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이태영 기자]
사이버보안이 글로벌 제조·방산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공급망 보안과 소프트웨어 검증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제는 제품 성능만으로 해외 시장 진입이 어려운 시대가 됐다. 방산·조선·항공 등 국가 전략산업 전반에서 ‘보안 신뢰성’이 새로운 수출 기준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의 대응 과제와 생존 전략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마트십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조선·해운업계에서도 사이버 보안이 새로운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 도크 모습. [사진=현대중공업]
“예전에는 배를 얼마나 빨리, 잘 만드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국내 한 조선 기자재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스마트십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조선·해운업계에서도 사이버 보안이 새로운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선박이 단순 운송 수단을 넘어 항해·엔진·통신·전력관리 시스템이 통합된 디지털 플랫폼으로 진화하면서 보안 검증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스마트십 확산과 함께 선박 내 운영기술(OT)과 정보기술(IT)이 촘촘히 연결되면서 사이버 리스크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항해 장비와 위성통신,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화물관리 장치 등이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작동하는 만큼 특정 장비나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이 선박 전체 운영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국제선급연합회(IACS)는 선박 사이버 복원력 규칙인 UR E26·E27을 도입해 일정 규모 이상의 신조선에 대한 보안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사들은 설계 단계부터 선박 네트워크 구조와 접근 권한, 원격접속 관리, 사고 대응 절차 등을 반영해야 하며 관련 내용을 문서화해 검증받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선박 보안 개념 자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외부 침입 차단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공급망 전체의 보안 신뢰성을 검증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재 업체 역시 단순 성능 인증을 넘어 보안 패치 체계와 취약점 관리 능력까지 요구받고 있다.
[서울=뉴시스] 육군은 지난 1일부터 오는 25일까지 대전, 전남 장성 일대 병과학교(육군기계화학교, 육군포병학교, 육군종합군수학교) 등에서 '25-2기 육군 국제과정을 실시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육군 국제과정은 해외 주요 방산협력국 장병들을 대상으로 국산 무기체계의 운용 및 정비 노하우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으로 2024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K2전차 운용 기본과정'에 참가한 폴란드군 교육생이 전차포를 실사격 하는 모습. (사진=육군 제공) 2025.07.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미국 해군 MRO 사업과 함정 건조 협력 확대 가능성은 국내 조선업계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함정 건조 과정에서 특정 국가산 ICT 장비와 통신 부품 사용 여부를 민감하게 들여다볼 가능성이 크다. 단순 원산지 확인 수준이 아니라 공급망 투명성과 보안성까지 함께 검증하겠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향후 함정 공동 건조나 무기체계 정비 분야로 협력이 확대될 경우 미국식 보안 인증 요구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군수지원함 정비 수준과 달리 전투함과 핵심 군사 장비 분야는 보다 엄격한 보안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업계는 부품 원산지 관리와 공급망 추적 체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케이블과 통신 장비, 제어 시스템, 소프트웨어 등 함정과 스마트십에 적용되는 주요 장비 전반에 대한 보안 검증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조선소 자체를 ‘보안 시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함정과 스마트십 건조 과정에서는 설계 자료와 운항 데이터, 핵심 기술이 오가는 만큼 물리적 보안과 사이버 보안, 인력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중소 기자재 업체들의 부담은 상당하다. 보안 체계 구축과 인증 대응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자체 대응 역량은 부족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 대응 체계와 정부 차원의 지원 확대 필요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선주들은 선가와 납기뿐 아니라 보안 신뢰성까지 함께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사이버 보안 검증 능력이 향후 수주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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