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5월호 (통권 702호)
대구은행 제2본점
DIALOGUE
이명진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건축) 첨단설계부문 대표이사,
기현철
정림건축 설계부문 디자인 기술 통합지원센터 SU(Strategy Unit) 디자인파트 파트장,
박재완
정림건축 설계부문 JDI(Junglim Design Innovation) BU(Business Unit) 리더,
안정택
정림건축 첨단설계부문 빅테크 BU 리더,
이호
정림건축 첨단설계부문 모빌리티 BU 소장 ×
김정은
「SPACE(공간)」 편집장,
방유경
「SPACE」 기자
장소성과 공동체성: 대구은행 제2본점, 부산항 북항 마리나
SPACE
: 지역성은 장소성을 기반으로 사용자, 즉 공동체와 물리적으로 연결될 때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 같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대구은행 제2본점과 부산항 북항 마리나를 꼽았다. 먼저 대구은행 제2본점에서 이 주제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려 달라.
이명진
: 대구은행 제2본점은 대구은행 본점(1979) 설계를 수행하며 30년간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시작됐다. 대구 북구 칠성동 일대는 해방 이후 1960~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견인한 섬유산업의 메카였고, 건물이 위치한 곳은 대한방직 공장 부지였다. IMF 이후 섬유산업이 쇠퇴하며 도시는 침체되었고, 대지는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 2000년대 이후 도시재생의 흐름 속에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본 사업은 도시의 역사와 장소성을 바탕으로 금융사옥 본연의 기능을 담으면서도 공공성의 극대화를 목표로 했다. 이에 효율과 보안이 중요한 금융시설임에도 법정 용적률의 3분의 2만 채우고, 연면적의 45%를 문화 공간에 할애했다. 저층부(문화시설)와 고층부(업무시설)로 영역을 구분하고, 저층부 매스를 휴먼스케일로 분절해 사방으로 열린 진입 동선을 확보함으로써 시민들이 라운지, 체육관, 북카페, 갤러리, 콘서트홀을 가깝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침체됐던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민들과 소통하며 상생하는 공간이 되었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구은행 제2본점
대구은행 제2본점
SPACE
: 친환경 등급을 높이기 위해 과도한 기계장치를 도입하지 않고 적정선의 로테크를 통해 친환경 건축을 구현했다고 들었다.
이명진
: 대구은행 제2본점은 정림건축에서 지속 가능한 건축을 위한 설계 프로세스(기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를 최초로 정립한 프로젝트로, 내부에선 이를 ‘친환경 통합 디자인 프로세스’라고 부른다. 디자인을 완성한 이후 친환경 요소를 덧입히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을 경계하며 분석과 대안 작성, 의사결정 등 디자인 전 단계를 지속가능성에 근간을 두고 진행했다. 액티브 방식을 적용하면 LEED 플래티넘 등급에 맞출 수 있었지만,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는 패시브 방식으로 LEED 골드 등급을 획득했다. 대지 활용 방식과 밀도, 매스의 향과 형태, 구조의 형식과 모듈, 공간의 규모, 폭, 길이, 외피의 디자인과 디테일, 설비와 신재생에너지의 최적화 순서까지, 모든 의사결정은 환경적 근거에 기반한다. 시공과 운영에도 설계자가 깊이 관여했다. 시뮬레이션과 현장의 차이를 확인한 뒤 이를 측정, 분석 후 조정해 설계 단계에서 60% 에너지 비용 절감을 예측했는데, 준공 후 1년간 운영한 에너지 절감 데이터가 55%로 나와 초기 목표에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부산항 북항 마리나
SPACE
: 장소성과 공동체성을 중시한 프로젝트로 부산항 북항 마리나도 언급됐다. ‘부산 유일의 해상공원’이라 소개했는데, 부산의 기존 워터프론트 시설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가?
이명진
: 부산항은 1876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의 배경이자 무대가 된 장소다. 한 세기 넘게 수출 관문으로 국가 경제를 견인했던 항만의 물류 기능이 2020년 진해신항으로 이전되면서 북항 재개발이 추진됐다. 접근이 어려웠던 수변 공간을 부산 시민에게 돌려주는 ‘회복과 재생’의 의미가 주요한 특징이자 차별점이었다.
박재완
: 부산의 해안선 총 연장이 150km 정도 되는데 물류항이라는 특성상 대부분 사람이 접근할 수 없고, 접근 가능하더라도 해운대처럼 고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사유화된 성격이 강했다. 해안은 공공재인데도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시민에게 개방된 공공시설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부산 해안선의 1%, 즉 1.5km를 개방하는 워터프론트 시설을 제안한 것이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가 건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각 층을 연결하는 테라스가 적층된 형상으로 제안했다.
부산항 북항 마리나
부산항 북항 마리나
SPACE
: 항만시설인 마리나의 배치와 구성을 어떻게 결정했나? 여기에 지역성과 공동체성은 어떻게 반영되었나?
박재완
: 설계공모 당시 발주처에서 작성한 공모요강에 ‘대중 마리나’에 대한 지향이 명확히 있었다. 일반적으로 마리나는 요트를 이용하는 일부 고객들이 이용하는 프라이빗 시설이다. 하지만 발주처는 고가의 요트 정박시설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역사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사업의 큰 전제였다. 생존수영장, 스킨스쿠버 풀 도입도 시설을 사계절 내내 운영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건물 배치와 디자인은 추후 완공될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강한 조형성을 고려해 시각적으로 두드러지지 않게 대지 형태를 따르는 매스, 정연한 입면으로 처리했다. 격식 없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층별 테라스를 두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게 했다.
SPACE
: 호안선을 따라 뻗은 매스의 북쪽 끝에는 수평 루버가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입면의 특징적인 요소인데 어떤 목적으로 고안되었나?
박재완
: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저층부에 상업시설을 배치하다 보니, 고층에 위치한 호텔 객실의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있었다. 설계공모 때부터 시선을 가리기 위해 북동쪽에 수평 루버 설치를 제안했는데, 실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바람이 너무 세게 부딪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재료를 익스펜디드 메탈로 제작해 윈드 브레이커 역할을 하도록 했다. 처음부터 환경적 기능을 염두하고 만들지는 않았지만, 루버 덕분에 호텔 객실에서 테라스쪽 문을 수월하게 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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