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게임산업의 심장이 멈춰가고 있습니다.”
15일 낮 경기 성남 판교역 1번 출구 광장. 국내 게임산업의 중심지인 판교 한복판에서 글로벌 빅테크의 인앱결제 수수료 구조를 비판하는 대규모 문화집회가 열렸다.
디지털 주권회복 시민위원회와 ‘게임산업정상화 캠페인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게임업계 관계자와 시민단체, 이용자 등 약 300명이 참석했다. 당초 오후 12시30분 예정이던 행사는 분당구청 요청에 따라 정오부터 진행됐다.
현장에는 “디지털 주권 회복”, “30% 인앱결제 수수료 중단”, “K게임 살려내라” 등의 문구가 등장했고, 첼로 공연과 퍼포먼스, 연사 발언이 이어졌다. 사회는 SBS 공채 개그맨 출신 이재성이 맡았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김용기 게임산업정상화 캠페인위원회 위원장(한국예술행정협회 회장)은 본지와 만나 “K게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출 산업인데 정작 국내 기업과 이용자들은 글로벌 플랫폼의 ‘디지털 통행세’를 내며 고통받고 있다”며 “이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K게임 수출 규모는 K팝과 K영상 콘텐츠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며 “전체 콘텐츠 수출의 절반 이상을 게임이 책임지고 있는데도 수익 상당 부분이 해외 플랫폼으로 유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현재 최대 30% 수준인 인앱결제 수수료를 “사실상 약탈적 구조”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같은 아이템이라도 웹 결제보다 앱 결제가 더 비싼 이유는 결국 플랫폼 수수료 때문”이라며 “국민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디지털 세금’을 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100명 회사가 4명 됐다”…팡스카이의 절규
현장에서는 중소 게임사들의 위기감도 쏟아졌다. 연사로 나선 이병진 팡스카이 대표는 “개발사는 게임을 만들지만 수익 구조는 플랫폼이 가져가는 상황”이라며 “수수료와 광고비 구조 속에서 사실상 플랫폼 종속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팡스카이는 최근 업계에서 상징적 사례로 거론된다. 한때 직원 100여 명 규모였지만 현재는 4명만 회사를 지키고 있다. 회사 측은 지난 10년간 구글·애플 등에 지급한 수수료가 약 140억원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게임사들은 수수료를 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플랫폼 광고 시스템에 광고비를 집행해야 한다”며 “결국 플랫폼 안에서 돈이 계속 순환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어도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니 결국 안전한 BM(수익모델)만 찾게 된다”고 토로했다.
현재 국내 중소 게임사 270여 곳은 미국에서 집단 조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적정 수수료 수준을 4~6% 정도로 보고 있다. 반면 현재 플랫폼 수수료는 최대 30% 수준이다.
김용기 “빅7 침묵은 배신”…“함께 움직이면 안 무너진다”
이날 집회에서 가장 강한 발언은 국내 대형 게임사들을 향해 나왔다.
김 위원장은 “지금 중소 게임사들은 생존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데 시장을 장악한 대형 게임사들은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며 “동생들이 죽어가는데 형들이 모른 척하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현재 업계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빅7’은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컴투스 등이다.
김 위원장은 “대형 게임사들이 모두 함께 움직이면 특정 기업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낮아진다”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계속 당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형사들이 지금처럼 각자 뒤에서 플랫폼과 협상만 하고 중소기업 문제를 외면하면 결국 산업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연대”라고 강조했다.
송진우 “팬 없으면 야구도 없다”…배재성 “게임은 문화산업”
행사에는 야구계와 언론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전 프로야구 한화 레전드 투수 송진우는 현장에서 “프로야구도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며 “게임산업 역시 대기업만 살아서는 의미가 없다. 중소 개발사와 이용자들이 함께 살아야 산업도 유지된다”고 말했다.
KBS 스포츠기자 출신 배재성 한강YMCA 이사는 “게임은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 산업”이라며 “지금은 단순 기업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독점 구조와 이용자 피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첼리스트 윤슬지 공연과 퍼포먼스팀 ‘토끼와 거북이’의 공연도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게임은 문화다”, “K게임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전문가들 “플랫폼 종속 방치 땐 K게임 경쟁력 붕괴”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은 최근 기고문에서 “플랫폼 종속성과 과도한 수수료 체계가 K게임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게임산업 리더 기업들이 생태계 혁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인 방효창 두원공대 교수도 기고를 통해 “게임사들의 침묵은 플랫폼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며 공동 대응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인앱결제 피해 관련 간담회가 열린 바 있으며, 업계 안팎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을 만들었지만 현장 체감은 거의 없다는 반응이 많다”며 “결국 정부·국회·업계·이용자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구조 자체를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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