사진=카리아드)
[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이 자체 아키텍처 구축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 폭스바겐그룹 등 일부 완성차 업체는 판을 새로 짜는 전략을 택했다. 소프트웨어중심차(SDV) 전환 과정에서 마주한 기술적 병목 현상과 과도한 비용 부담에 독자 노선을 과감히 내려놓고 기술 우군들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이제 업계의 생존 공식은 누가 더 빨리, 그리고 누구와 더 유기적으로 협업해 성과를 내느냐에 초점을 맞춘 '실용적 동맹'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 폭스바겐그룹, 카리아드 한계 인정···리비안·샤오펑 '기술 수혈' =
3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소프트웨어 전략의 핵심축을 '자체 개발'에서 '거점별 협업'으로 전면 수정했다. 이는 전사적 역량을 쏟았던 중앙집중형 전기·전자 아키텍처 개발 좌초에 따른 것으로, 실제 그간 그룹 내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도해 온 자회사 카리아드는 지난해 대규모 인력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스바겐은 주요 시장 선도 업체들과 손을 잡는 실용적 노선으로 선회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에 50억달러를 투자, 합작법인 체제 아래 2030년대 초까지 차세대 아키텍처를 개발한다. 중국 시장에서는 전기차 제조사 샤오펑과 함께 현지 전용 아키텍처 개발에 매진 중이다. 전통적인 제조 거인이 '순혈주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외부의 기술을 수혈받으며 속도전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가 나온다.
화웨이 하모니 OS가 들어간 토요타 Bz7 (사진=토요타)
◇ 토요타, 아린으로 2028년 SDV 전환···중국선 적과의 동침도 마다치 않아 =
세계 1위 완성차 업체 토요타는 독자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 기업과의 기술 협업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자체 역량을 고도화하면서도 특정 시장에서는 외부 기술을 과감히 수용하는 유연함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 토요타는 독자 소프트웨어 플랫폼 아린을 앞세워 오는 2028년까지 SDV 전환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소프트웨어 자회사 우븐 바이 토요타가 주도하는 아린은 단순 운영체제 범주를 넘어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와 검증 도구, 데이터 수집 체계까지 하나로 묶은 통합 플랫폼이다.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발 효율을 극대화하고 스마트폰처럼 기능을 상시 업데이트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특히 1초 내외의 빠른 반응 속도와 5세대(G) 기반 에지 컴퓨팅, 운전자의 정서를 파악해 상호작용하는 감정 케어 기능은 토요타가 그리는 미래 지능형 파트너의 핵심 가치로 꼽힌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화웨이의 하모니 운영체제(OS)와 모멘타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탑재, 이른바 적과의 동침을 단행했다. 기술 경쟁이 치열한 현지 시장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사진=르노코리아)
◇ 르노코리아, 수평적 협업으로 SDV 가속···AIDV 시대 연다 =
르노코리아는 다각적인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SDV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협업 주체를 단일 기업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파트너사와의 실용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필랑트나 그랑 콜레오스 개발 과정에서 증명했듯, 다양한 업체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2027년 첫 SDV를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이러한 전략의 지향점은 자율주행 레벨2++ 구현과 AI중심차(AIDV)로의 확장이다. 도심과 고속도로 등 다양한 주행 환경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파일럿 주행 기능과 차세대 AI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구축해 차량을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선 지능형 동반자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연구소장을 교체하는 등 강도 높은 인적 쇄신도 단행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처럼 다수의 완성차 업체가 차량 지능화를 목표로 전기·전자 아키텍처와 계층형 플랫폼 투자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는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화를 구현하는 핵심 기반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같은 기술적 토대가 차량 수명 주기 동안 기능을 상시 개선할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작동 제어를 통해 리콜 대응 효율성까지 대폭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독자 노선이든 외부 수혈이든, 고도화된 아키텍처 확보가 미래차 시장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