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글로벌 법정 분쟁 이슈를 심도 있는 취재로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삼성전자 아메리카.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미국 주(州) 정부의 근로자 건강보험 정보 제출 요구에 반발해 법원에 금지명령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는 주 정부의 요구가 개인정보 보호를 명시한 연방법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데이터를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근로자의 개인정보 권익을 수호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중부 연방지방법원 내슈빌지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아메리카(미국법인), 삼성반도체 미국법인, 삼성 리서치 아메리카, 삼성 오스틴 반도체, 삼성전자 생활가전 미국법인 등 5개 계열사가 합동 원고로 보험 기업 케어마크PCS 헬스(CaremarkPCS Health LLC·이하 케어마크)와 카터 로렌스 테네시주 상무보험부 장관을 상대로 근로자 보험 정보 제출 요구 금지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소송을 제기한 배경은 테네시주 정부가 새로 발의된 주법(州法)을 근거로 근로자의 건강보험 정보 일괄 제출을 명령한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재원을 직접 조달해 운용하는 건강 복지 플랜(health benefit plans)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연방법인 근로자 퇴직연령 소득보장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ERISA)의 적용을 받는다.
즉, 삼성전자는 타 보험사에 보험료를 내고 운영을 맡기는 방식이 아닌, 자체 재원 조달(self-funded) 방식으로 건강보험을 제공한다. 직원이 아프면 삼성전자가 의료비 지불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케어마크는 삼성전자의 약제급여관리자(Pharmacy Benefit Manager·PBM)로서 처방전 기록 관리, 약국 네트워크 설계, 제약사와 협상 등 실무 일부를 담당했다.
소송장 1면. 사진=미국 테네시주 중부 연방지방법원 내슈빌지원
문제의 발단은 테네시주 정부 상무보험부가 사기업 건강보험 플랜의 설계와 구조를 직접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발생했다. 주 정부는 PBM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며 삼성전자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근거는 2021년 발의된 법안으로, 이 법은 ERISA 적용을 받는 사기업 건강보험 플랜을 ‘피규제 기관’으로 포함시켰다.
소장에서 삼성전자는 이 주법이 건강보험 플랜의 구조와 설계를 간섭하며, 전국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플랜 운영을 방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가입자가 납부하는 공동 부담금을 제한하거나, 약국 인센티브 제공을 금지하는 등의 규제는 연방법인 ERISA에 의해서만 통제를 받으므로, 주 정부가 간섭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의 PBM인 케어마크는 처음에는 주 정부의 요구에도 정보 제공을 거부했다. 하지만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주 정부가 제공하라고 한 건강보험 정보에는 가입자 번호, 플랜 정보, 처방 내역, 투약 정보, 의료 상태, 조제 기록, 비용 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겼다.
삼성전자 미국법인 건물 내부.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케어마크의 결정에 반발했다. 삼성전자 측은 “가입자의 의료 정보에 대한 소유권은 삼성에 있다”며 “개인정보 및 기밀 보호를 위해 데이터 제공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공개하는 것은 가입자의 개인정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주 정부의 행위가 헌법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보험 플랜은 주법보다 상위의 연방법인 ERISA의 적용을 받는다”며 “주법이 연방법과 충돌하는 상황에서 주법을 따르라고 강제한다면 ‘연방법 우선 원칙’을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마다 각기 다른 정부 보고 의무를 부과하면 전국 단위로 운영되는 보험 플랜 관리에 큰 혼란과 비용이 발생한다”고 거듭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법원에 ▲테네시주가 근거로 든 법이 ERISA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선언 ▲케어마크가 주 정부에 삼성전자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명령 ▲이미 주 정부에 전달된 정보가 있다면 이를 모두 삭제 할 것을 요청했다.
※ 용어 설명
근로자 퇴직연령 소득보장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ERISA) :
미국 내 민간 기업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각종 복지 혜택을 규율하는 연방 법률이다. 과거 미국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연금이나 의료 혜택을 약속해놓고 정작 지급 시점이 되면 발을 빼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74년 제정됐다.
약제급여관리자(Pharmacy Benefit Manager·PBM) :
미국 의료 보험 시스템에서 보험사를 대신해 처방 약 급여 항목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중간 대행업체를 뜻한다.
연방법 우선 원칙(Preemption Doctrine) :
연방법과 주법이 충돌할 경우 연방법이 주법에 우선하며, 충돌하는 주법은 효력을 잃는다는 원칙이다. 헌법적 근거는 최고법 조항(Supremacy Clase)으로, 미국 헌법 제6조 2항은 “미국 헌법과 그에 따라 제정된 연방법, 그리고 체결된 모든 조약은 이 땅의 최고법”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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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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