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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OCUS 경기] 안전하고 재밌는 길… 세계 순례객 마음 얻는다

제주도 올레길의 성공 이후,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저마다의 둘레길을 쏟아냈다.

박관열 시장, 남한산성~천진암

‘광주 역사문화 둘레길’ 잰걸음

기존 도보길 최대 활용 내년 상반기 준공

내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최대 80만 방한

韓 천주교 출발점 종교적 가치 알릴 기회

남한산성 옹성. /광주시 제공

제주도 올레길의 성공 이후,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저마다의 둘레길을 쏟아냈다.

하지만 우후죽순 생겨난 우회로들은 어느새 매력을 잃었고, 한때의 지나가는 유행처럼 치부되며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둘레길 쇠퇴기’에 민선 9기 지휘봉을 잡은 박관열 광주시장이 정면승부를 걸었다. 남한산성에서 천진암을 잇는 ‘역사문화 둘레길’ 조성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면서다. 광주가 가진 독보적인 역사·문화적 가치를 알기에, 철 지난 유행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광주만의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겠다는 당찬 구상이다.

■ 새벽 5시 반, 출근 전 28㎞를 걸으며 깨달은 것… “핵심은 ‘재미’다”

남한산성에서 천진암을 잇는 ‘역사문화 둘레길’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박관열 광주시장이 지난 8월 해당 구간을 직접 돌며 현장 점검에 나섰다. /광주시 제공

‘찾아가는 직통시장실’ 운영, ‘용인반도체 통합용수관로사업’ 대응 등 굵직한 현안 속에서도 박 시장은 신발 끈을 매고 직접 현장으로 향했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무더위가 이어지던 지난달 초에도 사흘간 새벽 5시부터 출근전인 8시까지 남한산성에서 천진암으로 이어지는 28㎞ 구간을 발로 뛰며, 코스별 시설과 노선 여건을 세밀히 점검했다.

직접 발로 누빈 뒤 나온 박 시장의 소회는 뜻밖에도 솔직하고 명쾌했다. “솔직히 직접 걸어보니, 힘든 것보다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무조건 ‘재밌는 길’을 만들어야겠다고요.”

박 시장은 “걷고 싶은 길인 동시에 안전함이 담보돼야 하는데, 생각보다 정비해야 할 부분이 눈에 많이 밟혀 고민이 깊다”고도 전했다.

시는 예산을 절감하고, 사업 속도를 올리기 위해 기존 도보길을 최대한 활용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내년 상반기 준공을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사업이 완성되면 광주 도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남한산성, 그리고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천진암을 하나로 잇는 독보적인 역사문화 도보 관광 라인이 탄생하게 된다.

■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호재…교황도 걷고 싶을 세계인이 찾는 글로벌 명소로

광주 천진암 전경. /광주시 제공

광주시가 이번 둘레길에 더욱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다. 대형 국제 행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027년 8월3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그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 대회에는 레오 14세 교황이 참석할 예정이며, 본대회에 앞서 7월29일부터 8월2일까지는 전국 15개 교구에서 ‘교구대회’가 진행된다. 대회기간 전 세계에서 최대 80만명의 청년 순례객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한국 천주교의 성지인 천진암을 품은 광주시에도 2천명 가량의 순례객이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천진암은 본래 주어사에 딸린 작은 암자였지만, 1779년 이벽·정약전·정약용·정약종·권철신 등 남인 계열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서학(西學) 서적을 놓고 강학을 벌인 것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점으로 여겨져 왔다. 이벽·정약종·권철신·권일신·이승훈 등 창립 선조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오늘날까지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인 성지로 꼽힌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유교·불교·천주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학문을 교류했던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천진암은 오늘날 다시 조명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시는 이번 대회를 광주의 깊은 역사·종교적 가치를 세계 무대에 알릴 결정적 기회로 삼고 있다. 박 시장은 “현장 점검에서 발견한 보완점들을 세심히 반영해 ‘광주 역사문화 둘레길’을 전 세계인이 찾는 명품 관광 명소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 “힘든 시절 위로가 된 걷기…시민들에게 조속히 선물하고파”

지난 8월 박관열 광주시장이 ‘광주 역사문화 둘레길’ 현장을 둘러본 가운데 노선은 물론 안전사항 등을 촘촘히 살폈다. /광주시 제공

박 시장이 이토록 둘레길에 진심인 데는 그만의 특별한 개인적 서사도 담겨 있다.

“사실 정치적 시련을 겪고 낙선했을 때, 정말 정처 없이 많이 걸었다”는 그는 “걷는 행위가 지친 삶에 얼마나 큰 위안과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속히 이 길을 완성해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다. 내년 상반기, 반드시 멋진 모습으로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광주 ‘걷기 좋은 길’ 2선]

옛 선비 과거길 ‘합격 기원’

조선 왕실 도자기 숨결 산책

■ 한양 삼십리 누리길- 옛 선비들의 과거길, 지금은 ‘합격기원길’

옛 선비들의 과거길로 광주 목현동에서 남한산성면 산성리를 잇는 ‘한양 삼십리 누리길’. /광주시 제공

광주 목현동에서 남한산성면 산성리를 잇는 12㎞(삼십리) 등산코스다. 조선시대 관원들이 군사정보를 전달하고, 지방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남한산성 옛길이었다.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으로 조성됐다.

전체 4개 코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구간은 2코스, 이름하여 ‘합격기원 특별구간’이다. 남한산성 오전리 농산물판매장에서 시작해 불당리까지 이어지는 약 2.4㎞ 길로, 대입 수능철이면 유독 발길이 잦아진다. 구간 곳곳에는 쌍둥이바위·자매바위·형제바위 등 이름부터 눈길을 끄는 바위들이 자리하고, 이중 몽돌바위(일명 합격바위)는 옛 선비들이 과거 급제를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밖에도 세오고개 돌탑과 정자, 고인돌과 연자방아, 족두리바위 등 코스별 볼거리가 다채로워 4개 구간을 나눠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 팔당호반 둘레길- 왕실 도자기의 숨결이 남은 팔당호 길

팔당호의 맑은 물길과 조선 왕실도자기의 역사를 느낄수 있는 ‘팔당호반 둘레길’. /광주시 제공

광주 및 수도권 시민의 식수원인 팔당호의 맑은 물길과, 조선시대 500여 년간 왕실 도자기를 구워내던 ‘분원 사옹원’의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둘레길이다. 광주 퇴촌면 오리에서 남종면 귀여리를 거쳐 검천리까지 이어지는 총 24㎞ 구간으로, 산림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등산로를 최대한 살렸다. 4개 코스 중 1·3코스는 호수를 바라보며 걷는 평지 산책로라 아이나 어르신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팔당호가 가장 탁 트여 보이는 3코스가 특히 인기다. 반대로 정암산을 오르는 2·4코스는 땀 좀 흘려야 하는 본격 등산로여서 하루에 코스 하나만 골라도, 혹은 취향껏 이어 걸어도 부담 없다.

걷다 보면 ‘조선백자 왕실 도요지’였던 남종면 분원리 붕어찜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1970년대 팔당댐 공사 무렵부터 하나둘 생겨난 붕어찜 식당이 명소로 자리해있다. 분원리는 조선시대 500여 년간 왕실에 진상할 백자를 구워내던 ‘분원 사옹원’이 있던 자리이기도 해서, 지금도 곳곳에서 옛 도요지의 흔적인 백자 파편(자편)을 만날 수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팔당호반은 그동안 자동차 드라이브 길로 수도권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둘레길 조성 이후 산책은 물론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며 “주변에 맛집도 많아 꼭 한번은 들러볼 만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광주/이윤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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